
내 안의 나를 찾다, ‘레이블링 게임’
누구나 한 번쯤은 MBTI 테스트와 꽃 MBTI 테스트 등 간단한 자기 성향 테스트를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0분 내외의 시간만 투자하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러한 테스트는 많은 사람의 흥미를 이끌어 참여를 유도한다. 최근 MZ세대는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서로의 MBTI 유형을 공개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기도 하고, 다양한 SNS에서 검사 결과를 인증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수많은 자기 성향 테스트를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이라고 한다. 레이블링 게임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왜 레이블링 게임에 열광하는지 알아보자.
‘나’에 대한
딱지 붙이기
레이블링 게임은 자아 정체성을 특정 유형으로 딱지(레이블)를 붙인 뒤, 해당 유형에 맞는 생활 양식을 알고 이를 동조 및 추종하는 콘텐츠이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하나의 유형으로 규정하는 과정을 뜻한다.
단순히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자체적으로도 여러 가지 요인이 한데 어우러져 구성되는 집합체인데, 환경적으로도 현대사회의 다원화로 인해 더욱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 정체성의 불확실성은 심해지는 추세이지만, ‘나’를 견고하게 규명할 수 있는 레이블링 게임의 인기는 더 치솟고 있다. 이처럼 요즘 시대에 점점 그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는 레이블링 게임은 어떤 이유로 인기를 끌고 있을까?
첫째로 부 캐릭터, 일명 ‘부캐’의 유행으로 인한 영향이 있다. 일명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는 작년 여러 분야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은 바 있다. 단순히 방송과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것을 넘어 ‘메타버스’와 같이 MZ세대에게 소통과 창작을 통한 자아 표출 대안이 돼주거나, 직업 선택에서도 겸업을 하는 ‘N잡러’가 등장했다. 이처럼 현대사회가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그에 적합한 다양한 정체성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부캐 속 본연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획일화된 가치관에서 다양화된 가치관으로의 변화 때문이다. 과거에는 특정 기준과 생활 양식만이 존중을 받았고, 그것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괄시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몇 가지의 직업만이 우상화되고, 그에 따라 적성을 고려하기보다는 무조건 학업 위주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통한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도래했다. 이로 인해 간단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성향 테스트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라는 상황이 지닌 특이성도 레이블링 게임의 부흥에 한몫했다. 사람은 누구나 항상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며 행동하게 된다. 자아 정체성 또한 타인의 시선에 의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며 타인과의 접촉이 전보다 줄어들게 됐다. 이에 따라 타인의 시선을 배제한 온전히 자신만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단순한 게임에서
마케팅으로
레이블링 게임은 인간의 자아 정체성 확보를 도와주는 단순한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레이블링 게임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대단했고 이에 산업에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해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등장했다. 레이블링 게임을 이용한 ‘레이블링 마케팅’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인식하고, 제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통로로 이용 중이다.
레이블링 마케팅은 기존의 마케팅과 비교되는 색다른 장점이 있다. 먼저 MZ세대의 특징을 파악해 데이터를 분석해 즐길 거리를 만들고 자발적 공유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자발적 공유가 되다 보니 잦은 노출을 하기 위해 큰 비용을 들인 기존 광고 마케팅과 달리 적은 인풋으로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나이 ▲성별 ▲지역 등 인구학적으로 분류하던 예전과 달리 성격 유형을 동원해 고객을 여러 기준으로 세분화해서 각 영역에 해당하는 고객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제품이나 상품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재구매 확률 역시 높아진다.
그렇다면 레이블링 마케팅을 실제로 적용한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레이블링 마케팅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곳 중 하나로 ‘방구석 연구소’가 있다. 방구석 연구소는 글로벌 명품향수 공식몰 ‘밀리언뷰티’와 함께해 ‘첫인상 테스트’를 만들었다. MBTI 형식으로 16개 유형의 첫인상을 만들고 이와 어울리는 향수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 테스트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서 관련 키워드 7건이 연달아 노출되는 성과를 보였다.
또한 방구석 연구소는 우리은행과 함께한 3·1절 기념 ‘#기억하_길(ROAD)’ 캠페인도 진행했다. 12개의 문항에 답을 하면 MBTI 기반 알고리즘을 반영해 16개의 독립운동가 유형 중 하나가 결과로 나타나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개인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면 1,000원씩 기부되는 형태로 총 3,000만원의 모금액이 저소득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전달됐다. 해당 캠페인은 72시간 만에 누적 참여자 73만 명을 돌파했다. 이렇듯 레이블링 마케팅은 단순히 상업적 목적이 아닌 기업의 이미지 개선 목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방구석 연구소에 이어 ‘스낵팟’ 에서도 레이블링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스낵팟은 간식 및 과자 리뷰 사이트로, SPTI(SNACK POT+MBTI), 일명 스낵 심리 테스트를 개발했다. 12개의 간단한 질문을 통해 검사 결과로 매운 새우깡 등 이용자 성향과 비슷한 스낵 캐릭터를 알려주는 방식인데 1,100만명이라는 엄청난 테스트 참여자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스낵팟은 엄청난 규모의 소비자 데이터를 확보했고, 이것을 기반으로 추후 출시할 애플리케이션을 개선하는 것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레이블링 마케팅이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마켓컬리의 경우 ‘내가 음식이라면’ 테스트를 제작해 SNS에 배포했다. 이 테스트 역시 몇 가지 심리 테스트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른 자신의 성향을 특정 음식으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테스트에 등장하는 음식은 모두 마켓 컬리에 존재하는 밀키트로, 마켓 컬리는 이 테스트를 통한 홍보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간의 성향을 음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직관적인 효과가 부족하고 전문성 또한 저조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대중들의 공감을 사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SNS에서 활발히 공유되지 못했다.
레이블링 마케팅의 장점은 대중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공유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점은 달리 말하면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공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레이블링 마케팅을 위해서는 트렌드를 꿰고 있어야 하고 대중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레이블링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레이블링 마케팅은 SNS 등 매체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마케팅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자가 체험 중인 무료 성격유형검사(MBTI 테스트)
레이블링 게임의
빛과 그늘
이처럼 레이블링 게임은 나도 모르는 내 성격과 취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자아 정체성을 규정하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앞서 봤던 사례들처럼 최근에는 그 스펙트럼을 마케팅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특히 매년 대한민국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예측해온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도 레이블링 게임이 소개된 바 있을 정도다. 여기서 레이블링 게임은 키워드 ‘COWBOY HERO’에서 R(‘Real Me’ : Searching for My Real Label)에 상응하며, 현대인의 자아 찾기는 소비자의 소비 행태를 결정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레이블링 게임의 과정은 총 세 단계로 세분화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계량화(quantification)’다. 테스트를 통한 데이터로 자신을 계량화하고 유형을 정한다. 두 번째는 ‘비유(comparison)’다. 브랜드나 소비재의 이미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마지막 단계는 ‘공유하고 인정받기(sharing&identification)’다. 앞선 두 과정을 통해 자신을 레이블링한 뒤 그 결과를 SNS에 공유함으로써 타인과 즐겁고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놀이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레이블링 게임은 MZ세대의 욕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돼있다. 특히 마지막 단계인 ‘공유하고 인정받기’의 과정을 통해 SNS에 인증하는 것과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하는 MZ세대의 특성과 부합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은 MZ세대는 진로 선택과 취업 등에서 이전 세대보다 심화된 불안감을 경험하게 됐다. 이에 따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여러 방법으로 확인받고 비슷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과열돼 레이블링 게임의 결과에 대해 맹신을 하는 경우로 나아가기도 한다. 특히 소비자들은 레이블링 게임을 어느 정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이와 같은 심리 검사를 신뢰하는 이유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바넘 효과는 이러한 테스트 결과로 나온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현상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보편적인 현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일례로 특정 유형으로 나온 결과를 자신에게 지정해 그에 맞는 삶을 실행하고자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삶을 맞춰 사는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특정 타입에 맞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선후 관계가 바뀐 것이다. 또한 애초에 다양한 인간을 몇 가지로 유형화해 획일적으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MBTI 테스트는 과학적 방법으로 신뢰성이 높지만, 인간의 성격을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등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처럼 레이블링 게임은 타인과의 대화에서의 새로운 물꼬를 터줬고 자신을 소개하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레이블링 테스트 결과가 본인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과잉 몰입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그저 단순한 놀이로서 즐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테스트 결과에서 나아가 ‘본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와 같은 삶에 대한 주체적인 고민의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