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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9주년, 영화로 추도하는 '기림의 날'
서유정 ㅣ 기사 승인 2024-09-11 15  |  694호 ㅣ 조회수 : 52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이하 웹진 결)이 2024년 기림의 날을 맞이해 8월 14일(수)부터 27일(화)까지 약 2주간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했다.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담은 국내외 영화들을 ‘입을 떼다’와 ‘귀를 열다’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눠 선보였다.



‘입을 떼다’는 1970~1990년대에 제작된 영화들로 그 당시 현존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을 파헤치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에 목적을 둔 위안부 관련 초기 영상들이다. 반면에 ‘귀를 열다’는 2000년대 이후, 생존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어떻게 피해 사실을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다양한 시도와 고민을 담고 있는 영상들이다. 이번 문화면에서 기림의 날을 맞이해 여섯 편의 영화 가운데 ‘입을 떼다’ 상영작 <오키나와의 할머니>와 ‘귀를 열다’ 상영작 <그리고 싶은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인 시각에서 조명한 ‘위안부’



‘입을 열다’ 상영작 <오키나와의 할머니>는 1970년대, 위안부 피해자 사실을 밝힌 배봉기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이후에도 오키나와에 잔류해 한국인 신분으로 살아가야 했던 배봉기는 오키나와 토카시키섬의 위안부 7명 중 한 명이었다.



<오키나와의 할머니>가 다른 위안부 영화와 대비되는 것은 이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일본인 남성이라는 점이다. 야마타니 데쓰오 감독(이하 데쓰오 감독)은 “남자인 내가 여성의 시점으로 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애초에 무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별로 다뤄지지 않았던 침략당한 측의 가난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기록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당시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는 가해국과 피해국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강조하기보단 제국주의 아래 희생됐던 ‘개인’의 역사를 담고자 했다.



아키코 기억 속에 잠든 배봉기



데쓰오 감독과 자원봉사자가 7일간 설득한 끝에 인터뷰에 응한 배봉기는 “일도 안 하는데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에 왔다고 고백했다. 증언에 따르면 토카시키섬에서 배봉기는 ‘아키코’라고 불렸다. 데쓰오 감독은 그 당시 위안소가 위치했던 마을에 찾아가 수소문한 끝에 배봉기는 당시 자주 울었던 소녀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데쓰오 감독이 그녀에게 마을 사람의 증언을 전하며 울었던 것을 기억하냐고 묻자, 배봉기는 까마득한 과거를 추적하는 듯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울던 기억도 있다고 담담하게 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모든 아픔이 지나간 듯 고요해 보였지만, 이후 한동안 전쟁 트라우마로 인한 두통에 시달리며 감독의 방문에 불응하기도 했다. 그녀는 데쓰오 감독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식사에서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고 또 불행한 인간이 이 전쟁에서 죽지 않고 용케 살아 있네요”



배봉기는 1991년, 오키나와에 머물다가 끝내 피해 사실이 부끄러워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한중일 프로젝트, 평화를 그리다



‘귀를 열다’ 상영작 <그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을 위해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을 출판하자는 일본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 과정을 담았다. 2007년,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인 권윤덕 작가는 일본의 제안에 응해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실제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을 주인공으로 그림책을 그리겠다고 결정해 일본 작가와 기획의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권윤덕 작가는 “불쌍한 할머니의 그림책 같은 건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작가로서, 전쟁 피해국의 후손으로서 역사적 고발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보였으나 시작부터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리고 싶은 것과 그릴 수 있는 것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12권의 가제본을 만들기까지, 권윤덕 작가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힌다. 일본 출판사는 어린아이들에게 위안부 사안은 성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일본 우익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난감한 입장을 드러냈다. 또한 권윤덕 작가는 국내 출판 기획 의원들과 의견 차이조차 쉽게 좁히지 못하며, 현실적인 문제들과 타협하기 위해 긴 시간 고군분투한다. 영상 속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그림을 수정하기 위해 먹을 가는 권윤덕 작가의 모습은 작가 본인이 실현하고자 했던 열망과 현실적 어려움 사이의 간극을 묵묵히 소화해 나가는 듯 보였다.



지속적인 수정 작업 끝에 그녀의 책은 2010년, 『꽃할머니』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여러 초등학교에 방문해 낭독하는 시간도 가지며 아이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렸지만, 결국 일본 출판사 측의 무기한 연기와 수정이 필요하다는 회신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로부터 8년 뒤, 무기한 연기 끝에 일본어판 출간에 성공했으나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는 분위기는 여전해 지속해서 출판의 어려움을 겪었다.



 



소외라는

그림자 속에서



<오키나와의 할머니> 속 배봉기와 『꽃할머니』 주인공 심달연 모두 위안부 피해자임에도 긴 시간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광복 이후 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과거의 고통을 인내했던 배봉기와 심달연은 그들의 과거를 자신의 팔자 탓으로 돌렸다. “위안부 문제를 개인사로 처리하려는 상황 속에서 국가를 다루고자 했다”는 권윤덕 작가의 말처럼 두 영화 모두 위안부는 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졌던 참사였다는 것을 그들의 일상을 통해 시사했다.


서유정 기자

suj7260@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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