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라미드는 넓은 밑면과 하나의 정점으로 모이는 형태의 건축물을 이르는 총칭이다. 피라미드하면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떠올리겠지만,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피라미드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이집트가 아닌 수단이다). 그 중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내부 또한 구조상 완벽에 가깝다. 북방향 건물로 지어졌으며 모든 방에는 자연적으로 환풍 기능이 있다. 너무나 거대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고도 문명이 피라미드를 제작했다는 초고도문명설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다. 당대 이집트의 능력으로 피라미드 건설은 충분히 가능했다.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에서 나일강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금은 사막뿐이지만 기원전 북아프리카는 수목으로 울창한 비옥한 땅이었다. 고대 북아프리카는 매년 일어나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기하학, 측량술이 발달했다.
나일강이 범람하면 새로운 흙으로 일대가 뒤덮였다. 땅 소유주들은 본인의 땅을 알아야 했다. 이에 땅을 측량하는 전문가가 나서서 명확한 영토 크기를 측정했다. 이 과정이 고대 이집트에서 수천년 반복됐다. 당연히 측량술과 기하학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땅의 크기를 정확히 측정해야 했던 이집트 측량사들에게 피라미드의 정교한 계산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파라오(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들은 나일강이 범람할 때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나일강 범람은 최소한 3~4개월 동안 지속됐고 노동자들은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런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국가가 마련한 정책이 피라미드 건설이다.
흔히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장면으로 채찍질이 난무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앙상한 노예들이 땡볕 아래서 힘겹게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장면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피라미드에 투입된 노동력은 노예가 아니다.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은 노예가 아닌 평민이었다. 고대 이집트는 세금으로 곡물을 걷어 많은 곡물을 비축했다. 파라오는 곡물을 썩힐 바에야 사람들에게 나눠줄 방법을 생각하다가 강제로 일을 시키는 대책을 세웠다. 범람으로 굶주리는 노동자에게 일자리, 식량을 제공하는 대신 파라오는 노동력을 얻었다. 요컨대, 피라미드 건설은 국고를 열어 빈민을 지원하면서 신의 권위를 세우는 국책사업이었던 셈이다.
피라미드 건설이 강제 노역이 아니라는 증거는 출근 명부가 세간에 드러나면서 확실해졌다. 명부에는 전갈에 물린 한 노역자가 일주일을 쉬었다든가, 잔치 때문에 쉬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형의 시신을 미라로 만드느라 결근하거나, 전날 술을 많이 마셔 숙취 때문에 일을 빠지는 등 재밌는 일화도 포함돼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후세계에서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유는 죽은 파라오가 살 사후세계의 왕궁을 만들기 위해서다.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으로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라는 증거는 부족하다. 오늘날 피라미드 내에서 채굴된 왕의 무덤이라고 여길만한 증거물은 석관(石棺) 뿐이다.
이 때문에 초고대문명설, 외계인 개입설 등 이집트 피라미드를 둘러싼 다양한 학설이 아직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들은 이미 논파된 지 오래다. 시간이 흘러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피라미드가 국민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에서 설립된, 고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박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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