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의 우울증 및 불안증의 발병률이 2배가량 뛰면서, ‘우울’은 현대사회의 고질병이 됐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2020년 우울증 발병률은 OECD 국가 중 36.8%로 1위였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4명이 우울감 및 우울증을 느끼고 있다는 지표다. 사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여러 우울 지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국가였는데, “OECD 자살률 1위”는 근 20년간 한국 사회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키워드이다. 이외에도 ‘행복지수 전세계 최하위권’, ‘우울증 치료율 OECD 꼴찌’ 등 우울 사회라는 불명예를 꾸준히 남기고 있다.
상실의 시대 속 청년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20대 환자 수는 2017년 7만 8,016명에서 2021년 17만 7,166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우울증 환자의 전 연령 중 6위였던 20대가 2021년에는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현재 모든 연령층 중에서도 20대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다.
사회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하고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20대 청년들의 마음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거기에 근 3년간 지속됐던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상황에 더욱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이제 사회에 첫발을 딛는 20대 청년들에게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불안한 사회에 경쟁은 과열됐지만 정작 자신이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조차 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제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대로 전공 살려서 취업하는 게 맞는 지, 전공을 살릴 수는 있을지… 아직 저는 준비가 안 됐는데, 다들 이 나이 되면 취직 준비하니깐 제 진로에 대한 확신 없이 끌려다니는 느낌이에요. 친구들과 달리 저만 멈춰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우울해질 때가 많아요.” -재학생 A씨
본지가 지난 3월 29일(수), 우리대학 재학생 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일주일간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매일 그랬다 20.8% ▲자주 그랬다(3~4일 이상) 37.5% ▲가끔 그랬다(1~2일) 29.2% ▲전혀 그렇지 않았다 12.5%로 ’자주 그랬다‘가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았다.
또 우울감의 이유를 묻는 질문(복수 응답 가능)에는 ▲친구관계 ▲학업고민 ▲취업• 진로 고민이 각각 53.2%, 51.1%, 48.9%로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았고, 이외에는 ▲가정 문제 17% ▲잘 모르겠다 17% ▲연인 문제 14.9% ▲기타 14.7%의 응답이 따랐다. 설문에 응답한 학생들의 과반수가 대인관계, 진로 및 학업을 우울감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었다.
우울감의 해소 방식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 가능)에서는 ‘혼자 삭힌다’는 응답이 70.8%로 대부분이었고, 뒤이어 ‘취미활동’, ‘주변인에게 이야기한다’는 응답이 각각 37.5%, 31.3%의 응답률을 보였다. 한편 ‘병원이나 약물의 도움’, ‘전문가와의 상담’은 각각 10.4%, 8.3%로 낮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설문 결과, 많은 학우들이 상당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정작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는 이는 적었다. 대부분이 혼자 삭히는 방식으로 저마다의 우울을 견디고 있었다.
“힘들었을 때 혼자 감내했다. 가족 이야기는 어디가도 못하겠고… 은연중에 내비치긴 했다. 그것도 진지하게는 이야기 못 했다. 친구들끼리 장난식으로 웃으면서. 아무래도 말하기 힘든 주제이니까…” -재학생 B씨
우울증과 살아간다는 것
김현수 씨(가명)는 몇 년 전 있었던 우울증이 작년부터 재발해 꾸준히 항우울제를 복용 중이다. 본지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Q. 평소 우울감은 어떻게 느끼는 편인가.
A. 우울감의 정도는 10을 최대치로 두자면 평소에 항상 5-6 이상의 우울감을 깔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어떨 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해지곤 한다.
우울증이 있으면 일단 슬프다. 슬픈 영화를 본 것도 아닌데… 그리고 생각에 계속 매여있다 보니 잠이 잘 안 온다. 그래서 불면증이 있다. 최근에는 입맛이 없어 식사를 거르니 7-8kg가량이 빠졌다. 뭘 하든 의욕도 안 들고 기운이 없다. 기억력 감퇴도 크다. 항상 멍한 상태가 지속되고, 뭔가를 읽어도 머리에 안 들어오고, 들었던 것도 기억이 잘 안 난다.
Q. 우울감은 어떻게 해소하려고 하는가.
A. 일단 약물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다. 우울증 약이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약이 아니라, 우울을 멈추게 하는 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약이 마음 아프고 괴로운 생각들을 멈추게 해준다.
약물 이외에는 하염없이 아파하고 고통을 마주하면서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한다. 예전에는 슬픈 생각들을 외면하고 피하려 했는데, 결국에는 찾아오더라. 이제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매듭을 지으려고 한다. 그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힘들긴 하다. 해답이 안 나온다면 해답을 찾을 때까지 하염없이 아파하는 것 같다.
내 힘으로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으면 전문적인 기관에서 상담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외부 상담은 너무 비싸서 학교 상담센터를 이용하려고 한다. 외부 상담은 50분에 10만 원 정도 된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상담센터도 있지만 대기가 길다.
Q. 주변에는 이야기를 하는 편인가.
A. 주변에는 잘 말을 안 한다. 몇 년 전에 처음 우울증을 겪었을 때는 내가 주변에 알렸다. 근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더라. 내가 힘든 모습을 보고 같이 힘들어해 주고, 걱정해주는데 그게 너무 미안하고 싫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을 잘 안 했다.
Q. 우울의 이유가 있는가.
A.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가장 크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만한 고민인데, 내가 유독 그에 대한 불안감이 심한 편 같다. 이런 고민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가 힘든 일을 만나면 더 많이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별을 한다거나, 또 다른 실패를 겪는다거나…
이건 최근에 깨달은 건데, 내가 가족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없다. ‘힘들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않나’ 혹은 ‘너를 위해 슬퍼해 줄 사람을 생각하면 나쁜 생각을 돌이킬 수 있지 않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족이 선뜻 떠오르지 않더라.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고, 가족에게서 오는 결핍이 채워지지 못하니까 또래에 비해 더 많이 흔들리는 것 같다.
‘마음의 감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울증은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질병이다. 더불어 우울증이 감기처럼 흔해져 버린 요즘 ‘마음의 감기’라는 단어는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울 사회로의 전락, 특히 20대 청년들의 우울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청년들의 모습에서 시대의 이면을 보게 된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장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