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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헌책방은 책이 나를 선택하는 곳’, 윤성근 작가의 이야기
서유정 ㅣ 기사 승인 2024-11-05 13  |  696호 ㅣ 조회수 : 6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 작가



손때 묻은 책들의 위태로운 생존기



 소설가 한강이 한국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강 신드롬’이 몰아치고 있지만, 헌책방 거리의 변화는 여전히 미미하다. 한때 70여 곳 넘게 즐비했던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살아남은 책방은 현재 단 14곳뿐이다. 나날이 감소하는 헌책방 실정 속에서 17년 동안 묵묵히 존립하고 있는 헌책방이 있다. 본지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이자, 『헌책방 기담 수집가』를 집필한 윤성근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헌책방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일반 서점은 새 책이니 자유롭게 볼 수 없었어요. 그런 저를 딱하게 본 대학생 누나 형들이 헌책방의 존재를 알려줬죠. 헌책방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서점과는 달리 책을 만지고 읽어볼 수 있는 분위기잖아요. 그때부터 헌책방에 대한 꿈이 생겼죠. 관련 전공을 나오지 않아 한때는 컴퓨터 관련 업계에서 일했지만,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 출판 회사에 취직해 어깨 너머로 유통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책 관련 일을 배웠어요. 또 큰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2년 동안 일한 끝에 제 헌책방을 운영하게 된 거죠.



 헌책방은 일반 서점에서 보기 힘든 절판된 책들이 진열돼 있어, 여러 분야의 서적을 접할 수 있다. 새 책보다 저렴한 가격에 희귀한 서적들까지 구매할 수 있어 헌 참고서나 인문학 등을 사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Q. 책을 들여오고 진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A. 헌책방은 도매상 같은 시스템이 전무하다 보니, 손님들이 파는 부분에 많이 의지하거나 규모가 큰 헌책방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또 책을 많이 소지하고 계시는 손님들끼리도 나름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책을 팔아주시는 손님분들과의 신뢰가 중요하죠. 그분들도 나의 책이 알맞은 곳에 팔려서 쓰임이 있기를 바라시니까요.



 진열된 책들은 제 취향이 반영된 것이기도 해요. 동서양 철학책, 외국 소설책, 90년대 막시즘에 입각한 젠더 관련 책들도 있어서 현대의 페미니즘과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지 비교하기도 좋고요. 또 80, 90년대 시집도 한쪽에 마련돼 있어요. 대형 서점은 대부분 특정 책을 구매하려는 목적으로 방문하시지만, 헌책방 같은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책이 있을 확률이 낮아요. 그래서 목적을 갖고 오시는 경우는 드물고, 오늘 어떤 책이 나를 선택해줄지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오시는 분들이 많죠. 적어도 이곳에 진열된 책만큼은 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 손님들과 책에 관한 여러 얘기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서 모두 읽은 책들로 진열하고 있어요.



 진주고속터미널 2층에 자리한 ‘소문난 서점’은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으로, 30만 권이 넘는 고서적을 보관하고 있으나 누적 적자로 인해 지난 7월 폐점 위기를 겪었다. 2000년대 이후 온라인 서점과 대형 중고 서점 등이 활성화됨에 따라 경영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Q. 중고 서점은 나날이 감소하고 있는데, 17년 동안 변함없이 운영하고 계시는 비결이 있을까요?



A. 90년대에 일본에서 ‘북오프’라는 중고 대형 서점이 들어섰어요. 그로 인해서 일본 중고 서점들이 타격 입는 걸 보면서 언젠가 우리나라도 저런 대형 중고 서점이 들어설 거라고 짐작했죠. 또 그 당시 일본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바라보면서 대형 프렌차이즈에서 맛볼 수 없는 개성과 독특한 분위기를 잘 형성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방에서 영화 감상회를 하고, 소모임을 하면서 당시에는 파격적인 도전을 했어요. 그때 제가 처음으로 ‘심야 책방’이라는, 밤에 오픈해서 다음 날 첫차가 오기까지 운영하는 일종의 이벤트도 진행해서 여러모로 9시 뉴스에서도 취재를 오신 적도 있었어요. 저만의 아이디어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게 운영에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Q. 책에 담긴 손님들의 사연을 담아 출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제가 헌책방에서 일했을 당시에 어떤 할아버지께서 한 책을 찾으셨는데, 그때 재고가 없어서 만약 들어오게 되면 연락드리겠다고 연락처를 받았었거든요. 우연히 그 책이 몇 달 뒤에 들어와서 그분께 연락을 드렸는데, 그때 왜 그 책을 찾았던 건지 여쭤봤더니 그 책에 나왔던 문장을 인용해서 첫사랑에게 연애편지를 보냈었는데,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지금 다시 찾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책과 얽힌 사람들의 사연이 정말 많고, 다채로워요. 가족과의 혹은 친구, 연인과의 그도 아니면 나 자신과의 이야기들이요. 책을 찾기 위해 들이는 수고와 시간에 대한 비용을 돈 대신 사연으로 지불하면, 저는 그 사연을 책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독자분들의 사랑에 힘입어서 일본, 중국에서도 출판됐고, 일본에서는 에세이 부문에서 베스트 셀러에 올라 정말 뜻깊었어요. 간간이 일본인 분들도 책방에 찾아와주셔서 더 감사해요.



서유정 기자 suj7260@seoult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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