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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1년 전 SNS에서 유명 인플루언서가 진행한 공동구매를 통해 브랜드 티셔츠를 저렴하게 구매했다. 해당 인플루언서는 수입신고필증을 제시하며 “병행수입한 정품”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최근 중고 판매를 위해 리셀 전문 플랫폼에 해당 상품을 보낸 결과 ‘가품’ 판정을 받았다. 이 일을 겪은 A씨는 이후 브랜드 의류는 대형 쇼핑몰에서만 구매하기로 다짐했지만, 정작 대형 쇼핑몰에서도 병행수입 가품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병행수입 제품은 대부분 가품인가?”라는 의구심을 품게 됐다.
병행수입이란?
해외 브랜드 제품의 국내 유통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식수입으로 해당 브랜드와 직접 계약한 공식 수입사가 상품을 수입·유통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병행수입’으로 공식 수입사가 아닌 업체나 해외 대리점을 통해 국내로 들여오는 방식이다.
병행수입 방패 삼는 가품 유통업자들
그러나 국내 병행수입 시장이 가품 유통의 방패로 악용되면서 소비자 피해가 늘고 있다. 현재 세관은 병행수입 제품을 통관할 때 수입신고필증만 확인할 뿐, 진품 여부를 별도로 검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와 소비자도 제품이 진품인지 가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 가품 유통업자들은 논란이 터져도 “정식 절차를 거쳤고 우리도 속았다”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실정이다.
특히 온라인 소형 마켓과 SNS에서 가품 유통이 빈번하다. 인플루언서가 공동구매를 진행해 브랜드 의류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며 가품을 유통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2023년 인스타그램에서 10만 400여 건의 가품이 적발됐으며 이는 2020년 대비 약 3배 증가한 수치다.
가품 문제로 인한 소비자들의 우려도 크다.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가 병행수입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조사한 결과 26%가 ‘가품 의심’이라고 답했다.
믿고 사는 대형 쇼핑몰도 가품 몸살
최근에는 대형 쇼핑몰에서 판매된 병행수입 의류들도 가품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12월, 패션 유튜버 B씨는 서울 노원구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의류 브랜드 ‘스투시’ 맨투맨을 9만 9,000원에 구입했다. 정가 17만 9,000원과 큰 가격차에 의구심을 가진 B씨는 한국명품감정원과 리셀 전문 플랫폼 ‘크림’에 진품 감정을 의뢰했고, 두 곳 모두에게서 가품 판정을 받았다.
B씨는 “신세계 그룹을 믿었는데 신뢰가 깨졌다”라고 토로했다. 이마트는 판매를 중지하고 환불을 진행했지만 “협력사가 제출한 여러 서류를 검토했으나 문제가 없었고, 정상적인 병행수입 절차를 거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하며 문제의 책임을 협력사 측에 돌렸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2023년에도 병행수입한 몽클레르 패딩이 가품 논란에 휩싸이는 유사 사례가 있었다. 또한 지난 2022년에는 럭셔리 쇼핑 플랫폼 ‘발란’에서 병행수입한 나이키와 스투시 제품과 ‘무신사 부티크’에서 병행수입한 피어 오브 갓 에센셜 티셔츠의 가품 논란이 일었다.
가품 유통, 막을 방법은 없을까
가품을 막기 위해 기업들은 자체 검수 과정을 강화하고 제3자 공인인증제와 보상 제도 등을 도입하고 있다. 무신사는 브랜드 본사나 공식 인증 파트너가 제공하는 정품 인증 서류를 확인하며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와 협약을 맺어 명품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이마트 그룹사 SSG는 한정판 거래 플랫폼 ‘솔드아웃’과 계약을 맺어 검수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그러나 가품 원천 차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자체 검수에도 한계가 있고 유통 과정이 복잡해 제품의 명확한 출처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진품 입증을 위해 인보이스* 등 유통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면 좋지만, 이 경우 경로가 노출돼 본사의 견제가 생겨 병행수입의 장점이 사라질 수 있다. 게다가 가품 판매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도 문제다. 가품 판매 적발 시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있지만, 최근 5년간 평균 벌금은 200만~300만원대에 그치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확인하는 방법
시중가 대비 지나치게 저렴한 제품은 의심해 보고,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나 판매처의 정보와 비교해 보는 것이 안전하다. 시리얼 넘버, QR, 홀로그램이 있는 제품은 인쇄 상태와 오탈자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 후기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인보이스: 해외에서 상품을 수입할 때 발행하는 송장으로 거래 조건·수량·단가 등이 기재된다.
황아영 수습기자 ayoung6120@seoultech.ac.kr
디자인 | 왕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