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소개 l 공지사항 l PDF서비스 l 호별기사 l 로그인
기획
한 잔에 담긴 향과 시간, 한국 위스키 이야기
최율 ㅣ 기사 승인 2025-05-12 15  |  703호 ㅣ 조회수 : 135



 한국의 밤은 소주와 함께 시작되고, 맥주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두 술은 북적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워가며 한국의 술자리를 이끌어 나갔지만, 위스키는 그 사이 어디에도 끼지 못하던 값비싸고 낯선 술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모든 술자리를 멈춰 세우며 마주한 고요한 밤에서 위스키는 빛나기 시작했다. ‘홈텐딩’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은 익숙한 초록병 대신 위스키 병의 코르크를 뽑았다. 조명을 낮추며 느낌 있는 잔을 하나 꺼내 호박빛 위스키를 따라내자 오크통 속에서 축적된 향과 시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위스키는 한국 술 문화 속 자그맣게 자리잡으며 사람들의 밤을 물들여 나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서 태어난 ‘한국의 위스키’, 본지에서는 그 이야기를 펼치며 위스키의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 투어 가이드가 위스키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 ‘기원 위스키 증류소’



 지난 4월 26일(토), 기자는 취재를 위해 남양주시에 위치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를 방문해 증류소 투어에 참여했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남양주시의 산골짜기를 따라 올라가자, 그 끝에는 기원 위스키 증류소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증류소의 외관은 평범한 창고와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위스키의 고향이라 주장하듯, 건물 외부에는 위스키를 숙성한 오크통들이 즐비돼 있었고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향긋한 곡물과 숙성되는 위스키의 향이 코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투어 시작 예정 시간이 임박하자 투어를 담당하는 직원이 손님들을 이끌며 증류기가 위치한 증류소의 2층으로 안내했다. 모든 손님이 들어와 증류소의 문이 닫힌 그 순간, 향기로운 술의 향기가 기자를 집어삼킬 듯 덮쳐왔다. 투어를 진행하는 직원은 우리를 둘러보며 마치 오래 기다려온 이야기를 이제야 들려줄 수 있다는 듯한 설렘으로 살짝 웃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이야기, 싱글몰트



 “기원 위스키 증류소는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입니다” 직원이 투어에서 내뱉은 첫 마디였다. 직원은 덧붙여 설명을 이어나갔다. “위스키란 여러 곡물을 발효시킨 뒤 증류해 나무통 안에서 숙성시킨 술을 뜻하고, 재료를 기준으로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로 분류된다”며 “보리에 싹을 틔워 말린 맥아만을 사용한 경우 ‘몰트 위스키’, 이외의 곡물을 사용해 만든 경우 ‘그레인 위스키’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는 증류 방식 또한 달랐다. 몰트 위스키는 많은 풍미와 개성을 담아내지만, 증류가 가능한 양이 적다는 특징을 가진 단식 증류기를 사용하고, 그레인 위스키는 많은 양을 증류시킬 수 있지만 비교적 적은 풍미와 개성을 담아내는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해 증류된다. 증류 방식의 차이로 인해 맛과 풍미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이 독특했다.



 또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에서 만드는 위스키인 ‘기원 위스키’는 맥아만을 사용해 만든 ‘싱글몰트’ 위스키라는 점을 강조했다. 싱글몰트 위스키란, 단 하나의 증류소에서 제작한 단 한가지 몰트 위스키 원액만을 이용해 만든 술을 의미한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증류소가 위치한 환경과 추구하는 맛에 따라 생기는 독창적인 풍미를 담아내기에 증류소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어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 각광받는다.

 



위스키 한 방울의 긴 여정



 위스키의 제작 과정은 크게 ▲분쇄 ▲당화 ▲발효 ▲증류 ▲숙성의 5단계로 구성된다.



 





 



 분쇄 단계에서는 맥아를 세 가지의 입자 크기로 분쇄하는데, 입자 크기에 따라 굵은 순서대로 허스크, 그리스트, 파우더 순으로 불린다. “맥아의 분쇄 입자가 작을수록 다음 단계인 당화 과정에 유리하지만, 가장 작은 입자인 파우더가 많이 투여된다면 당화가 진행되지 않고 떡 반죽처럼 돼버린다”며 “허스크, 그리스트, 파우더 순서대로 1:2:7 의 비율을 가져가는데, 우리는 이 비율을 황금 비율이라 부른다”고 밝혔다.



 당화 단계에서는 분쇄된 맥아를 당화조에 넣고 뜨거운 물을 투입해 맥아의 당을 뽑아낸다. “당화 과정은 식혜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며 “맥아에 뜨거운 물을 투입해 만들어진 이 ‘맥아 식혜’를 영어로는 ‘워트’, 우리말로 ‘순수 맥아 즙’이라고 한다”고 설명하며 당화 과정을 식혜 제작 과정에 비유했다.



 발효 단계에서는 당화 과정에서 얻어낸 워트 속에 효모를 투입해 알코올을 만들어내는데, 이때 워트는 7~8%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술로 거듭나게 된다. 약 160시간가량의 발효 과정을 마친 술은 ‘워시’라고 불리며 발효 과정 속에서 꽃, 과실향 등과 같은 위스키의 향을 이루는 요소가 생겨난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는 마침 발효 과정중인 워시가 있어 시음을 해 볼 수 있었다. 직원이 시음을 위해 발효조를 열자 고소한 곡물 냄새, 그리고 막걸리의 냄새와 비슷한 향긋한 향이 피어올랐고, 그 안에는 발효가 되고 있는 것을 증명하듯 뽀글거리는 워시가 있었다. 워시를 받아 마셔보니 막걸리와 맥주가 섞인 듯한 맛이 입안을 휘감았고 미약한 꽃과 열대 과일과 같은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증류 단계에서는 발효가 완료된 워시를 단식 증류기에 투입해 2번의 증류를 거치며 70~80%의 높은 알코올 도수로 증류해낸다. 증류 단계에서 얻어낸 높은 도수의 술을 ‘스피릿’이라 부르며, 기원 위스키 증류소에서는 약 1만L의 워시를 증류해 700L 가량의 스피릿을 얻어내 사용한다. 증류를 마친 스피릿 또한 시음이 가능했다. 시음을 위해 잔에 스피릿을 따라낸 그 순간, 워시에서 미약하게 느껴졌던 화사한 꽃과 과일 향기가 농축돼 마치 폭탄처럼 향이 터져나왔다.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치지 않은 술이었음에도 이렇게 화사한 향을 뿜어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마지막 숙성 단계에서는 스피릿을 오크통 안에 채우고 수년간 숙성시켜 나무의 향을 술에 스며들게 한다. 기원 위스키의 경우 70~80%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스피릿을 59.1%의 도수에 맞춰 오크통에 채워넣는다. 도수를 낮추는 이유는 “한국의 위험물 안전관리법에 따라 알코올 도수 60% 이상의 술은 위험물으로 취급돼 관리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위스키가 숙성되고 있는 창고에 들어선 순간 짙고 달콤한 위스키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숙성이 된 위스키 또한 시음이 가능했는데, 병에 담긴 형태의 위스키가 아닌 오크통 안에 숙성되고 있는 위스키 원액을 바로 마셔볼 수 있었다. 약 3년간 숙성된 위스키 원액을 한 모금 입에 머금는 순간 달콤한 과일 정원이 입안에 피어나듯 달콤하고 화사한 향이 터져나왔다. 꿀에 절인 살구, 마르다 못해 끈적해진 건포도와 같은 달달한 과실의 맛이 겹겹이 퍼지며 입안 가득 남아 한참을 떠나지 않는 여운을 남겼다.



 위스키 증류소 투어는 위스키 시음을 끝으로 마무리됐지만, 아직 궁금한 점이 산더미처럼 남았던 기자는 남은 질문들을 안고 박용찬 기원 위스키 증류소 마케팅 팀 대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기원 위스키 증류소는 어떠한 계기와 목표로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기원 위스키 증류소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A. 한국은 오랫동안 위스키 생산의 불모지라고 불려 왔습니다. 그 이유로 증류용 보리와 구리 증류기와 같은 원재료 및 자재 공급의 어려움과 위스키 생산 지식의 부재 그리고 높은 주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원 위스키 증류소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과 전문적인 생산 지식을 갖춘 선구자들이 함께 모여 한국을 빛낼 위스키를 만들고자 설립됐습니다.

‘기원 위스키 증류소’는 이전 ‘쓰리 소사이어티스’라는 이름 아래 증류소의 문을 열었습니다. ‘쓰리 소사이어티스’라는 이름은 미국, 스코틀랜드, 대한민국의 세 개의 사회가 만나 증류소를 설립하게 됐기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한국 수제맥주 회사 ‘핸드앤몰트’를 매각 후, 기원 위스키 증류소를 설립하신 재미교포 Bryan Do (도정한) 대표님. 두 번째로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45년 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스키 증류소에서 증류, 숙성 등 모든 방면에서 경험을 쌓으신 마스터 디스틸러* 겸 블렌더인 Andrew Shand (앤드류 샌드)님. 마지막으로 한국의 직원들로 구성돼 쓰리소사이어티스라는 이름으로 한국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Q.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기원 위스키의 특징이 있을까요? 위스키의 품질, 맛, 제조과정 등에서 타 국가의 위스키와의 차별점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기원 위스키는 장인정신, 전통의 재해석, 높은 품질이라는 세 가지 원칙이자 철학 아래 탄생됩니다. 가장 좋은 품질의 보리를 사용해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관리하고, 증류 원액 중 가장 맛이 좋은 본류 중에서도 10~15% 만을 사용해 숙성합니다. 또한, 한국적인 풍미를 담기 위해 고추장과 같은 복합적인 매운맛을 담을 수 있는 증류기를 사용합니다. 전통적인 위스키 생산 과정 속에 장시간 발효, 다양한 보리와 효모 사용, 이전에 없던 한국적인 맛을 담을 수 있는 오크통(복분자, 전통주 숙성 오크통)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점들이 하나 하나 모여 타 국가의 위스키와의 차별점을 만들어냅니다.


 



Q. 항아리 옹기 숙성, 한국의 재료(쌀 위스키 등)와 같이 독창적인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많은 도전을 시도하셨다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도전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하나하나 다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실험적인 위스키들이 기원 위스키 숙성고에서 숙성되고 있습니다. 홍고추 시즈닝 캐스크, 전통주를 숙성했던 캐스크 등 한국적인 풍미를 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한국산 보리, 효모, 오크통 등 모든 원재료와 숙성을 한국에서 진행한 ‘기원 신갈나무’와 ‘기원 떡갈나무’ 위스키를 성공적으로 출시했습니다. 올해에도 좋은 기회가 있다면 더욱 혁신적인 제품들을 통해 저희의 도전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박용찬 대리는 “기원 위스키 증류소는 제품의 품질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고집이 지금의 기원 위스키를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라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학생 여러분들도 인생에서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아야 할 중요한 가치를 정립하고, 그 가치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라며 우리대학 학우들의 미래를 응원했다.



 유난히 길고 고단한 하루, 혹은 소중한 사람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날 잔 하나를 들고 여유롭게 향과 시간을 음미해 보며 위스키가 주는 여운을 느껴보는건 어떨까.

 



*마스터 디스틸러 : 위스키 증류소에서 모든 증류 과정과 품질을 책임지는 최고 전문가.

 



최율 기자 obdidian0428@seoultech.ac.kr


기사 댓글 0개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쓰기 I 통합정보시스템,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으로 로그인 하여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확인
욕설,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2025회계연도 대학회계 제1차 추가경정예산서 총괄표
사진투고_내 곽곽이가 제일 귀여워!
여기어때_론 뮤익
2024회계연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회계 결산 총괄표
704_이주의한컷 - 학생복지위원회 'Buddy Box'
704_곽곽네컷 - 오늘은 분명 더울거야!
704_독자퀴즈
곽대인을 만나다_묵묵히 캠퍼스를 지키는 경비원 김성희 씨와의 인터뷰
[01811]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 최초발행일 1963.11.25 I 발행인: 김동환 I 편집장: 김민수
Copyright (c) 2016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