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격히 발전한 생성형 AI는 어느새 대학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생들은 과제뿐만 아니라 공부, 레포트 작성에도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A 씨는 생성형 AI를 얼마나 이용하냐는 질문에 “거의 모든 부분에서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시간을 절약하면서 더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생성형 AI에 대해 큰 믿음을 보였다. 이처럼 생성형 AI는 이미 대학생들의 학습 파트너로서 자리 잡고 있다.
학생들은 생성형 AI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걸까. A 씨는 “평소 수업을 듣다가 수업 내용을 놓칠 때가 있다. 그때 챗GPT에 PPT 사진을 찍어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줘’라고 부탁한다”며, “챗GPT는 PPT 내용의 설명을 쉽게 풀어 설명할 뿐만 아니라 교수님이 놓친 부분까지 짚어줘 수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추가로 “교수님의 칠판 필기나 강의 자료를 사진찍어 챗GPT에게 요약해달라고 부탁하면 시간을 아끼면서 꼼꼼히 공부할 수 있다”고 말하며 생성형 AI의 활용 방식을 설명했다.
생성형 AI 통제 무용지물… 기준도 애매
논리적 글쓰기 수업을 수강했던 B 씨는 “글쓰기 과제를 생성형 AI에게 틀을 짜달라고 부탁한 후 살짝 다듬고 과제를 제출했다”라며 “사전에 교수님이 챗GPT를 활용하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챗GPT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챗GPT에게 부탁해 과제를 제출하는게 훨씬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안에서도 과목에 따라 AI 사용에 대한 지침이 다르다. 어떤 수업은 ‘AI 사용 금지’를 명확히 공지하는 반면, 어떤 수업은 아예 언급이 없다. 창작 계열 실습수업에서는 오히려 “효율적으로 활용해보라”고 권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교수의 입장이 바뀌거나 결과물을 제출한 이후 교수가 문제를 제기할 때다.
학생들이 생성형 AI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글의 구조나 문단 흐름을 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받는 상황은 계속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AI의 내용을 베끼는 행위가 어디부터인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다. 교수마다 AI 허용 여부가 달라 어떤 학생은 표절로 판단해 학점에 불이익을 받고 어떤 학생은 좋은 성적을 받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챗GPT를 활용해 과제를 하는 학생
“다들 쓰는데… 이게 부정행위일까요?”
AI 표절 검사 전문기업 ‘무하유’가 지난 1월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대학 과제물 중 70%가 챗GPT 와 같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무하유’의 AI 탐지 시스템 ‘GPT 킬러’가 173만여 건의 문서를 분석한 결과다. 특히 대학 과제물의 27.3%는 표절률이 30% 이상으로, 이는 AI 사용 비중이 단순 보조를 넘어 실질적 문장 구성 수준까지 확대됐음을 뜻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은 주제를 AI에게 추천받고 전체 흐름을 짜달라고 한 뒤 이를 수정·보완하는 방식으로 과제를 완성한다. 하지만 다수의 대학 학칙은 아직 AI 사용을 부정행위나 표절 정의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우리대학 상·벌 규정에는 ‘시험 및 각종 제출물에 관해 부정행위 또는 표절행위를 하거나 그 행위를 방조한 경우’에 징계하도록 쓰여있다. 생성형 AI의 활용이 넓은 범위의 부정행위에 해당할 수 있으나 세부적인 기준은 없는 상황이다. ‘타인의 저작물을 도용한 경우’와 같은 기존 기준은 AI의 결과물 사용이 부정행위인지도 판가름하기 어렵다.
결국 학생들은 “아이디어는 AI가 냈고 문장은 내가 쓴 경우 부정행위에 해당하는가?”와 같은 질문 앞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교육은 아직 ‘인간 중심’… 제도는 AI를 반영하지 못해
문제는 학칙과 수업 평가 기준이 여전히 인간이 직접 쓴 결과물을 전제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많은 대학의 표절 여부 판별은 기존 논문이나 자료를 대조해서 유사도를 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AI가 생성한 문장이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또 과제 제출 기준, 평가 요소에도 ‘AI 활용 여부 기재’ 같은 항목이 부재해 학생과 교수 모두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호주 국립 대학교(ANU)에서는 생성형 AI에 대해 ‘AI 사용 허용, 출처 명시’라는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또 ‘출처 자료를 검색하고 확인해 정보의 정확성을 검증하지 않고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말 것’이라는 기준을 보였다.
호주 국립 대학교의 기존 학술 윤리 규정에는 AI 관련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AI의 발전이 가속화되자 ‘생성형 AI library guide’를 규정해 AI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교직원들과 협업해 학생들이 학문적 성실성, 윤리, 전문적 실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로, AI를 적절하고 책임감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AI의 활용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에서는 AI컨텐츠의 허용범위와 인용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공했고, 하버드 로스쿨(HLS)은 교수들에게 AI 사용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AI의 적절한 사용을 권장했다.
학문적 무결성 지키는 AI 사용 필요
영국의 러셀 그룹(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24개 연구 중심 대학)대학은 생성형 AI의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 ‘생성형 AI의 윤리적이고 책임감있는 사용에 전념하며, 직원과 학생들이 AI가 보편화되는 세상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킬 것’이라는 원칙을 정했다. 오히려 교직원에게 학생들이 생성형 AI라는 도구를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사용도록 한다. 추가로 ‘생성형 AI의 사용을 교육 방법 및 평가에 통합하면 비판적 사고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며 ‘학생들이 대학을 넘어 직면할 생성형 AI 기술의 실제 적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할 것’을 밝혔다.
동시에 러셀 그룹의 24개 대학 모두 생성형 AI 발전에 발 맞춰 학업 행동 정책을 검토했다. 이 정책은 생성형 AI 사용에도 학문적 엄격성과 무결성이 유지되도록 돕는다. 학문적 무결성은 학업과 연구의 진실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원칙이다. 생성형 AI의 오용으로 표절, 출처 불분명, 공정성 훼손 등으로 학업과 연구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행위를 방지하는 것이다.
여러 외국의 대학들도 AI의 활용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과목과 분야에 따라 생성형 AI의 사용 제한 여부를 나눈다. 호주 국립 대학교에서도 ‘AI의 활용 여부는 담당 강사의 과제 지침을 따르시오’라고 명시돼 확실한 기준이 되긴 애매하다. 결국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AI를 잘 활용하는 능력을 더 강조하는 것이다.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
AI가 작성한 문장은 반드시 부정행위로 간주해야 할까? 이에 관해 대학 교육이 단순히 직접 생산한 결과물만을 창작으로 간주하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생성형 AI 시대에서 필요한 능력
생성형 AI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습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학생이 가져야 하는 역량의 변화를 불러온다. 과거에는 학생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글을 작성했다면, 이제는 AI가 제시한 초안이나 문장 중 무엇을 선택하고 그것을 어떻게 수정하고 다듬을지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유네스코는 2024년 3월 인공지능 국제연구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생성형 AI의 보편화가 학습자에게 새로운 역량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는 “생성형 AI는 정보 필터링 능력, 출처에 대한 비판적 사고, 그리고 의미를 맥락화하는 능력을 강조한다”는 내용이 있다. 특히 “AI의 출력물에 내재된 편견(예: 성별, 인종 기반 편견)을 인식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암기하고 재현하는 능력보다, 정보를 선별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학습의 핵심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AI의 초안은 참고용일 뿐, 그대로 제출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AI를 학습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최종 결과물에 자신의 사고와 책임을 반영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변화하는 교육 체계에서 생성형 AI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질과 학습 효과는 극적으로 달라지게 만드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AI 시대, 창작의 기준이 바뀐다
AI를 아예 금지하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오히려 창작의 의미를 다시 묻고 AI를 어떤 기준으로 활용하고 평가할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창작 수업이나 실기 과제에서 인간이 만들었다는 형식적 기준만으로는 더 이상 교육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없다.
AI가 만든 글, 그림, 아이디어를 학습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제출했을 때 그 결과물은 어디까지 그 학생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표절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창작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이준석 기자
hng458@seoultech.ac.kr
한나현 수습기자
lemon4846@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