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무실 이전, 국정 운영의 안마당이 바뀐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하 윤 당선인)의 10대 공약 중 4순위에 바로 ‘대통령실 개혁’이 제시된 것이다. 당선인은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인 청와대를 청산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새로운 거처,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길 원하고 있다. 기존 청와대 부지는 여론을 수렴해 국민에게 환원되는 식으로 활용방안을 구상하고 있지만, 집무실 이전에 대한 국민 조사에 따르면 청와대를 유지하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 비효율적으로 배치된 청와대 공관 구조
역대 대통령들의 숙원 사업
14대 김영삼 前 대통령은 1993년 대선 후보 시절 군사독재 정치와의 결별의 의미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집무실 이전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키지 못했다. 15대 김대중 前 대통령도 1998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와 과천 제2정부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경호 및 비용 등의 문제로 중단됐다. 16대 노무현 前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 공약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2002년 행정수도 이전 및 지역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주요 정부 부처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으며 좌초됐다. 이명박 前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 대통령)도 집무실 이전 공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지만, 국회 승인 문제 및 현실적 어려움으로 무산됐다. 이렇듯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자그마치 30여년 동안 정권이 바뀔때마다 나오는 공약 중 하나지만 결국 이행하지 못하는 난항 사업이다.
현 정부와도 대치
윤 당선인은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 경내에 들어가면 벗어나는 것이 힘들 것이다”라며, 집무실 이전을 위한 재원 496억원을 국가 예비비를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지난 3월 21일(월) 청와대는 “안보 우려가 큰 만큼 국방부로의 집무실 이전 등에 사용할 예비비로 내어줄 수 없다”라고 전했다.
예비비는 정부의 비상금으로 예산 심사 단계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지출 소요가 생길 때 별도로 마련해두는 돈이다. 편성 단계부터 세부적인 사업별로 기재부와 국회의 심의를 거치는 일반적인 예산과는 달리, 예비비는 총액만 국회에서 승인을 받는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승인만 받으면 지출이 가능한 예산이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문 대통령이 청와대 이전을 위한 예비비 신청을 불승인한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예비비 사용을 승인하고 청와대 이전 시 생기는 안보 공백 등의 문제가 실제로 발생한다면 공동의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집무실 이전의 장단점
첫 번째 장점은 청와대의 폐쇄적인 공간의 배치가 개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구조는 시민들과 소통은 커녕 청와대 참모들과의 소통마저 제한한다. 참모진이 일하는 여민관과 본관 대통령 집무실은 500m가량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참모들은 평소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없다. 보고하려면 7~8분을 걸어야 한다. 김장수 前 청와대 안보실장은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가 보고서를 전달했다”라고 전했다. 실제 거리로 인해 세월호 사건 발생의 보고가 늦어졌다는 정황까지 나왔다.
본관 대통령 집무실의 권위적 배치도 문제다. 대통령 집무실 문에서부터 책상까지의 거리가 15m다. 한국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 본관은 2,564평에 달한다.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을 중심으로 ▲부통령실 ▲선임고문실 ▲비서실장실 ▲국토안보좌관실이 배치돼 있다.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이 완료된다면 시민들 및 참모들과 만날 수 없는 단절된 공간이라는 청와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개편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의 구조적인 문제도 타파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짧은 정치 경력을 가져 아직 정치 기반이 미미하다. 폐쇄적인 청와대 집무실을 드나들면서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는 참모진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구조조정을 통해 민정수석 등의 권력을 줄이면서 국정 운영 방식의 변화를 뀄다.
단점은 안보 및 컨트롤타워 공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광화문 정부 청사에서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 계획을 수정한 것도 안보 때문이다. 고층 건물에서 도•감청 및 저격 자리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도 우려가 크다.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시 국방부 청사의 인원들은 합참으로 이사하게 되고, 합참도 계룡의 본부로 밀어내기 식의 이동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염병 ▲자연재해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청와대에 비해, 국방부 청사에는 기반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정 운영의 첫 단추를 제대로
숙원 사업이었던 청와대 이전을 시행하려는 윤 당선인의 실행력도 이해하지만, 청와대 이전의 전후과정에 밀어내기식의 이사로 인해 보안 자료가 유출될 가능성도 있고, 비교적 안정화된 청와대 업무 시스템을 단기간에 국방부 청사에서 재현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러 번 무산된 국정 과제인만큼 더 구체화된 계획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시민들을 재차 설득할 필요가 있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