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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슈당이 나라를 구했다!
기사 승인 2021-12-05 19  |  653호 ㅣ 조회수 : 69

슈당이 나라를 구했다!



 



1



슈당이 나라를 구했다!



현실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듣고 볼 수 있는 표어였다. 나라만 구했으랴, 사실 세계를 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슈당에 대한 온갖 가십성 기사들은 국내 언론과 외신을 가리지 않고 매 순간 쏟아졌다. 슈당은 누구인가. 슈당은 몇 살인가. 슈당은 누구와 열애 중인가. 하다못해, 슈당은 무슨 뜻인가? 그만큼 슈당은 모든 사람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슈당이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겪어온 지난 석 달이 채 안 되는, 그럼에도 끝없었던 시간을 먼저 설명해야겠다. 사람들은 그 시간을 소나기, 라고 불렀다. 소나기라기엔 이미 너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소나기였다.



 



2



석 달 전 팔월의 오후, 주말이었는지 평일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때는 회사를 그만두고 취직을 다시금 준비하는 때였다. 나는 좁고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방에 누워 있었다. 사실 방이라고 해봐야 화장실을 빼면 그뿐이었으니 집과도 똑같은 말일 것이다. 나의 집은 습기가 한 번 차면 도무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흐렸는데 막상 떨어지지는 않았다. 뉴스에서는 연신 장마철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그들도 비가 오지 않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창문이라도 활짝 열고 맨몸으로 방바닥에 누워 있는 것뿐이었다.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 바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색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 같았고 곧 비가 올 것이라는 얘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조금 더 기다려도 비는 쏟아지지 않았다. 나는 누운 채로 방금 들은 소리를 곱씹었다. 천둥이 아니었나? 하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보다는 조금 더 가깝고 물질성이 있었다. 괜히 생각하기가 불쾌한 소리 같기도 했다. 한 번 더 들으면 무슨 소린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한 번 더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소리는 천둥이 아니었다. 누군가 엄청나게 무거운 걸 들고 가다가 계속 떨어트리기라도 했나. 쿵, 소리가 몇 번 더 났다. 대단히 무거운 것을 들고 가는 모양이다. 저렇게 연속적으로 떨어트리는 걸 보니 학습 능력도 없는 모양이고. 예기치 않은 소음을 몇 번이고 듣다 보면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오는 법이었다. 저 멍청한 녀석이 어떤 낯짝을 가졌는지 얼굴이나 보려고 몸을 일으킨 순간, 조금 더 확실하고 불길한 소리가 났다. 비명이었다.



소나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들었던 천둥 같기도, 무언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던 소리는 사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의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단순한 투신자살이 아니었다. 자살을 전염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 이윽고 몸을 던지는 그 행위는 분명 전염성을 갖고 있었다. 매개체는 투신한 시체였다. 사람들은 머리가 부서지고 사지가 부러진 시체를 보면 무언가에 홀린 듯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어디서부터 이 광적인 전염이 시작되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연구를 할 방법도, 사람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 팔월의 어느 더운 날 오후를 기해서 사람들은 모두 그 순간 있던 자리에 발이 묶였다. 셧다운이라는 말이 그토록 잘 어울리는 상황은 없었다. 이후 주목을 받은 것은 유튜브나 여러 스트리밍 사이트들이었다. 공중파와 뉴스 채널조차도 갈피를 잃고 연신 재방송 – 이나 재방송과 다름없는 소식들 – 을 쏟아내고 있을 때 그들은 용감히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아니, 그것을 용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교류가 끊어진 순간에도 돈이 여전한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으며, 그 액수를 어떻게든 늘려가는 것이 불확실한 위험에서 생명을 보호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나기가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다. 투신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인데 정권을 재창출하고 드러난 비리를 덮기 위해 집권 여당이 의도적으로 소나기를 부풀리고 겁을 주고 있다는 논리였다. 아무래도 농촌이나 근교처럼 소나기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닿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음모론은 인기를 얻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이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다만 이 모든 게 음모론이라고 소리치며 나간 사람들마저 줄줄이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소나기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떨어진 사람들이 변절자였네, 평소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네, 자살 당했네, 등의 소리를 해대는 이들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이성을 기대하는 것이 문제였을까. 분명 그것은 광기였다. 알고도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믿지 않기 위해 발을 들여놓는 광기.



아이러니하게도 음모론자들은 소나기가 전혀 음모와는 상관이 없는 분명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역할을 해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말 그대로 ‘생존 영상’을 찍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는 도시에서 어떻게든 죽음을 약 올리려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외출금지령이 내려져 있었으나 경찰마저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제지할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이 피해 다녀야 할 것은 오직 싸늘하게 식은 채 추락을 종용하는 시체들과, 우연찮게 맞닥뜨리는 같은 사람들뿐이었다. 방송인이 그들을 피해 죽은 도시를 정신없이 누빌 때마다 후원은 쏟아졌다. 그러다 마침내 죽음을 피하지 못해 이윽고 추락했을 때는 온갖 조롱이 잇따랐다.



 



3



슈당은 생존 방송이라는 것이 플랫폼들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뒤에 등장했다. 슈당은 원래 VR로 개인 방송을 해오던 사람이었다. 그리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벌이가 안 되지도 않는 어중간한. 소나기 이후 슈당의 시청자들은 썰물같이 더 자극적이고 긴박한 생존 방송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게임보다도 게임 같은 현실이 찾아온 것이다. 시청자 수가 반의 반 선으로 떨어졌을 때 슈당은 진지하게 방송을 접을까 고민했더랬다. 사실 바깥에서 연일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추락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태연히 방송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한 열의를 가진 것이겠지만. 그때 슈당은 TV에서 자료화면처럼 틀어주는 누군가의 추락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시체를 보면 추락한다는데, 왜 나는 저걸 보면서도 멀쩡한가.



다음 날, 슈당의 방송 제목은 ‘생존 방송, 저도 합니다’였다. 슈당을 알고 있던 시청자들이 다시금 돌아왔고, 방송인의 초라한 추락과 죽음을 조롱하길 즐기는 유입도 꽤 많았다. 그리고 채 삼십 분이 지나지 않아 슈당의 방송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경악했다. 슈당은 시체를 보고도 멀쩡히 거리를 돌아다녔다. 땅에 떨어져 사지가 뒤틀린 시체도, 머리가 부서져 그 내용물이 흉하게 흘러나온 시체도 슈당의 발걸음을 붙잡지는 못했다. 슈당은 몇 번이고 구역질을 해대면서도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슈당은 VR 고글을 핸드폰 카메라에 연결한 채였다. 즉,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고글로 보는 것이었다. 슈당은 죽음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죽음과는 엄연히 분리된 상태였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눈치채지는 못했던 방식으로.



나 역시 그 기상천외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정신없이 치솟는 채팅창의 틈바구니에는 슈당을 겁쟁이, 비겁한 인간으로 모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조롱할 거리를 잃어 이를 악물고 뱉어대는 증오에 가까웠다. 구월 십칠 일. 소나기가 쏟아진 지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고,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폭염이 어느 정도 가신 때였다.



‘슈당이 나라를 구했다!’라는 표어는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했다. VR 고글은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우산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환상의 우산이기도 했다. VR 고글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동안 전기나 수도 등 필수적인 사회자원만이라도 겨우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정부는 어떻게든 고글을 수소문하고 나섰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정답이 주어진 이상 그것을 적당히 모방할 수는 있었다.



공무원과 군인들은 일단 되는대로 두꺼운 박스를 고글 모양으로 만들어 그 앞에 핸드폰을 붙였다. 불편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었지만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인 죽음에서 한 발짝 비켜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구월 이십오 일에 최소한의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중앙대책본부는 대대적인 작전을 감행한다고 발표했다. 그 작전의 목표는 청와대도, 국회도 아닌 용산 전자 상가였다. 당시 발대식은 공중파 채널들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간이 고글로 얼굴 절반 이상을 가리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두껍게 방역복을 껴입은 사람들이 도열해 있었다. 분명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도 과하다 싶은 정도였는데, 끔찍하기 그지없는 시간을 속절없이 흘려보내던 중 마침내 맞이한 희망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집에 갇혀 있었던 시간만큼 그들도 방송국에 갇혀 있었다. 그만큼 간절했으리라.



 



3



지금은 소나기 이후 맞는 첫 번째 겨울의 초입이었다. 하루에도 열 몇 시간씩 전기가 끊기곤 했던 예전보다는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직까지도 도시를 오가야 하는 배송이나 우편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VR 고글은 아직도 보급이 되지 않았고 거리로 나오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예전 뉴스에 영상으로 나왔던 공무원들의 조악한 박스형 고글을 착용하고 다녀야 했다. 제아무리 테이프나 끈으로 고정을 한다지만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장치였다.



나는 서랍장에서 VR 고글을 꺼내 들었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친구의 설득에 반강제로 떠맡듯 샀던 고글이 이렇게 쓰일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정작 사고 나서 한두 번 써보고는 그 멀미를 감당할 수가 없어 현관의 창고에 몇 년 동안 박아놓았던 물건이었다. 지금은 멀미고 자시고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었지만.



빌라의 공동 현관을 나서자 단번에 불어오는 바람이 찼다. 그러나 소나기 이후, 바람은 단순히 차다는 말로는 부족한 뭔가가 더해진 느낌이었다. 어딘가 시리고 끈적하고 불쾌했다. 코가 맡지 못하는 냄새가, 피부가 느끼지 못하는 감촉이 배어 있는 듯했다. 한 번도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해본 적은 없으니 나 혼자만 느끼는 감각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어쨌든 이 동네도 꽤나 많은 소나기가 내린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는 여기저기 검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시체는 모두 치운 지 오래였다. 슈당의 첫 생존 방송 당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용산 전자 상가를 수복하여 VR 고글을 다수 확보한 정부가 가장 먼저 했던 일 중 하나는 시체를 치우는 것이었다. 고인에 대한 예우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들을 치워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장비로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 뉴스에서는 그들을 연일 시대의 영웅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물론 취재진이 찾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개는 자체적인 동영상 녹화로 중계되었다. 추락을 막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꺼운 방역복과 마스크는 선전에 걸맞지 않은 것들을 지워낼 수는 있었다. 화면으로 보는 시체로는 추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어도 밖으로 내몰리는 그들이 결코 좋은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씩,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수거되기 시작한 시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힘들었고, 그런 것을 기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는, 다들 어떻게든 빨리 치워주기만 하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쪽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시체들을 한데 모은 뒤 구덩이를 파고 태운다고 했다. 글을 쓴 사람도 그 광경을 직접 보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최선의 방법처럼 느껴졌다. 누구든 추락시키는 폭탄을 그밖에 어떻게 처리한다는 말인가.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언제든 추락할 수 있는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부러워 할 거리를 찾았다. 언제였던가, 익명의 게시글로 VR 고글을 천만 원에 산다는 내용이 올라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작성자가 누구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거리에 널린 시체를 피해 그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고글의 소유주가 있을지는 둘째 치더라도, 자기 생명을 천만 원에 판다는 사람이 나올지가 의문이었다. 가뜩이나 당장은 돈이 필요 없어진 시대가 아닌가. 슈당에게 쏟아지는 후원금 역시 사람들이 이전의 금전 감각으로 뿌린 것은 아닐 터였다. 누가 과연 팔았을까? 팔았다면, 과연 작성자는 순순히 천만 원을 지불했을까?



나는 애써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다행히 내가 걷고 있는 길은 경찰이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기도 하는, 꽤나 안전한 거리였다. 경찰은 대부분 고글을 쓰고 있으니 내 것을 탐낼 이유도 없었다. 혹시 가족에게 필요하다고 한다면 별수 없었지만. 소나기가 막 내리기 시작한 때처럼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느니, 움직이는 것을 보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피해야 한다느니 하지는 않더라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소나기가 막 내린 뒤에는 추운 법이었다.



약속 장소인 카페까지는 걸어서 십 분이면 닿는 거리였지만 막상 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쩐지 녹초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카페는 큰길에서 두어 블럭 떨어진 골목길에 있었다. 사람들이 꽤 많은 길이었는데 소나기 이후로 사람들이 큰길로 다니는 것을 꺼린 탓이었다. 큰길가에는 고층 빌딩이 즐비하기 마련이었으니까. 떨어질 때는 이성을 잃는다는데 낮은 건물과 높은 건물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사람들은 추락 그 자체보다 추락하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닐까. 낮은 층에서 금방 떨어지는 것보다 높은 층에서 한없이 떨어지는 쪽이 더 나약하고 극적이지 않은가.



카페 전면의 통유리에는 박스와 신문지가 덕지덕지 발려 있었다. 그 뒤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졌을 것이다. 그건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바깥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되도록 밖이 보이지 않는 곳이 인기였다. 지하는 그런 의미에서 최고였다. 하지만 카페는 대개 어떻게든 바깥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업종이었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문을 열자 안쪽에 달려 있던 방울이 자르릉 소리를 냈다. 주인은 잠시 자리를 비운 듯했다. 그리 넓지 않은 카페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창가 가장 안쪽 구석에서 슈당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카페 안에는 슈당뿐이었다.



 



“잘 쓰고 다니네?”



 



얼마 만이더라. 소나기가 시작되기 석 달쯤 전에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반년은 된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슈당은 원래도 피곤한 인상이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피곤해 보였다. 눈 밑이 조금 짙어졌고 머리가 제대로 정돈되지 않았다. 슈당은 고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고 장난스레 웃었다. 고글을 사고 나서 돈만 버렸다며 잔뜩 투덜댔던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별 수 있나.”



 



나는 슈당의 맞은편 의자를 빼내 앉으며 말했다. 슈당 쪽의 테이블에는 커피가 담긴 머그컵이 놓여 있었다. 다시 본 카운터는 여전히 비어 있었고. 슈당이 말했다.



 



“창고에 계셔. 비를, 좀 많이 맞으신 모양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비를 맞았다는 말은 소나기로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소나기를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직접 보았다간 어쨌든 죽을 수밖에 없으니, 근처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이 쏟아지는 소리에 오래 노출이 되었거나 가족과 지인이 빗방울이 되어 사라진 사람들에게 특히 잘 드러났다. 증상은 다양했으나 가장 대표적으로는 극심한 대인기피와 불안증세가 있었다. 그들은 형광등도 켜놓지 않은, 야외와 단절된 공간에 머무르기를 원했다. 심리 치료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한 번 맞은 비가 좀처럼 마를 수 없게 만들었다.



 



“뭐 마실래? 알아서 만들고 결제하면 돼.”



 



나는 슈당이 일전에 카페 알바를 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저었다. 슈당은 히히 웃었다.



 



“요샌 어떻게 지내?”



“그냥 뭐, 구직 활동.”



 



서로 잠시 눈을 마주치다 고개를 끄덕였다. 구직 활동은 소나기가 내리기 전에 하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요새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답이었을까? 하지만 별달리 뾰족한 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소나기가 내린 뒤로 나는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고, 이력서를 쓰지도 않았다. 당연히 원서를 접수한 적도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동안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나는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나. 달라진 것은 소나기가 내렸다는 것뿐인데도.



나는 문득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이 지독히도 일상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몇 년쯤 만나지 않은 친구에게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질문. 어떻게 지내야 할까. 소나기가 내리지 않았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소나기가 내려서 이미 달라진 것일까. 도대체 뭐가 달라지고 달라지지 않았나. 이제까지 해볼 생각도 않았던 질문은 머리칼 사이에 박힌 가시처럼 따갑게 거슬렸다.



슈당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슈당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그 미소마저도 일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는 어떻게 지냈는데.”



“방송 봐서 알잖아.”



 



슈당이 커피를 홀짝였다. 능글맞은 대답이었지만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집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시대에 나는 그나마 익숙한 슈당의 방송을 틀어놓고 살았다. 물론 지긋지긋한 정전 기간이 아닐 때의 이야기지만 해가 지고 방송이 종료되면 다시보기로 처음부터 돌려봤다. 하염없이, 카메라로 들어간 빛이 VR 고글의 화면으로 변환되고 그것이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변환된 결과물을 틀어놓는다. 추락의 전염성도 그 무지막지한 누락과 열화는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슈당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다. 사람의 온기가 들지 않는 집에는 원본에 결코 미치지 못하는 흔적마저도 깊숙이 배이게 마련이었다. 그래, 아마 슈당이 없었다면 나는 언제고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추락한 시체를 보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정전이 되고 어둠 속에 혼자 있을 때면 몇 번이고 그런 충동을 느꼈다.



 



4



“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알아?”



“몰라.”



 



한 모금의 커피를 거의 씹다시피, 천천히 마신 슈당이 입맛이 쓴 듯 입꼬리에 힘을 주며 물었다. 당연히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께 슈당은 나에게 전화했다. 오랜만에 한번 보자고, 마치 화창한 날씨 같았지만 어딘가 어둑하기도 한 말투였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쾌활해야 하는 방송과는 달랐다. 초창기의 슈당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겁에 질렸고 예민했지만 시청자가 늘어나고 주목을 받은 뒤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라를 구한 슈당이었기에 남들과는 달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슈당의 연락을 받고도 흔쾌히 승낙하지 않고 조금 망설였다. 방송에서 꺼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 그만큼 그 밖으로 밀려났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좀 이상하지 않아?”



 



슈당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눈으로, 조금 이상하다고. 나는 무슨 새삼스러운 말을 하는가 싶었다. 이상하기만 하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지금을 그저 ‘좀 이상하지 않아?’라는 물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왜 사람들이 떨어지지?”



 



좀 이상한 건 너 같은데, 라는 말을 참았다.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문율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이 세상은 이미 지옥이니까 괜히 그 이유를 알아내려 하지는 말자고. 구태여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자식일 사람의 죽음을 꺼내어 서로 어색해지지는 말자고.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할 말은 아직 많이 남은 것 아니겠냐고. 아직 밝혀진 게 없기도 했지만 뉴스에서 가장 근원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는 것도 그런 무의식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슈당은 아직 말이 끝나지 않은 눈치였다.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손에 들린 고글을 만지작거리면서.



 



“깨끗한 거리에서도 간간이 추락자가 나온다는 거 알고 있어?”



“뭐?”



 



내 손에 잡혀 있던 고글이 탁,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부딪혔다. 슈당은 여전히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 오른쪽 어깨쯤을 보는 듯했다. 시체가 없는 거리에서도 추락자가 나온다. 시체가 있어야만 추락을 하고, 추락을 해야만 시체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이에는 무엇이 또 있다는 말인가. 사실 영 처음 듣는 소리만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는 언제든 허무맹랑한 괴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까. 지금도 어느 커뮤니티 한 편에서는 추락 바이러스를 미국과 중국, 일본과 북한 중에서 어디가 퍼뜨렸는지 열띤 논쟁이 펼쳐지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슈당이었다. 나라를 구한 슈당. 사람들을 다시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준 슈당.



 



“용산에 군인들이 도착한 게 벌써 두 달 전이야. 굳이 VR이 아니더라도 시체는 어떻게든 치울 수 있으니까 시간은 그보다 좀 더 많았을 거고. 당장 이 근처에도 시체는 없잖아. 그런데도 추락자가 아예 없지는 않아. 그 사람들은 뭘 본 걸까?”



 



이제는 사실상 혼잣말과 다름이 없어졌지만 슈당의 물음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집 근처에서 시체를 치운다고 한바탕 시끄러웠던 적이 언제더라. 적어도 한 달은 넘은 것 같다. 아마 웬만한 규모의 도시라면 비슷한 시기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보다 급한 일이 있을 턱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걸 시시콜콜하게 기억한다고 해서 슈당의 질문에 이렇다 할 대답이 떠오르진 않았다.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이런 것쯤이다.



 



“어딘가에 숨겨진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 미처 못 본 조각이 있었다거나.”



“흠. 실은, 난 추락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그 말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져서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락하지 않는 방법,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얼빠진 표정으로 다시 물은 건 몇 초 뒤의 일이었다.



 



“뭐? 그게 뭔데?”



“확실하진 않지만 말야.”



 



나는 소리를 지를지, 그 방법이 뭐냐고 물어볼지, 왜 그걸 진작 공개하지 않았냐고 소리칠지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보다는 어떻게, 가 먼저였다. 슈당은 어떻게 추락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일까. 어쩌다가? 그건 내가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인간성이었다.



 



“어떻게 안 거야?”



 



슈당은 보이지 않는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꺼운 박스로도 모자라 검은색 커튼까지 이중으로 가려진 바깥을.



 



“봤지.”



 



슈당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봤다고.



생각보다 생존 방송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니, 슈당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은 그렇다고 했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 몇 시간 정도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시체는 없는지, 위험한 건 없는지 살핀다고.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위험을 피할 수는 없었다. 추락과 죽음 말고도 위험한 것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사전 조사를 하던 슈당에게 저만치서 누군가 크게 인사를 했다. 바깥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지만, 만나더라도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당신을 죽이거나 해하지 않겠다는 뜻을 무관심으로 표현한다. 혹여 그가 소나기 전 안면이 있던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저만치서부터 슈당에게 알은체를 했으니 덜컥 겁이 났다. 이윽고 그 사람은 슈당을 슈당이라고 불렀는데, 그때 슈당은 그 사람이 자기 방송의 시청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시청자는 슈당을 끈질기게 쫓았다. 그동안 생존 방송을 하며 체력이 꽤나 붙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던 슈당은 뒤를 돌아보고 시청자가 더 이상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릴 때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철근에 그만 고글이 부딪히고 말았다. 엉겁결에 벗겨져 발에 챈 고글은 모퉁이 너머로 굴러갔다. 슈당이 고글을 쫓아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 앞에는 꽤나 오래 방치된 듯한 시체가 있었다.



슈당은 그 뒤의 일이 잠시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슈당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앉아 직접 내린 커피를 감질나게 홀짝이고 있다. 슈당의 이야기는 거기서 끊겼다. 나는 참을성 있게 다시 이어지길 기다렸다. 슈당은 계속해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 크지 않은 커피잔 속에 담긴 내용물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나를 보던 슈당의 눈이 옅게 곡선을 그릴 때에야 이야기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 안 해?”



“이제 알았어?”



 



미소는 이제 확실한 웃음으로 변했다. 이제까지의 기다림이 무색해졌다는 생각에 벌컥 부아가 치밀었다. 만약 슈당이 나라를 구한 슈당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보고도 살아남은 것도 말도 안 되고 그 방법을 알았다는 것도 말도 안 되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느꼈다. 슈당이라면 정말 그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몰래 알려주지 않더라도 어쩌면 방송에서 공개하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슈당의 방송은 여전히 시청자가 많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슈당의 방송은 더 이상 생존 방송 초창기의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사실 그건 소수의 방송을 빼놓고선 생존 방송이라는 컨텐츠가 맞닥뜨린 현실일지도 몰랐다. 이제 거리는 전과 같이 위험하지 않다. VR 고글은 아니더라도 시청자 역시 마음만 먹으면 나름의 장비를 갖추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슈당의 방송은 이제 VR 고글을 통해 진행되는 브이로그와 다를 바가 거의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생존 방송의 스릴이 사라져간다며 아쉬워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그래, 이제 더 이상 가상 세계로 통하는 문이었던 고글로 누구보다 호기롭게 현실을 바라보던 슈당은 없다. 시청자나 후원 빈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런 추세는 누구보다 슈당이 제일 잘 알고 있으리라. 정말 추락을 피할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방송에서 공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슈당은 이런 나의 은밀한 추측을 한 번에 부숴버리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 방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방송도 마찬가지고.”



“정말 알고는 있는 거야? 그런데도 공개는 안 한다고?”



 



다시 확인하듯 묻는 나의 솔직한 심정은 꼭꼭 숨겼다고 생각했던, 부끄러우면서도 소중한 무언가를 들킨 어린아이와 비슷했다. 슈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질문 모두에 답했다.



맙소사. 나라를 구한 슈당은 어떤 바람이 불어서 세상을 버리기로 마음먹었을까.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 화가 결코 과거로, 그러니까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갈 방법이 영원히 은폐될 수 있다는 공포에서 오지 않았다는 것이 내 화를 더욱 부추겼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슈당에게 지독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방송을 보고 있던 동안에도, 실제로 만나러 집을 나서던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 따위 아무려면 좋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을 구직 활동을 하던 중이었으니까. 나의 눈에 비친 슈당은 잔인하리만치 복에 겨운 인간이었다. 배가 불렀고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비밀이 나에게 찾아왔더라면, 나는 당장 방송을 켰을 것이다. 그리고 슈당보다 더 결정적으로 나라를 구했겠지.



슈당이 그런 분노와 욕심을 읽어냈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슈당은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제 나가서 좀 걸을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 꽉 다문 입술과 좁혀진 미간이 답을 대신했다. 슈당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슈당은 내 기억보다 훨씬 작은 체격이었다. 원래도 크지는 않았지만 더 왜소해진 듯했다. 나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은 채 마찬가지로 고글을 들었다. 혹시 바람을 쐬다 보면 슈당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우연히 추락한 시체라도 본다면, 그래서 문득 제 얼굴을 반쯤 무겁게 덮고 있는 고글의 존재를 느낀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5



거리에는 여전히 찬 바람이 불고 있었고 사람은 적었다. 그러나 찬 바람도 한적한 거리도 내 속에서 자리 잡은 열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여전히 모종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슈당이 구태여 자리를 옮기자고 한 것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슈당은 거기에 있는 줄도 몰랐던 으슥한 통로를 지나고 또 지났다. 그러다 보니 눈에 익숙한 골목도 곧잘 나왔다. 슈당의 방송에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이었다. 카메라와 VR 고글을 통해 보는 세상이었지만 방송으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들은 방송으로 보는 것에 비하자면 생생한 현실이었다. 슈당은 언제나 이런 현장감을 느끼며 도시를 누볐던 것일까.



슬슬 다리가 아파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때쯤 슈당은 멈춰 섰다. 이제껏 지나온 길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골목이었다. 슈당이 골목 끝 T자형으로 만들어진 모퉁이에 서서 나에게 손짓했다. 문득 이제야 비밀에 거의 다 온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다리의 통증도 잊은 채 슈당의 손끝이 가리키고 있던 모퉁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엎어져 구역질을 시작했다.



그곳에는 추락한 시체가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방치된 듯 이제는 형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한 모습으로 전락한 한 인간이 있었다. 그제야 나는 코를 자극하던 썩은 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시체를 쳐다보기 직전까지도 미처 맡지 못했던 악취가. 고글을 통해 보는 세상이 저기에 있었다. 또렷한 실재로. 고글과 연결된 핸드폰은 땅에 처박혀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 고글을 뚫고 도달한 세상에서 나는 황급히 멀어져야만 했다.



 



“이게 내가 봤던 거야.”



 



슈당이 엎어져 있는 내 곁에서 말했다. 나는 안간힘을 쓰며 슈당을 올려다보려 했다. 제아무리 힘껏 고개를 들어 올려도 슈당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슈당의 목소리는 슈당이 지금껏 마주한 수많은 시체들을 담고 있었다. 나 또한 방송을 통해서 보아왔던 그 시체들을. 슈당은 쪼그려 앉으며 내 야윈 등에 손을 올렸다.



 



“추락하지 않는 법을 알려면 추락을 직시할 수도 있어야 하지.”



 



그래도 알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똑같은 목소리였음에도 공포가 느껴졌다. 한심하게 엎어진 나의 고글은 슈당의 작은 손짓에도 속절없이 벗겨질 것이 뻔했다. 슈당이 내 고글을 벗긴다고 하지도 않았지만 내 삶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 비록 작고 퀴퀴한 집에서 의미 없는 구직 사이트나 돌아다니는 삶일지라도. 검은색으로 가득한 시야는 그 두려움을 목에서 가슴으로, 허리로 키워나갔다.



 



“어쩌면 소나기는, 추락은 마침표가 아닐까 생각해. 이미 쓸데없이 길게 늘어지고 있는 문장을 확실하게 끝내는 마침표. 깨끗한 거리에서도 추락이 이어지는 건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이야. 추락 자체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거든.”



 



슈당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추락하지 않는 방법을 공개하지 않으려 해. 지쳤어.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은 추락을 막지만 결국엔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해.”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시야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슈당이 있었던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박자박, 슈당은 나를 떠나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추락하지 않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급하게 카메라를 챙겨 들었다. 내 옆에 놓인 고글과 썩어 문드러진 시체와 그 너머의 슈당. 힘이 풀려버린 다리를 몇 번이고 놀렸을 때 마침내 슈당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추락하려는 사람을 보았다. 아니, 그건 이미 추락하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슈당은 내가 어깨를 잡아채든, 허리를 뒤에서 안든, 앞에서 막든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조차 않았다. 이제까지 질릴 만큼 들어왔던 ‘홀린 듯’ 추락한다는 이야기. 슈당은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 큰길로 접어들었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슈당과 나 둘뿐이었다. 나는 울며 매달리다 성을 내기를 반복했다. 소용은 없었지만. 나중에는 그저 묵묵히 슈당의 뒤를 따랐을 뿐이었다.



슈당은 마침내 자신이 추락할 건물을 찾은 모양이었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그 아득한 높이의 꼭대기를 보는 순간 나는 슈당이 그곳에서 자유낙하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나라를 구한 슈당이, 언제나 내 모니터에서 보이던 슈당이.



빌딩은 적막했다. 있었던 사람들이 전부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남을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인지 꽤나 소란스러웠음에도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슈당은 계단을 올랐다. 나도 따라 오르기 시작했지만 이미 터질 듯 아팠던 다리는 좀처럼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 층을 오를 즈음 나는 얼굴을 무겁게 누르는 고글을 벗어 던졌다. 화소로 변환되지 않은 계단과 난간과 시멘트벽이 보였다. 그 와중에도 슈당과 나 사이의 거리는 점차 벌어졌다. 뒤늦게 옥상에 도착했을 때, 목구멍에서는 쓴 위액이 올라오고 있었다.



슈당은 옥상의 가장자리에서 아찔하게 서 있었다. 나는 슈당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왜 아직 떨어지지 않았느냐는 호기심 사이에서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야만 했다. 슈당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에게로.



 



“내 방법이 맞았던 것 같네.”



“떨어지면, 안 돼.”



 



나는 흉하게 헉헉거리면서 겨우 한 글자 한 글자를 뱉어냈다. 반면 슈당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서 있었던 것처럼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바닥없는 낭떠러지에 있었던 것처럼.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중요해. 그게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슈당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만을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마치 자기가 한 말을 다 이해했냐고 확인하듯이.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슈당의 작은 몸이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그 찰나의 감각이 무색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빗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빗방울과 다르지 않은 소리였다.



 



6



슈당의 방송이 더 이상 켜지지 않은 지 삼 개월이 지났다. 소문이 무성했지만 어느 하나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죽었다, 은퇴했다, 살해당했다, 병에 걸렸다, 납치당했다 등등. 인터넷에서는 슈당이 돌아오길 바라는 팬들과 애초에 전부 거품 아니었냐는 안티팬들이 말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그런 의미 없는 싸움들도 한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추락을 피할 방법이 발표된 다음이었다.



그 비밀은 다소 황당하게도 미용실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미용실 앞에 붙어 있는 삼색의 원통에 있었다. 빨강, 하양, 파랑으로 채워진 원통은 돌아가면서 마치 그 무늬가 위로 올라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대통령은 연구에 따르면 미용실 원통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진 ‘상승 패턴’ 일체가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그 발표 뒤 전국의 모든 거리에는 상승 패턴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큰 것과 작은 것, 화려한 것과 소소한 것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언제든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포켓 형태로 나온 상승 패턴 제품도 쏟아져나왔다. 소나기 이후 기약 없었던 셧다운이 단계적으로 해제되었다. 마침내 소나기가 그쳤다.



나는 우리 지역의 셧다운이 해제되는 날 슈당과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들을 따라 걸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 정신없이 슈당의 뒤를 쫓았고 거미줄처럼 퍼진 골목을 다 기억하진 못했으니까. 그러나 시체가 있었던 곳은 분명히 기억한다. 시체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슈당이 그랬던 것처럼 큰길로 나갔다. 슈당이 추락한 빌딩 직전에는 털털 돌아가는 미용실 원통이 매달려 있었다. 미약하지만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그곳에 있었다.



온 거리에 과하리만치 상승 패턴 구조물이 설치된 이후 추락하는 사람은 비약적으로 줄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은 꾸준히 나왔다. 사람들이 쌓아 올린 빌딩 위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중앙대책본부는 그들을 소나기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할지 단순한 투신자살로 봐야 할지 고심했다. 대부분은 자살 사건으로 판명되었다. 주변에서 발견된 시체가 없고 그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셧다운 동안 추락이 아닌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들, 고립되어 죽어간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는 소식이 간간이 나왔으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어떤 이유로든 추락을 제외한 죽음은 개인이 나약하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슈당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중요하다는 말. 그리고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말. 전국이 상승 패턴으로 도배된 뒤에도 누군가는 추락할 것이다.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소나기로 인해 얻지 말아야 할 용기를 얻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슈당 역시 그래서 떨어진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슈당은 희망만으로 살아가기 싫어 떨어진 게 아닐까. 끊임없이 추락하면서도 다만 희망뿐인 세계를 더 이상 구하기 싫어 떨어진 게 아닐까.



여전히 나는 이따금 슈당의 다시보기 영상을 본다. 내일은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 소나기 때문에, 일자리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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