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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사랑의 고정관념, 인간과 인간의 사랑에서 벗어나기
박은준 ㅣ 기사 승인 2022-12-06 09  |  668호 ㅣ 조회수 : 188

사랑의 고정관념, 인간과 인간의 사랑에서 벗어나기



서론- 사랑의 고정관념?



 사랑에 대해서는 몇천 년이 넘어가는 인류의 역사동안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쓰이고, 그려지고, 또 만들어졌기 때문에 슬슬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좀 진부하거나 식상한 것으로 여겨져도 괜찮지 않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은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그리고 수많은 창작물의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소재이다. 물론 방금 이야기했듯이 사랑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또 존재할 예정이기에 더 이상 일반적인 사랑에 대한 고찰로는 저 창작물들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핸더랜드의 대모험」의 악역, 조마와 마카오가 말하는 것처럼 잘생긴 왕자님이 나타나서 예쁜 공주님을 구해준다는 옛날이야기는 슬슬 질릴 때도 됐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창작자들은 이 '사랑'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뤄야 할것인가. 의외로 방법은 간단하다. 그 사랑이라는 소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리면 된다.



 널리 쓰이고 있는 인터넷 국어사전인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사랑을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 혹은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로 정의하고 있다. 전자는 그럭저럭 납득이 간다 치더라도 후자는 꽤 납득하기 어렵다. 사랑을 남녀, 즉 특정한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가지는 마음으로 한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과 남성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마음이 생길 수가 없나? 여성과 여성 사이에는? 그 외 성소수자들의 경우에는 어떻고? 이렇듯 현재 '사랑'은 남성과 여성 간의 사랑뿐만이 아닌, 남성과 남성 간의 사랑이나 여성과 여성 간의 사랑과 같은 다른 형태의 사랑들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고정관념을 한 번 더 깨보면 어떨까?



 한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자. 아마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하는 남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모두가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단 한 번도 그들이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너무나도 깊숙이 박혀있어서 그 누구도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사랑은,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은 불결한 것, 혹은 뭔가 이상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세상에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언젠가 먼 미래에는 이런 '인간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고정관념이 낡고 고지식한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언젠가 올 그 때를 대비해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을 다룬 창작물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고정관념보다도 더 높은 벽 -「울트라 세븐」-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을 다룰 때,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일본의 특촬물 시리즈 「울트라 시리즈」의 1967년 작 「울트라 세븐」을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울트라 세븐'의 주인공 모로보시 단은 M78 성운에서 온 외계인 울트라 세븐이다. 단이 본래 지구에 온 목적은 은하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었으나 한 지구인 청년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동하여 지구를 노리는 외계인(혹은 괴수)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가 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인간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만든 방위대, 울트라 경비대에 들어가게 된 단은 울트라 경비대의 동료들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맺는데. 그중에서도 의무관 유리 안느와 자주 엮이며 극이 전개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실상의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22화는 지구인 여성의 여성호르몬을 노리는 외계인 '브라코 성인'에게 공격받아 위독해진 안느를 구하기 위해 단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며, 44화에서는 둘이 임무 중에 은근슬쩍 동물원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안느는 단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단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그 이유가 작중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으나, 이 작품 내에서 단이 자신의 '외계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나고 지구인들에게 외계인은 주로 적으로 인식되는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단은 안느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볼 수 있다. 안느가 지금까지 봐온 단은 '지구인의 모습을 한' 단이지 '외계인' 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의 정체를 알게 된 안느가 외계인으로서의 단을 인정하지 못하고 떠나버릴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또한, 단에게는 안느가 외계인으로서의 단을 인정해준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들이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을 인정해줄지는 의문이었을 것이다. 외계인과 지구인(혹은 인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낯선 형태의 사랑일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성별이 어떻든 간에 일단 지구인과 지구인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낯선 형태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 한 사람들이 단을 적대시하게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안느까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단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외계인들과 싸우던 단은 마지막 에피소드인 48화와 49화에서 육체적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단은 애초에 전투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전투원이 아니었지만 무리하게 외계인들과 싸워온 탓에 단의 몸은 한계에 이르렀으며 이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 와중에도 지구를 침략하러 온 외계인이 등장하고, 단은 다시 한번 무리해서 울트라 세븐으로 변신해 외계인을 쓰러트리려 하지만 처참하게 패배한다. 이 패배로 인해 단은 죽기 직전까지 가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변신해 싸우려고 한다. 그때 단은 단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 찾아온 안느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단은 안느에게 지금까지 꽁꽁 숨겨온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안느, 나는... 나는 말이야. 인간이 아니야! M78 성운에서 온 울트라 세븐이야! 놀랐지?"

"아니. 인간이든, 우주인이든, 단은 단일 뿐이잖아. 설령 울트라 세븐이라고 해도..."

"고마워. 안느..."

「울트라 세븐 49화, 사상 최대의 침략:후편」



 안느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단의 표정에는 마지막 싸움을 앞둔 비장한 모습과안느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어쩔지 두려워하는 모습이 동시에 드러난다. 하지만 안느의 반응은 단의 걱정과는 달랐다. 안느는 모로보시 단, 울트라 세븐이라는 존재가 인간이건 우주인이건 간에 그 존재가 자신이 알고 있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라면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즉 형태가 어떻든 간에, 종족이 어떻든 간에 모로보시 단은 자신이 사랑하는 모로보시 단이고, 설령 모로보시 단이 울트라 세븐이라고 해도 울트라 세븐은 자신이 사랑하는 모로보시 단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수는 대사 아닌가? 안느는 단의 고백을 듣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거나 '아무리 그래도 외계인은 좀...' 이라고 말하며 어색하게 자리를 뜰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느는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오히려 단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 작품이 1967년에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더더욱 대단하다. 1960년대 작품에 나온 캐릭터가 2020년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고민 끝에 연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우주인(혹은 외계인)과 그의 정체 따윈 신경 쓰지 않고 그라는 존재 자체를 포용해준 인간의 아름다운 대화 장면은 다 합쳐도 1분이 채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수천 년 동안 쌓아 올려진 '인간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고정관념을 1분도 안되는 장면이 부숴버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방금 말한 대로 난 M78성운에 돌아가야 해. 만약 새벽녘 저 하늘에 빛을 내며 날아가는 별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야. 안녕, 안느..."

"기다려! 단! 가지 마!"

「울트라 세븐 49화, 사상 최대의 침략:후편」



 안느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단은 안느에게 작별을 고하며 외계인과 싸우기 위해 울트라 세븐으로 변신하려 한다. 단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안느는 단을 말려보지만 단의 강한 의지를 꺾지 못하고 결국 단은 울트라 세븐으로 변신해 외계인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한 단은 M78성운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후 다시는 안느를 만나지 못한다. 울트라 시리즈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왔고, 모로보시 단도 후속작에 자주 출현했지만 단은 이후 안느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설정이다. 지구의 시간과 M78성운의 시간은 다르고 안느의 수명이 단의 수명보다 훨씬 짧기 때문이다.



 단은 안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단에게는 울트라 세븐으로서 인간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느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단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단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슬픈 결말은 결국 단과 안느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과 외계인(울트라 세븐)의 차이, 즉 '종족의 차이'가 만들어낸 것이다. 단과 안느는 사랑의 고정관념을 깰 수는 있었지만 종족의 차이라는 더 큰 벽까지 넘을 수는 없었다. 이 '종족의 차이'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에서 종족이 다른 두 존재가 헤어지게 만드는 요소로서 자주 등장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 「그녀」에서도 둘이 헤어지는 이유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 때문이며 인간과 괴물의 사랑을 다루는 비주얼 노벨 「사야의 노래」 에서 둘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없는 까닭 또한 인간과 괴물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과는 다르게 종족의 차이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룬 작품 또한 존재한다.



종족의 차이? 오히려 좋아!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



 이산화의 소설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는 첫 문단에서부터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매우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우모린은 가상의 정부 기관 '기이현상청' 소속 공무원으로 일루미나티의 식품연구소에 조사를 나갔다가 파충류 인간 마비희와 연인이 된다. 이 파충류 인간 마비희 때문에 주인공은 작중에서 온갖 고생을 하지만 그건 딱히 이 글에서 주목할만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 소설에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을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우모린과 파충류 인간, 또는 다른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의 연애가 딱히 특별하진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우모린은 몇 개월 간격으로 애인을 갈아치우며 결말, 심지어 후속작에서까지 그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그 애인들은 전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다. 극초반부터 '매구'라는 존재와 사귀었다는 언급이 나오며 이후엔 심상치 않은 그녀의 전 애인들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말하는 비둘기떼 라던가, 파리의 모습을 한 악마라던가 하는 존재들 말이다. 헤어진 이유조차도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즉 이 소설에선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이 딱히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특별한 건 주인공 우모린이다. 우모린은 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과 연애를 하는가? 그리고 왜 주기적으로 애인을 갈아치우는가? 이 소설은 그 이유를 매우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우모린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연애를 통해 자극을 얻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이별의 원인이 되는 종족의 차이는 우모린에겐 자극의 원천이 되며 우모린은 그 종족의 차이 때문에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의 연애를 이어가는 것이다. 색다른 자극,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극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우모린은 색다른 자극을 얻기 위해 했던 파충류 인간과의 연애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자극을 얻기 위해 인류의 조상과도 같은 존재를 찾아가고, 작업을 건다. 우모린의 자극 추구는 너무나도 우리의 상식을 깨고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다 보면 사실 우모린도 인간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극 추구를 위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과 연애를 하며 심심하면 애인을 갈아치우는 우모린에게 주목해야 할까. 단순히 이 소설에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기 때문은 아니다. 그 다름 속에 있는 무언가가 더 중요하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그리고 비슷한 내용의 작품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왜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은 항상 특별한 무언가일 것이라고 생각해? 가볍게 애인을 갈아치우는 그런 관계도 있을 수 있잖아? 지금까지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은 '인간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긴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너무 특별한 무언가로 다루면서 오히려 그것을 '평범함'으로부터 멀어나게 한 것이 아닐까. 좀 더 쉽게 말해서 '다른 형태의 사랑'은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닌 그냥 평범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모린과 애인들이 전부 여성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이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이 소설에서 여성과 여성의 사랑은 특별한 것으로 다뤄지지 않고 평범하게 다뤄진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랑이 평범한 것 처럼 말이다.



 이 메시지는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매우 중요한 메시지이다. 다른 형태의 사랑은 특별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형태만 좀 다를 뿐인 일반적인 사랑이다. 초콜릿을 생각해보자. 아무 초콜릿이나 하나 생각해보자. 밀크 초콜릿도 괜찮고, 다크 초콜릿도 괜찮다. 가나 초콜릿이어도 되고 허쉬 초콜릿이어도 된다. 아무튼 그중 하나를 녹여서 모양이 다른 틀에 담고 굳힌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개의 초콜릿들은 모양은 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초콜릿을 녹여 만든 같은 초콜릿이다. 사랑도 비슷하다. 모양이 좀 다를 수는 있어도 결국 같은 사랑인 것이다.



결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더 이야기하다간 필자가 마구 폭주하여 분량을 마구 늘려버릴 것 같기에 슬슬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이 세상에는 다른 형태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다. 종류도 다양하다. 그만큼 이 세상에는 다른 형태의 사랑이 많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른 형태의 사랑들은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들에 갇혀서 바라보면 이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고정관념들이 뭔지는 굳이 이 글에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있을 것이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창작물을 통해 그 고정관념들을 깨버릴 필요가 있다. 창작물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 그 창작물 자체가 목소리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론 목소리를 낼 사람을 들리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선 창작자들이 먼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매번 똑같은 사랑만을 그리는 건 솔직히 좀 지겹지 않은가. 한번 해보시라.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랑도 괜찮고, 그 외의 다른 사랑도 괜찮다.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 그 사랑들 모두 형태만 다른 평범한 사랑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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