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소개 l 공지사항 l PDF서비스 l 호별기사 l 로그인
[비평] 케이티 오닐의 사랑
임민영 ㅣ 기사 승인 2022-12-06 09  |  668호 ㅣ 조회수 : 289

케이티 오닐의 사랑

-우리나라에 번역된 퀴어 작품들을 중심으로-



0. 케이티 오닐, 그는 누구인가



 타인으로부터 느끼는 최초의 감정이 사랑이라면 그것만큼 보편적인 행운이 있을까. 하지만 모두가 그러하듯 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사랑으로 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케이티 오닐의 작품은 그러한 세계에서 사랑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더 다양한 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두 공주의 모험과 사랑을 다룬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보물창고, 2020), 인간과 비인간,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티 드래곤 클럽』(보물창고, 2020)이 그러하다. 두 작품의 주제 의식은 분명하게 다르지만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주류에서 벗어난 존재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지워지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케이티 오닐의 작품을 어떻게 수용할까. 작품에 표현된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수 있을까. 케이티 오닐의 책을 읽으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려 한다.



1. ‘우리’만의 사랑 방식,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탑에 갇혀 살던 ‘세이디’ 공주는 백마 탄 공주 ‘아미라’에게 구조된다. 둘은 말을 타고 다니다가,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블라드릭’ 왕자를 구출한다. 블라드릭은 사람을 해친다는 ‘거인’을 고발하고, 세 사람은 거인을 찾아 집을 부수지 말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춤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 알았던 거인은 셋의 설득을 듣고 안전하게 춤추는 방법을 익힌다. 세 사람은 목적 없는 여정을 계속하다, 세이디를 계속 괴롭혀왔던 기억 속 괴물과 실제로 마주한다. 괴물은 아미라를 납치하고 세이디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괴물의 주인은 세이디의 친언니다. 그는 세이디가 “얼마나 사랑받는지 알기 때문에” 세이디를 무서워하고 모욕해왔다. 세이디의 친구 드래곤 ‘올리버’는 재채기로 언니를 돼지로 만들어버리고, 아미라는 구조된다. 먼 미래에 아미라는 장군, 세이디는 여왕이 되어 결혼식을 올린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작품은 레즈비언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두 공주가 만나 여정을 함께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한다. 이 과정에서 동성애적 성지향성이 비난받거나 의문에 부쳐지는 일은 없다. 작품 전반에서 퀴어성은 언어화되지 않는다. 두 공주의 사랑은 그저 순탄하다. 작품의 세계관은 여성에 대한 편견은 존재해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없는 이상한(queer) 사랑의 유토피아다. 케이티 오닐의 이러한 퀴어 재현은 섹슈얼리티의 경험이 부족한 아동 독자에게, 사회가 내면화시킨 헤테로 섹슈얼뿐만 아니라 그 외의 성지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깨달은 독자일지라도 “늘 그래 왔듯, 우리만의 방법으로” 사랑한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케이티 오닐의 소수자 윤리 의식은 젠더와 퀴어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야기에서 언급되지 않은 계층으로까지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다. 아미라의 전 약혼남이 “난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걸 다른 사람들과 꼭 나눠야 할까요?”라고 했을 때 아미라의 의문 어린 표정이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부유한 왕자는 빈곤하거나 남성이 아닌 이들에 무지하다. 작가는 그처럼 자신이 속한 계층 외의 사람들을 멸시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그렇다고 왕자 같은 이들과 공존하는 데 체념한 것은 아니다. 거인에게 그가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과, 춤을 안전하게 추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두 공주의 모습에서 소수자의 연대가 포착된다. 이처럼 작품은 여성적이고 퀴어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무지한 이들까지 포용하는 서사다. 여기서 어떤 아동 독자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우리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두 공주의, 케이티 오닐의 방법인 듯하다.



2. 총체적 사랑의 세계, 『티 드래곤 클럽』



 대장장이 일을 배우는 여자아이 ‘그레타’는 찻집 주인 ‘헤세키엘’에게 드래곤을 되찾아준다. 헤세키엘의 드래곤은 몸에서 나는 잎으로 차를 만드는 티 드래곤인데, 헤세키엘은 그레타에게 티 드래곤 키우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그레타는 ‘에릭’ 선생님과, ‘미네트’라는 또래의 소녀를 만난다. 그레타와 친해진 미네트는 자신이 집을 나왔고 기억을 잘 못 하는 성향이 있다고 고백한다. 시간이 지난 뒤 헤세키엘과 에릭은 그레타에게 차를 마시며 주변인의 기억을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그레타는 에릭이 나쁜 드래곤을 물리치다 헤세키엘과 깊은 관계가 되었고 신체장애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미네트는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에게 돌아가겠다는 편지를 쓴다. 그레타는 미네트에게 차를 만들어주고, 미네트는 차를 마시며 그레타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응원 받는다.



 그레타와 미네트가 서로에게 설렘을 느끼는 모티프, 헤세키엘과 에릭이 친구 이상의 관계라는 지점은 퀴어적이다. 또한 숲속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케이티 오닐의 다른 생태주의적 작품들()과의 관련성을 지닌다. 이처럼 퀴어성, 친환경성은 케이티 오닐의 작품관으로서 『티 드래곤 클럽』을 관통한다. 하지만 이보다도 돋보이는 소수자성 및 윤리성은 에릭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에릭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휠체어를 타고 있다. 그레타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낯설어하지 않는다. 그레타에 동일시되었을 아동 독자 역시 에릭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에릭이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된 경위는 그레타가 차를 마시고 기억을 공유받으면서 밝혀진다. 이때도 장애는 극복해야 할 부정적 요소가 아니다. 에릭은 절망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이 역시 이내 헤세키엘의 말(“그 어떤 모험도 너보다 더 사랑하지 않아.”)을 통해 위로된다. 그레타의 에릭에 대한 존경심은 사정을 안 뒤에도 지속된다. 그 누구도 에릭을 차별화하여 대우하지 않는다. 『티 드래곤 클럽』에서 장애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불과하며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동물, 자연, 그리고 아동. 이는 케이티 오닐의 작품을 해석할 때 소환되는 주요 키워드들이다. 그러한 작품들 중에서도 『티 드래곤 클럽』은 케이티 오닐이 공존하기를 시도하는, 앞서 언급한 모든 계층의 이야기다. 그들은 주류에 속해 있지 않으며 남들과 다르다. 외로웠던 적이 있거나 외롭다. 하지만, 보호받는다. 또는 자신을 치유할 방법을 찾고 행복해진다. 주류인 존재들, 비주류인 존재들 모두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서사적 요소들은 『티 드래곤 클럽』에서 가장 종합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그러므로 이 작품을 케이티 오닐의 총체적인 세계라 불러도 될 듯하다. 그 유토피아에서 나의 세상은 안전하다. 평화롭다.



3. 케이티 오닐의 사랑



 비주류인 아동에게 주류에 속할 것이 권유되는 한국 사회에서 케이티 오닐의 그래픽노블이 지니는 의미는 대단하다. 퀴어성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킨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앞선 모든 주제를 종합하고 장애인과의 공존을 지향하는 『티 드래곤 클럽』. 본론에서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체형과 인종의 면에서까지 비주류를 포용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드러난 작품들이다. 이에 따라 아동 독자는 소수자 윤리를 수용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사랑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겠다. 특히 아동기에 성소수자에 관한 지식을 접하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하는 보호자들이 많을 듯하다. 실제로 연령대가 낮은 독자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데, 동성애 및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읽히는 것은 교육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방은수 ( Bang Eun-soo ). 2019. 미투 시대, 아동문학 교육의 방향 - 젠더 허물기를 중심으로 -. 문학교육학, 65(0) : 88쪽. 유아 기관에서 아동들에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케이티 오닐의 텍스트는 기존의 젠더 및 섹슈얼리티 규범에 반하는 작품으로 요약될 수밖에 없다. 즉, 가부장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 저항하는 텍스트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내가 아이였을 때, 나는 어떤 아동문학을 원했던가?’ 현실의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것을 고착화하는 이야기를 원했던가. 주류가 될 것을 권유하며 비주류를 멸시하는 서사를 원했던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모두’가 행복한 사회였다. 배제되어야 마땅한 사람은 없음을 같이 외쳐주는 어른이었다. 사랑이었다. 그리고 케이티 오닐의 세계에, 그것이 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누군가가. 누구도 외롭지 않은 우주가. 나처럼 그런 세상을 원하는 아이는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케이티 오닐의 다정함이 금지될 이유는 없다. 그의 사랑은 앞으로 더 많은, 다양한 독자에게 가닿으며 ‘동화 같은’ 세계를 만들어줄 것이다.


기사 댓글 0개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쓰기 I 통합정보시스템,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으로 로그인 하여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확인
욕설,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01811]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 최초발행일 1963.11.25 I 발행인: 김동환 I 편집장: 김민수
Copyright (c) 2016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