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최장 기록 경신 이후 남은 과제
송태선 기자 승인 2026.01.14 10 710호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월 23일(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만에 마무리했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가 직접 나섰다. 또 종전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도 갈아치웠다. 이 무제한 토론의 최장 기록은 곧바로 필리버스터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견해 차이로부터 시작됐다. 장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을 두고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을 훼손할 소지가 있다며 위헌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해당 법안이 사법부의 권한과 재판 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오는 만큼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입법 과정에서 패스트트랙과 같은 속도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강조하며 다수 의석을 앞세운 법안 처리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법안이 단순히 기존 사법 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며 위헌 소지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관련 논의가 이미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뤄졌고 국회 입법권 범위 내에서 추진되는 사안이라며 반박했다.



 여야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논쟁은 곧 필리버스터라는 제도 자체로 옮겨갔다. 장시간 토론이 이어지자 일부에서는 국회 운영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지적이 나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법이 허용한 절차에 따른 정당한 문제 제기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번 논란은 특정 법안에 대한 찬반을 넘어, 필리버스터가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고 어디까지 허용되는 제도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됐다.


 



▲ 지난 12월 23일(화)에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출처=한국경제)



 


 필리버스터는 국회법 제106조의 2에 근거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식이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면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을 실시할 수 있다. 발언 시간에는 제한이 없지만, 토론이 영구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결 동의가 제출된 뒤 24시간이 지나면 무기명 투표를 통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할 경우 토론은 종료된다. 제도적으로 소수 의견을 보장하되, 다수결 원칙 역시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이번 무제한 토론과 관련해 우원식 국회의장은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12월 24일(수), 2박 3일에 걸친 무제한 토론이 종료된 직후 우 의장은 본회의장에서 여야를 향해 “앞으로는 이런 식의 무제한 토론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새벽 4시 사회 교대 시간에 본회의장 의석에는 두 분의 의원만 있었다”며 장시간 토론이 사실상 형식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의장은 현재 정치 상황을 언급하며 필리버스터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국회와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국민적 인식이 강한 시기”라며 “비정상적인 무제한 토론은 국민 보기에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측 정당 대표를 향해 제도 운영에 대한 개선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필리버스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필리버스터가 다수결 중심의 의회 구조에서 소수 의견을 제도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본다. 실제로 2016년 더불어민주당은 테러방지법 제정을 둘러싸고 약 8일간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며 국가정보원의 권한 확대와 인권 침해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무제한 토론은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법안 내용과 쟁점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상임위원회 논의가 국민적 관심을 끌기 어려운 현실에서 본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장시간 토론이 입법 과정의 쟁점을 드러내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의회에서도 필리버스터는 오랜 논쟁의 대상이다. 미국 상원의 경우,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법안 표결을 지연시키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다만 미국 상원 규칙 제22에 따르면 ‘클로처’ 절차를 통해 토론 종결을 허용하고 있다. 상원의원 5분의 3, 즉 60명 이상이 찬성할 경우 토론을 종료하고 표결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규정은 소수 의견 보호와 입법 효율성 사이의 균형을 위한 장치로 마련됐으나, 최근에는 필리버스터 남용을 막기 위해 클로처 요건을 완화하거나 적용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영국 하원은 제도적으로 필리버스터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하원 의사규칙에 따라 의장이 토론 진행을 통제하며, 정부는 ‘토론 시간 배분 동의안’이나 이른바 ‘길로틴 제도’를 통해 특정 법안의 토론 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장시간 토론으로 의사 진행이 지연되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고, 입법 일정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 의회는 소수 의견 보호와 입법 효율성 사이에서 서로 다른 균형점을 찾아왔다. 우리나라 국회의 필리버스터 역시 같은 고민 속에 놓여 있다. 정쟁과 견제, 토론과 지연의 경계에서 필리버스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송태선 기자

songts06@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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