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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의 보고寶庫, 아프가니스탄
기사 승인 2021-09-13 14  |  649호 ㅣ 조회수 : 11



세계문화유산의 보고寶庫, 아프가니스탄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의 카불 입성, 8월 26-27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한국 도착, 8월 31일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종료 선언까지 아프가니스탄은 21년을 기억하게 할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대단히 복잡하다. 그도 그럴 것이 물리적으로 이 나라는 이란, 인도, 중국,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5,500㎞의 국경을 맞대고 있어 복잡한 중앙아시아 국제 정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미국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의 미래에 인도와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기치를 세운 중국과 그 영향력 확대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인도가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싸고 벌일 미래의 경쟁은 명약관화하다. 그렇다고 냉전시대의 맞수 미국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잊을 리 만무하다.



  간혹 외신의 보도에 노출된 아프가니스탄의 국토는 황량하기 짝이 없다. 원래 강수량이 적은 지역인 것은 맞지만 오랜 전쟁으로 주민은 농경지를 떠났고 수로는 방치되었다. 1979년 소련, 2001년 미국의 침공, 그 사이사이 이어진 내전까지 40여 년의 전란이 빚은 결과는 바로 그랬다. 그러나 영국의 중앙아시아 진출, 러시아의 남하가 일어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두 세기를 훌쩍 넘긴다. 당초 영국,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국경 획정에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곰으로 상징되는 제정 러시아와 사자로 상징되는 대영제국이 중앙아시아를 두고 벌인 혈전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의 중심지가 바로 이곳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북부 변경을 이루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모두 과거 소련의 영역이었음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히말라야 산맥, 파미르 고원, 그리고 힌두쿠시 산맥이 만든 산지와 계곡, 분지를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 이들은 왜 제국주의 열강의 표적이 되었을까? 유라시아 중앙부와 동서남북으로 연결된 교통로가 바로 이곳에서 만나고 다시 헤어지기 때문이었다. 불교미술사학자 이주형 교수는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사회평론, 2004)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문명의 대로’라고 표현했다. 앙상하게 남은 철골 구조, 그나마 남은 벽채마저 모두 총탄 자국으로 얽은 아프가니스탄 국립 카불박물관의 잔해에서 어떻게 문명을 논할지 독자들은 의아스러울 수 있다.



  당분간의 내전과 열강의 개입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이를 얼마나 빨리 극복하고 국가재건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가 여부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몫이다. 그럼에도 인류의 일원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의 대지 위에 펼쳐졌던 인류 문화유산의 향연을 기억하고 지금도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고귀한 것을 안타까워함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불행을 마주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소극적인 인류애에 기대어 소략하나마 문명사의 관점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문명사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 사이에 위치한다. 고대 페르시아 문명, 알렉산더와 함께 동진한 헬레니즘, 초원에서 남하한 스키타이 문명, 인도 불교의 북상과 헬레니즘이 만나 탄생한 간다라 스타일의 불교 미술 양식까지 9세기 이슬람 전파 이전 아프가니스탄에 펼쳐졌던 인류 문화 유산은 이토록 다채로왔다. 특히나 간다라는 지중해 동부의 헬레니즘과 인도 북부의 문화가 만나 중앙아시아는 물론 동아시아 불교 문화의 근간을 마련했으니 동서 문명의 교류에서 잊힐 수 없는 사건이다.



  물론 간다라의 영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결되지는 않는다. 바미안, 쇼토락, 베그람(바그람), 핫다를 이어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탁실라로 이어지는 곳곳이 간다라의 고향이다. 그러나 간다라에 영감을 준 헬레니즘의 영향권을 생각해보면 그 중심은 힌두쿠쉬 주변 동서로 늘어선 헤라트, 칸다하르, 아이하눔 등 유적을 포괄하는 그레코 박트리아Greco-Bactria 지역이다. 이들 유적은 알렉산더와 함께 이곳에 왔던 그리스계 후손들이 건설하였는데, 특히 아이하눔의 발굴 보고서에서는 그리스식 도시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알렉산더와 그의 후손에 얽힌 이야기는 박트리아 곳곳에 광범하게 남아있었고 소련의 침공 직전까지 유럽의 고고학자들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불러들였다. 통일신라 불교 유적을 대표하는 석굴암, 석굴암을 지키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바로 간다라의 헤라클라스에서 비롯되었음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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