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인의 명품 소비에 주목하는 언론 보도가 늘고 있다. 실제로 서울 시내를 다녀봐도 예전에 비해 고가의 명품 옷을 입고 가방을 든 젊은이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도로에 다니는 자동차의 상당수가 외제 차이고, 이른바 ‘슈퍼카’라고 불리는 초고가 자동차도 종종 눈에 띈다. 유수의 명품 회사들이 K-팝 스타를 브랜드 홍보대사격인 ‘앰배서더’로 선정하는가 하면, 한동안 젊은이들 사이에서 백화점이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 현상이 유행하기도 했다. 역시나 외국 기관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가 이미 미국과 일본을 앞질렀고,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관련기사 8면) 한국에서도 바야흐로 명품의 대중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력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명품 소비가 느는 것은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1970~80년대에 첨단기술 산업을 바탕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 오른 이웃나라 일본도 그 무렵부터 유럽의 명품 의류와 가방, 자동차가 대거 유행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1990년대 들어 ‘버블경제’가 붕괴한 이후 최근까지 ‘잃어버린 20년(失われた20年)’을 보냈다. 경제 사정이 급속하게 악화되자 많은 양의 명품이 중고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도쿄 시내에서는 지금까지도 중고 명품을 취급하는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중고 명품 시장의 활성화는 일본 경제의 화려한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1인당 GDP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경제력은 일본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엔이 발표한 2021년 기준 1인당 GDP는 일본이 3만 9583 달러, 한국이 3만 4940 달러로 근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다가, 향후 한국이 역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명품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로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최근의 명품 트렌드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세계 각국의 유동성 확대 이후 더욱 가속화된 현상이라는 점이다. 팬데믹으로 경제 활동의 위축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통화량이 빠르게 늘었고, 이제 팬데믹의 막바지에 도달하자 이를 다시 흡수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어떤 경로를 밟게 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최근 한국의 명품 소비가 급증했다는 소식 역시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위기 상황 속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인위적인 통화량 증대를 지속가능한 현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기 위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군중심리에 휩쓸려 자신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과시형 소비를 늘리기 보다는 차분하게 앞으로 닥칠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타조가 맹수의 공격을 받을 때 튼튼한 다리를 이용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땅 속에 머리를 처박는 모습을 ‘장두노미(藏頭露尾)’라고 한다. 팬데믹 이후 변화할 세상에서 타조처럼 머리만 숨기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시각을 바탕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