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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류, 과학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 체계를 고민해야
기사 승인 2023-06-19 13  |  676호 ㅣ 조회수 : 156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임박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했고, 밀려든 바닷물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냉각 시스템을 무력화했다. 결국 과열된 원자로 내부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려 폭발이 발생했다. 이후 사고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노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매일 백여 톤의 냉각수를 주입했고, 그 양이 총 132만 톤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이미 2020년에 몇 가지 이유로 방사능 물질에 노출된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배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문제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일본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다로 배출된 물질은 해류를 타고 아주 먼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2020년에 해양 방류를 결정하기 직전에 일본에 인접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물론이고, 국제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최종 결정을 연기한 바 있다. 일본측은 202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오염수 방류 계획의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고, IAEA에서 구성한 태스크포스가 2023년 4월에 발표한 보고서는 일본의 계획은 “충분히 보수적이지만 현실적(sufficiently conservative yet realistic)”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주변국을 설득하기 위해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을 점검할 대만과 한국의 전문가 시찰단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반응은 여전히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특히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정치 쟁점화된 한국에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고, 일부 전문가들 역시 이에 부화뇌동하며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채 설익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 냉정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보다는 정치화된 과학을 설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는 국내 여론 동향의 눈치를 보느라 일본에 우리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의사결정 역량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의 이슈가 정치 쟁점화되는 것은 한국에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우리는 15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이른바 ‘광우병 논란’을 겪으면서 정치권과 언론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얼마나 과학을 왜곡하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알아내기 위한 독립 위원회에서는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본 사고의 원인을 확정하지 못한 채 여러 해에 걸쳐 지리한 논쟁을 계속하다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활동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심각한 혼란에 빠졌고, 과학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한국에서 과학과 정치의 만남은 과학에도, 정치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제는 과학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고민할 때다. 과학적 방법론이 강력한 이유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의사를 물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혹세무민하지 않고, 전문가로서의 소견을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은 세간에 떠도는 괴담과 가짜 뉴스를 확대 재생산하지 말고, 엉터리 주장을 하는 가짜 전문가의 스피커 노릇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격’이란 이러한 노력 위에서서 만들어지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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