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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 논란, 호들갑보다는 차분하게 지켜봐야
null ㅣ 기사 승인 2023-09-18 16  |  680호 ㅣ 조회수 : 433

 지난 7월 22일 온라인 과학 논문 저장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최초의 상온, 상압 초전도체”라는 제목의 논문이 올라왔다. 논문은 올라오자마자 과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물리학계에서 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론적 바탕은 두 차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바딘이 동료들과 함께 1957년에 발표한 BCS이론이다. 이들은 30K(또는 -243.15℃) 이하의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이론적으로 규명했고, 이 업적으로 197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물리학자들은 1986년까지 30K 이상의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꾸준한 실험물리학의 성취로 비교적 ‘고온’ 상태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초전도 현상이 관찰된 최고 임계온도는 138K로 1993년 탈륨과 수은, 구리 등으로 구성된 세라믹 물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온, 상압”에서 관찰되는 초전도체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arXiv에 논문을 올린 연구자는 고려대학교의 권영완 교수였고, 공동 저자로 퀀텀에너지 연구소 소속의 이석배와 김지훈 박사가 올라와 있었다. 연구를 주도한 이석배와 김지훈은 1999년에 납과 구리를 주 성분으로 하는 물질이 초전도체로 유망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각자의 성의 머릿글자와 연구 시작 연도를 따서 ‘LK-99’라고 이름붙였다. 7월에 발표된 논문에서 이들은 무려 127℃의 온도 이하의 상온과 상압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변형된 LK-99 구조의 물질을 합성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초전도 분야에서 중대한 실험적 성취일 뿐만 아니라, 상용화된다면 엄청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었다.(본지 9면 기사 참조) 수십 년 동안 세계 물리학계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긴 현상을 한국인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쾌거라고 할 수 있었다.



 과학사회학의 거장인 로버트 머튼은 1942년에 과학자 공동체의 핵심 규범을 네 가지로 정리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규범이 “조직된 회의주의(organized scepticism)”이다. 역시 관련 분야 과학자들은 LK-99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초전도 연구 그룹에서 이 현상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후 두 달 가까이 지나도록 논문에서 주장한 것과 같은 현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곳은 아직까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LK-99 그룹의 주장을 허황된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과학적 방법론에 따르면 이들의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른 그룹에서 실험 재현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실험 조건이 무언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LK-99의 신빙성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논의가 종결될 것이다. 이렇듯, 과학의 발전은 모든 가능성을 완벽하게 제거해 가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 두 달 동안 우리는 세계 과학 공동체가 과학 활동을 수행하는 방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 비전문가들은 전세계에서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한국 과학의 위대한 성취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전도 관련주’의 동향을 살피며 대박을 기원하기도 했다. 과학의 주변부에서는 호돌갑을 떨기도 하지만, 과학은 명백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은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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