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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평가, 교육 목적에 따라 일관된 철학을 갖춰야
null ㅣ 기사 승인 2023-12-04 17  |  683호 ㅣ 조회수 : 131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자 각급 학교에서는 그해 1학기부터 모든 수업을 전면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성공적인 비대면 수업을 위해 우리대학은 서버를 증설해 동영상 강의를 처리할 수 있는 이클래스(e-Class) 용량을 확보했고, 담당교수가 동영상 강의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했으며, 실시간으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줌(Zoom) 기관회원으로 가입해 구성원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유례없는 위기였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비교적 큰 무리없이 대학의 기본 기능인 교육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진행된 수업에서 학생들의 성취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예산과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비대면 수업은 공정한 평가라는 원칙을 견지하기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을 제기했다. 강의실에 모여 교수 또는 조교의 감독 하에 시험을 보는 환경을 비대면이라는 조건 하에서 똑같이 만들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대규모로 공통된 시험을 볼 수밖에 없는 수학과 물리 교과목의 경우, 카메라로 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의 모습을 촬영해 줌으로 전송하게 하는 등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결국, 우리대학은 코로나 첫 학기인 2020년 1학기 성적 평가를 절대평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적절한 판단이었을까? 적절성 여부를 떠나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기는 했다. 학생들은 정상적인 학기에 비해 높은 학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고, 교수들도 엄격하게 평가하는 책임을 완화시켜 주는 조치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속가능한 방식은 아니었다. 2020년 2학기부터는 A와 B를 받을 수 있는 수강생의 비율을 상향하는 이른바 ‘상위 상대평가’ 방식을 채택했고, 팬데믹 상황이 마무리되기 시작한 2022년 1학기까지 시행했다. 학점 인플레를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조치를 시행한 이유는 국내 대부분의 대학이 유사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두가 높은 학점을 받을 때 우리만 엄격하게 성적을 관리한다면 우리대학 학생들이 보게 될 피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이 성적 평가 방식에 관심이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대학에서의 성적이 이후 취업이나 진학에 영향을 미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평가도 교육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을 때 앞으로 우리대학도 성적 평가 방식에 있어서 일관된 철학을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는 오랫동안 1학년 첫 학기의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숨겨진 학점(concealed grades)’ 정책을 시행했다. 학점을 매기기는 하지만 성적표에는 C 이상은 S로, D 이하는 U로만 표기한다는 것이었다. 대학생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경쟁에 매몰되기보다는 배움의 즐거움에 집중하라는 취지다. 우리대학 역시 교육의 목적에 따라 섬세한 성적 평가 방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실제로 존스홉킨스에서도 2017년에 수십 년 동안 운영하던 ‘숨겨진 학점’ 정책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이 정책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대학만의 적절한 성적 평가 방식은 오랜 기간 에 걸친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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