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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좌절의 시대입니다만
null ㅣ 기사 승인 2024-04-01 17  |  687호 ㅣ 조회수 : 80

 최근에 통계청이 발표한 ‘2023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삶의 만족도와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 인식률이 이전보다 떨어졌다. 사회적 고립감은 더 높아졌는데, 이례적으로 20대에서 높게 나타났다. 한 매체에서는 이 결과를 소개하면서 소득에 비례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즉, 소득이 낮을수록 고립감이 크기에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인 사람들이 외롭다고 느끼는 비율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출생률 역시 더 감소되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할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의 소득이 낮은 것이 사실이니 그들이 고립감이 크고 결과적으로는 출생률이 감소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법하다.



 달리 생각해보자. 인류세, 다중재단 시대라고들 한다. 툭하면 전례없는 이상 기온이라고 하고 디스토피아의 징후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어떻게 삶에 만족하고 고립감이 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아가 어떻게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후대가 지금보다 더 혹독한 상황에서 살아갈 것이 뻔한데 출산 장려라니.



 이것이 전지구적 문제라면 왜 유난히 한국이 출생률이 낮은지 반문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며칠 전에는 공기질이 최악이라고 알려진 뭄바이보다도 더 나쁜 국가로 기록되었다. 이것과는 인과관계가 없을까?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을텐데 그것을 단지 소득이나 주거 문제에만 매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의사들을 정착시키려고 억대 연봉을 제시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마 출산 지원금을 얼마를 준다고 해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삶의 만족도가 잘 사는 기준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예컨대 강의만족도로 강의의 실적 수준을 판단할 수 있을까? 성적표로 학생의 역량을 판단할 수 있을까? 참고할 수는 있지만 다양한 요인을 살펴보지 않고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다수의 대상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수립할 때는 통계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하기 일쑤다. 축구 중계를 보더라도 세세한 데이터가 공개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지만 어디 그것으로만 판단할 수 있던가. 시합 전날 선수들 사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이 영향을 미쳤고 다시 화해하면서 마무리된 사건을 모두가 지켜보지 않았던가.



 수많은 사안에 대해 나름의 ‘근거’로 분석을 내놓는다. 그런데 그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마음도 필요할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또다른 원인은 없을까, 예컨대 삶의 만족도와 소득의 두 변인이 정말로 인관관계인지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물가지수를 반영한 실질소득, 정치 및 환경문제까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는데 어느덧 경제적인 지표로 환원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아닌가 한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을 쓴 장강명 작가는 오늘날을 ‘미세 좌절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내 마음처럼 잘 안되는 경우를 겪곤 하는데 이것이 쌓여서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 순간에는 낙관적이던 이조차 굴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주면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투표일 전에는 늘 투표를 독려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처음 투표하는 설렘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매번 실망하고 다수의 선택이 늘 맞지는 않다는 경험을 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또 다른 선택들이 이어질 텐데 지금부터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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