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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연결될 수 있을까
null ㅣ 기사 승인 2024-05-27 15  |  690호 ㅣ 조회수 : 69

 한 사내가 버스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운전기사에게 부탁한다. 곧 떡갈나무가 보일 텐데 거기에 노란 리본이 걸려있는지 봐 달라고. 3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여전히 날 원한다면 노란 리본을 걸어달라고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승객들도 그 결과를 궁금해하면서 결과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라는 오래된 노랫말에 담긴 이야기다.



 널리 알려진 노래인데 신승철의 『떡갈나무 혁명을 꿈꾼다』라는 책을 통해서 노랫말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생태철학을 연구한 저자는 작은 도토리 한 알이 떡갈나무 숲을 이루는 과정을 이웃, 가족과 함께하는 기후행동, 탈성장의 실천 가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숲에는 나무들이 서로를 돕는 진균네트워크를 이루는, 이른바 우드와이드웹(WWW)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세계 끝의 버섯』을 쓴 애나 칭의 표현에 따르면 숲은 살아 있는 나무, 곰팡이, 토양 미생물이 합류하여 ‘이웃다움’을 이루는 것이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를 쓴 산림 생태학자인 수잔 시마드는 어느 숲에나 어머니 나무가 있어서 그것을 관장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니까 벌목을 할 때 어떤 것을 건드리는 것은 단지 나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숲의 네트워크, 생태계가 파괴됨을 뜻한다.



 어디 숲뿐인가. 학문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기초학문 분야의 토대가 약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학과 통폐합은 비수도권부터 시작하여 서울까지 죄어오고 있다. 기술환경과 인구 변화에 따른 고육지책일 테지만 그 과정에서 학문 다양성이 상실되는데 이것이 지식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 모습은 수업에서도 발견된다.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얻어 편집해서 과제를 마무리할 수 있고 교재도 책 대신에 파일 형태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출판을 포함한 지식 생태계는 그 과정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 공들여 만든 완결된 책과 콘텐츠를 공짜로 손에 쥔 학생은 당장 좋을 수 있으나 나중에 자신의 지식, 창작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의 대가를 받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텍스트와 직물(textile)은 ‘직조하다’라는 뜻의 텍세레(texe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식은 씨줄과 날줄이 엮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팀 프로젝트를 꺼리고 심지어 졸업 전시도 칸막이로 개인화된 디스플레이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입시 과정에 내재된 경쟁적인 학습 태도를 대학생이라고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논문이 화폐가 되었다는 자조적인 평가까지 나올 정도로 교수조차 양적 평가에 눌려있고 대학마다 지표 관리로 다른 대학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태도만 탓할 순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연결 없이 지식의 숲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랫말의 결말로 돌아가면, 떡갈나무에는 노란 리본 하나가 달려있지 않았다. 무려 백 개가 달렸고 그것을 본 승객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난 집으로 가요”라는 가사로 끝나니 해피엔딩이다. 함께 숨죽여 지켜보고 환호하는 그동안 버스에 탄 사람들(그리고 버스의 기계 장치들과 의자, 손잡이까지)은 연결되었고 그 뒤로도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경쟁력 높다는 학문만 남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몇 명의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 그것을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사회가 우리가 꿈꾸고 힘써 이루려는 미래일까? 몇 명의 천재가 사회를 먹여 살리는 해피엔딩이 기다릴지 모르겠으나 그때 우리가 연결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애나 칭이 말한 ‘이웃다움’은 생명력과 생물종이 다름에도 서로 맺어진 사회관계들을 말하고 그것이 좋은 삶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건강한 지식 생태계를 위해서는 먼저 다른 분야와 지식의 가치를 서로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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