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으로 구분짓는 비인간은 참 많다. 학계에서 비인간 존재를 연구하는 학문 영역이 확대될 전망이다. 전통 관념에서 비인간의 대표는 물질과 자연이다. 물질은 문명의 재료이고, 자연은 인간과 대립하거나 공존하는 생물적 대상이다. 서구에서는 인간을 자연 우위에 있는 특별종으로 전환시켰고 동양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한 종류의 생명체로 한정했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비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동서양은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인간을 두고 비인간 개념을 활용해 묘사하는 데에는 동서양 구분이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본과 물질에 구속된 비인간, 윤리 없는 비인간, 초인적 비인간, 쓰레기 같은 비인간,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 반륜 비인간, 착취하는 비인간, 학살하는 비인간, 그리고 초능력 비인간 또한 비인간이었다. 용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런 비인간 앞에서는 물질과 자연이 더 인간적이다.
요즘들어 AI(아티피셜 인텔리전스)를 번역한 인공지능이 물질, 자연과 더불어 비인간을 대표하는 언어인 것 같다. 인공지능은 물질, 자연, 인간의 탈을 쓴 비인간 등을 모두 포함하는, 비인간의 총화를 담은 언어로 사용되는 것 같다. 인공지능이 이런 언어가 되기까지 계산기, 컴퓨터, 로봇 등의 언어가 있었다.
계산기는 컴퓨터의 초창기 버전이고 로봇은 물리적 로봇과 소프트웨어 로봇 두 가지로 정의되었다. 두 가지 정의 중에서 한 가지가 사라졌다. 로봇은 기계적이고 금속적인 신체를 가리키는 물리적 로봇을 가리키는 언어로 살아남았고 소프트웨어 로봇이라는 두 번째 언어는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전환되면서 인간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위상이 바뀌었다. 컴퓨터는 프로그램을 구동하는 기계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인공지능이 가진 가장 큰 변화는 인간성에 근접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인공지능이라는 명칭에서 지능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인간적이어서 언캐니(uncanny)하니 비인간다움을 강조하는 대체어를 찾자는 제안도 있다. 언캐니는 기계가 인간적이어서 자극하는 불쾌함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아무리 언캐니하더라도 이미 상용화된 말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기계지능, 공동지능, 초월지능 등의 언어는 지능이라는 말을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둔 채 ‘인공’을 ‘기계’, ‘공동’, ‘초월’로 바꿀 뿐이다. 로봇 이전에 사용된 계산기라는 옛말로 돌아가야 하나?
언어는 동경을 담는 그릇이다. 계산기는 계산에서 틀리지 않고자 하는 인간의 동경을 담았다. 로봇은 반복 작업을 실수 없이 지치지 않고 빠르게 수행하는 비인간을 소유하고자 하는 동경을 담았다. 이때 비인간은 동물일 수도, 노예일 수도 있다. 틀리지 않음, 빠름, 지치지 않음, 빠름이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이 동경하는 인간의 초능력치이다. 인간은 이런 비인간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비인간을 사용한 용법은 다양하다. 드론에게 미사일 발사기를 장착하듯이 군인은 어둠 속의 전투를 위해 점자를 개발했고 원거리 군사작전을 성공하려고 무전기를 개발했다. 감각을 증강하는 인간의 노력이 전쟁에 우선 사용된다는 점은 참으로 비인간적이다. 신형 AI가 개발된다면 전쟁에 우선 사용될 것이라는 것이 불행한 현실이다.
디지털 반려종이라는 생물 특징을 가지므로 AI는 물질로 한정되지 않는다. 물질이면서 자연이 된다. 창작하는 AI는 예술가적 특징을 가지므로 비인간을 넘어선다. 자연이면서 인간을 닮는다. 인간보다 나은 비인간을 대표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예술하는 AI가 소설쓰기 기능보다 영화 스크립트 쓰기 기능을 훨씬 잘 장착하고 있는 것은 영화 산업이 소설 출판 산업보다 훨씬 규모가 크기 때문인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자본은 이윤이 남는 쪽에 투자한다. 방산업체의 예산규모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다.
비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중심주의의 폐해에 대해 반성할 때에 의미를 얻는다. 우리가 기계에게 인격을 부여할 때는 인간을 위해서이지 인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 우리는 오작동으로 인한 실수 혹은 에러를 환각이라고 명명하는 철학자와 경쟁기업을 무너뜨리고자 AI개발에 집중 투자하는 자본가와 전쟁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군국주의자와 함께 살고 있다. 동경은 각각 다르다. 어쩌면 가장 약한 존재만 협업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협업은 현재 가장 건강하고 안전하고 단단한 언어이다. 약한 자도 열 수 있다는 가능성, 이것이 또한 AI가 가진 비인간적 존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