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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_조건들을 만들어야 한다
서나연, 김종현 ㅣ 기사 승인 2024-09-11 16  |  694호 ㅣ 조회수 : 178

며칠 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관객석에 현수막이 여러 개 펼쳐졌다. 응원의 메시지가 아니라 비판과 야유로 가득했다.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한 이 경기는 허무하게 끝났다. 뛰어난 개인들이 모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었다. 경기에서 이기려면, 아니 승패를 떠나서 경기다운 경기를 관객과 즐기려면 그에 맞는 조건들이 필요하다. 개인의 역량은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개인의 역량은 중요하다. 한 인물이 더 좋은 사회로 바꾸기도 한다. 로자 파크스는 흑인이 버스 어느 자리에나 앉을 수 있게 했고 레이첼 카슨은 환경운동의 초석을, 장기려는 국민의료보험의 초석을 다졌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개인들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다. 사회적 기여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것조차 자발적으로 되지 않는다. 순서를 지키게 하려고 번호표를 뽑게 하고 주문 오류 시비를 없애려고 테이블마다 ‘오더’기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기계적 해결방안이 능사는 아니지만 때로는 어떤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에도 좋은 인재들이 있고 좋은 소식이 들린다. 국립대육성사업단 인센티브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고 오랜 숙원사업이던 의과학전문대학원 신설 승인도 받았다. 그 외에도 총장 공약사항이 하나씩 실행되고 있다. 대학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은 결과이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개인들이 애써온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수업 문제다. 특히 수강 신청 문제는 매학기 학생들이 곤욕을 치르는데 본부에서는 강사 증원과 분반 수업을 지양하여 문제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단과대학 비교자료를 근거로 학과 교수들이 더 많은 수업을 하고 강사를 줄이도록 요구하는 것도 수년간 재정 부담이 컸던 본부로서는 고육지책일 것이다.



인센티브 평가로 확보한 예산을 교육환경 개선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프로젝터 같은 장비 교체다. 사실 더 좋은 교육환경이란 분반을 줄여서 대형 강의로 대체하는 것, 동일한 교수가 여러 과목을 강의하는 것 보다는 최신 분야에 대응할 과목을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외부 전문가를 모셔 적시에 개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려면 교수는 현장 전문가들과 관계망을 넓혀야 하고 이를 학생들이 새로운 분야에 진출한 연결고리로 만들어야 한다. 분반이 많은 학과들의 경우, 실험실습실의 수용범위, 그리고 복수전공과 부전공 수강생이 많은 특성이 있다.



또 한 가지는 녹지 비율 문제다. 우리 대학은 상대적으로 넓은 조경 녹지가 있고 숲에 가까운 학교 풍광이 좋은 평판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연구와 교육 공간 수요 때문에 건물부지를 확보하려고 개발제한을 풀고 녹지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 내 건물이 증가되면서 투수 쿨표면이 축소와 열섬 현상이 나타났고 건물면적이 늘어남에 따라 에너지소비도 늘어 건물 에너지 효율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일어났다고 한다. 매년 뜨거운 여름을 보낼텐데 그나마 누리던 쾌적함과 평판이 개발과 함께 상쇄될 것 같다.



앞선 두 정책만 보더라도 대학은 효율과 개발을 지향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예산절감과 필요공간 확보가 가능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하나를 잃게 되는데 그것은 다시 회복되기 어렵다. 한번 개발된 녹지는 돌아올 수 없다. 우리 대학에 필요한 조건들을 잘 갖춰나가야 하지만 그것이 꼭 효율과 개발 지향이어야 하는가. 이번 올림픽에서, 뛰어난 우리 선수들이 존중받거나 제 실력을 다질 조건을 만들지 못한 협회들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지켜보았다. 발전을 위한 조건도 필요하나 제 실력을 다질 교육의 질적 조건, 건강하고 생태적인 캠퍼스를 지켜야 할 조건도 있어야 한다. 정책 기조를 바꿀 수야 없겠지만 소수 의견을 남긴다.


서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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