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솥밥 먹는 우리,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식구(食口)의 사전적 의미는 ‘한 집에서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다. 가족의 영단어인 ‘family’의 어원은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구성원을 의미하는 라틴어 ‘파밀리아(familia)’에서 비롯됐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일가(一家)와 가족(家族)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모두 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무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세계 각국 모두 가족을 부르는 단어는 다르지만, 그 뜻을 천천히 뜯어보면 모두 결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근래 들어 혈연, 법률혼 중심의 전통적 가족 개념이 붕괴되는 추세다. 이제는 반드시 법적인 혼인과 혈연으로 연결된 형태만 가족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지붕 안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나눠먹는 진정한 ‘식구’의 개념이 실현되고 있다.
동거인, 가족이 되다
‘비친족 가구’란 시설 등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가구를 제외한 일반 가구 중 8촌 이내의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를 말한다. 쉽게 말해 가족이 아닌 친구나 연인과 함께 지내는 가구를 의미한다.
비친족 가구원은 우리나라에서 지난해에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2016년에만 해도 약 27만 가구에 불과했던 비친족 가구는 5년 만에 대폭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비친족 가구는 총 47만 2,660가구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비친족 가구는 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을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월세 및 생활비가 치솟는 상황에서 타인과의 동거는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학업이나 취업 등 생활양식 변화로 인해 기존 가구에서 독립하게 된 이들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결혼관에 대한 가치관 변화도 비친족 가구 증가 요인 중 하나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가족 부양의 부담이 생기는데, 이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 변화와 맞물려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을 탈피하려는 점도 반영됐다. 이외에도 현행법상 혼인신고가 불가능한 동성 부부도 존재한다. 이처럼 근래 들어 다양한 이유로 ‘동거’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비친족 가구원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이 가진 가족관 역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본지는 가족관에 대한 우리대학 학우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9월 27일(화)부터 10월 10일(월)까지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에 참여한 학우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란?”이라는 질문에 ▲법적으로 연결돼야 가족 ▲생계 및 주거를 공유해야 가족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라면 가족이라는 세 개 항목이 복합적인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 가족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법적으로 연결돼야 가족이다”라고 말한 이들은 대부분 “사회에는 규칙과 규범이 있고 이를 따라야 사회가 문제 없이 흘러가기에 가족이란 개념 역시 법 안에서 형성돼야 사회에 혼란이 없다”라며 보수적인 가족관을 옹호했다.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다”라고 답한 학우는 “위탁 가정의 경우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생계의 공유를 가족 구성의 중요한 요인으로 바라봤다.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가족”이라고 답한 학우들이 가장 많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소속감을 중요시했다. “혈연 관계라고 해도 정서적 친밀성 없이 불편하다면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학우도 있었다. 서로를 돌보는 관계라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법적인 틀 안에 구성되지 않았더라도 하우스 메이트나 사실혼 등의 관계로 이뤄진 구성도 많기 때문에 가족은 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함께 수반돼야 할
제도적 변화
이처럼 전통적 가족관이 변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친족 가구원이 늘어나는 형국임에도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정상 가족’의 단위에 머물러있다. 가령 의료 현장에서 통상 요청되는 ‘보호자 동의’의 경우 그 자격이 직계가족으로 제한된다. 수술이나 장례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동거인에게 보호자로서 아무런 법률적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가족 관계를 증명하지 못할 경우 ▲출산 휴가 ▲육아 휴직 혜택 ▲자동차보험 할인 ▲통신사 가족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소득세 인적공제의 경우 호적상 배우자만 가능하다. 주택청약 특별공급 등 청약 역시도 법적 부부만을 지원한다.
프랑스에서는 동거 역시 하나의 계약으로 인정한다. 프랑스에서는 동거인 역시 부부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민연대계약(PACS)’을 20년째 시행 중이다. 국내의 경우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의 형태와 가족관 역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가족과 가족이 아닌 이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해야할지, 또 내가 어떤 가족관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을지 고민해봐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