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 월급만큼만 일할래…조용한 사직
코로나-19 유행 이후,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신조어가 최근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이것은 직역하면 ‘직장을 그만둔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직장에서 최소한의 일을 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용한 사직이란?
‘조용한 사직’이란 신조어로, 직장에서 최소한의 일만 하면서 봉급을 타는 것을 뜻한다. 즉, 직장에 커다란 관심을 갖지 않고 주어진 일만 간신히 하면서 버티는 것을 말한다. ‘조용한’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저녁이나 주말 업무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업무 범위 이상을 일하는 것을 거부하는 식이다.
미국의 20대 엔지니어 자이들 플린은 해당 신조어를 틱톡에 소개하며 “조용한 사직은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라며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플린의 해당 게시물은 35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이후 조용한 사직을 해시태그로 단 게시물이 여러 SNS를 통해 확산됐다. 사람들이 얼마나 조용한 사직에 대해 동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용한 사직이
성행하게 된 이유
조용한 사직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단어가 있다. ‘허슬 컬쳐(hustle culture)’라는 말이다. 개인 생활보다 업무를 중시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 또는 그러한 생활 양식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이후 자신의 업무 범위 이상으로 일할 때 ▲승진 ▲더 많은 급여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허슬 컬쳐를 거부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늘어났다.
미국 구인 사이트 ‘레주메 빌더’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1,000명의 미국 노동자 가운데 21%가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비단 미국뿐 만의 현상이 아닌데, 중국의 경우 ‘탕핑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탕핑주의란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고 최소한의 벌이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 태도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회사 생활에만 매진하지 않겠다는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단어인 ▲욜로 ▲워라밸 ▲소확행 등의 단어가 유행하며 허슬 컬쳐의 인기가 식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용한 사직이 성행하게 된 이유에는 ▲번아웃 ▲불량한 상사 ▲좋지 못한 직장 분위기 ▲기타 스트레스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원인이 코로나-19 유행의 부산물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수많은 근로자가 원격 근무나 재택근무를 행하고 일부 근로자들은 초기 봉쇄 기간 동안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근로자들은 자신과 일의 관계에 의문을 가지게 됐고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됐다.
또한 직장과의 단절감을 느끼게 된 것도 한몫했다. 원격 회의와 재택근무 등 사람들과 대면하며 일할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조직원들과의 관계 역시 비즈니스적으로 변하면서 조직에 대해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게 됐다. 전문가들은 조용한 사직이 팬데믹 끝자락에서 겪고 있는 피곤과 좌절, 즉 번아웃과 많이 관련돼 있으며 그 과정속에서 우선순위를 재평가하며 일보다 자신을 우선순위로 두게 됐다고 보고 있다.
조용한 사직에
대응하는 조용한 해고
이러한 조용한 사직에 대응하는 ‘조용한 해고(quiet firing)’ 역시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업이나 경영진이 직접적인 해고에 따른 부담을 줄이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에게 조용히 불이익을 줌으로써 이들이 스스로 직장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 ‘조용한 해고’이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장기간 봉급 인상 거부 ▲승진 기회 박탈 ▲일에 대한 피드백 거부 등이 꼽힌다. 즉 고용인 측이 직원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그 직원들이 회사에서 더는 미래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조용한 해고라는 행위 자체는 예전부터 존재했으나 조용한 사직이 성행함으로써 조용한 해고라는 신조어도 생기게 됐다.
건강한 조직 문화를
위해
당연한 말이지만 조용한 사직과 조용한 해고가 대립되면 기업의 미래가 없어진다. 이는 기존 월급 인상 문제 등 기존의 노조와 본사 측의 대립과는 상당히 다른 문제다. 조용한 사직은 근로자를 고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조용한 사직의 근로자들은 이미 상당수가 새로운 직업을 찾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조용한 사직의 비율이 높으면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고 자칫하면 대규모 퇴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조용한 사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 측에서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줘야 하고 회사의 임무와 단절되지 않게 목표를 줘야 한다. 또한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매주 한 번 정도 의미 있는 피드백을 한다거나, 직원들 개개인의 직장 생활이 어떤지 체크하는 식이다. 건강한 조직 문화를 위해서는 기업과 근로자 양측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