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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빈곤가구, ‘기후변화는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다’
김서진 ㅣ 기사 승인 2024-03-18 15  |  686호 ㅣ 조회수 : 127

에너지빈곤가구, ‘기후변화는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다’

여름에는 더위로, 겨울에는 추위로 고통받는 에너지빈곤가구



 강추위가 시작되면 누군가에게는 혹독한 겨울이 시작된다. 겨울 한파는 에너지빈곤가구의 삶에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여름도 혹독하긴 마찬가지이다. 에어컨을 마음껏 틀고 사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이들은 여름의 무더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겨울의 한파와 여름의 폭염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에너지빈곤가구란 적정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준이 안되는 가구를 말한다. 정확히는 겨울철 거실 온도 21℃, 거실 이외의 온도 18℃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빈곤가구라고 규정한다. 즉 에너지 빈곤이란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소득에 비해 광열비 비중이 높아서 의식주에 써야 할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에너지빈곤가구의 대부분은 일을 하지 않는노인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연탄,

때고 싶어서 때나...”



 에너지빈곤가구 중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도 있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연탄은행의 ‘2023년 전국 연탄사용가구조사 결과 및 제언’에 의하면 전국 연탄사용가구는 7만 4천여 가구로 이들의 평균나이는 80세, 월 소득은 약 30만원 미만이다. 올해 겨울은 지났지만 급격하게 오른 난방비와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연탄사용가구는 계층 이동이 사실상 어려운 점이 많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전국 연탄사용가구의 수가 2021년 8만여 가구에 비하면 8.5%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특정 지역(서울, 대구, 충북, 제주)의 연탄사용가구의 수는 증가했다. ▲난방비 가격 인상 ▲각종 공공요금(전기, 가스, 수도, 통신료 등)의 인상 ▲연탄 사용 저소득 고령층 증가 ▲국내외 경기침체(각종 물가상승 등) ▲가계소득 감소 등의 이유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연탄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유로 인해 연탄사용가구가 증가했다는 점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에너지빈곤층의 현실을 담아낸 에너지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



에너지빈곤가구는 우리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대학과 불과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백사마을에서도 연탄을 사용한다. 불암산 자락에 자리한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린다. 올해 하반기 재개발 예정인 백사마을은 정부가 개발을 이유로 강제 이주를 추진했을 당시 용산, 청계천, 안암동의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불암산 자락으로 옮기며 만들어졌다. 백사마을 주민 중에서 실질적으로 거주 중인 가구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거주 중인 주민들은 이주할 여력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백사마을의 거리는 조용했다. 거리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고 집 너머로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리만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줬다. 건물 벽에는 봉사자들이 그린 벽화들이 있었지만 허름한 집과 빈집에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가 눈에 더 들어왔다. 좁은 골목길 곳곳에는 비닐로 쌓여있는 연탄재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연탄은 1장에 850원, 하루의 4장으로 이들의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연말이 되면 연탄 봉사와 기부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하지만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도시가스가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빠르면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연탄을 사용해야 한다. 주로 매달 연탄은행에서 지원받는 연탄으로 생활하는데 매월 2월이 되면 후원이 줄어 ‘연탄 보릿고개’가 시작된다. 2016년까지도 600원 정도였던 연탄은 이제 850원이 돼 같은 후원금이 들어와도 연탄의 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봉사자들의 활동도 줄어 진짜 필요한 곳에 연탄배달이 이뤄지지 않았다. 연탄 1장은 3.65kg, 꽤 무거운 연탄을 배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연탄사용가구가 봄까지 따뜻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탄 후원이 절실하다.



따뜻한 목욕을 책임지는

‘비타민 목욕탕’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비타민 목욕탕’이라고 적혀있는 조금 특이한 건물을 발견했다. 다홍색과 노란색으로 이뤄진 건물 벽과 ‘6백명의 손길로 만들어진’이란 글씨가 눈에 띄었다. 비타민 목욕탕은 2016년 11월에 연탄은행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무료 목욕탕이다. 온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대부분의 백사마을 주민은 이곳에서 따뜻한 목욕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목요일에 운영되는 이곳은 이름처럼 마을 주민들의 비타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내고 있다.



 비타민 목욕탕 같은 공공목욕탕은 전국 곳곳에 있지만 시세보다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목욕탕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씻을 권리’는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청소 노동자, 중증장애인, 노인,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취약계층의 씻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동목욕차량과 같은 이동식 목욕탕, 목욕사용권, 공공목욕탕 활성화 등 실현할 수 있는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으로 변해가는 에너지 취약계층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여름 폭염, 폭우와 겨울 한파, 폭설로 받는 피해는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 특히 기후위기에 따른 환경 변화는 에너지 취약계층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든다. 노인, 영유아, 어린이, 장애인 등 생물학적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상습수해지역, 노후화주택 등 취약지역 거주자에게 기후변화는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길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집의 허름한 벽은 더위나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이에 대한 피해는 상대적이라는 점을 알고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관한 실태 조사, 폭염과 한파로부터의 보호 대책과 법률적인 기반이 하루빨리 마련되길 바란다.



김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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