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감자, 언론중재법 개정안
가짜뉴스방지법
VS 언론재갈법
언론 중재와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명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계 시민사회의 논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지난 8월 31일(화)에 여당과 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9월 27일(월)로 미루고 8인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개정안 합의처리 당일인 9월 27일(월)부터 사흘간 릴레이 협상에서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놓고 회의를 거쳤으나 결국 타협에 실패했다. 대신 9월 29일(화) 여야 원내대표는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을 통해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여야 동수 18인으로 구성된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말까지 언론중재법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특위는 언론중재법을 비롯해 ▲정보통신망법 ▲신문진흥법 ▲방송법 등 언론미디어 관련 제도의 전반적 개선을 논의할 것이며, 특위 활동기한은 2021년 12월 31일(금)이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은 언론사 등의 언론 보도 또는 그 매개로 인해 침해되는 명예나 권리, 그 밖의 법익에 관한 다툼을 조정·중재하는 등 실효성 있는 구제제도 확립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로, 언론의 자유와 공적 책임을 조화하는 데 목적을 둔다.
▲9월 26일(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8인 협의체 회의가 열리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요즘 언론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 조작 보도 등 ‘가짜뉴스’에 대해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제하는 내용이다. 언론이 반복적으로 허위·조작 보도를 일삼거나 취재·보도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고의·중과실로 인정해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은 언론에 있으며, 손해배상액의 하한선과 상한선은 언론사 매출액과 연동된다. ▲대통령 ▲정무직 공무원 ▲고위공무원 ▲대기업 등에 대해서는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에 한 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한다’라는 규정을 뒀다. 민주당은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언론의 손배 책임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며, 이 밖에 정정 보도 크기·위치 의무화 규정,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여론은 몇몇 언론 및 기자의 무책임한 허위 오보, 조작 기사, 사적인 보복이나 협박 등이 무분별한 피해자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심각한 사회현상이 되자 국민 사이에서 지속해서 형성돼왔다. 하지만 정보의 자유와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여론도 존재했다. 허위정보를 금지한다는 취지만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게 된 과정은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의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도록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 입법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7월 27일(화)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는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16건을 병합한 위원회 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4표, 반대 3표로 통과시켰다. 2021년 8월 18일(수) 열린 국회 문체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는 국민의힘 등 야당이 불참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고, 문체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등 야당이 불참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지난 8월 25일(수) 새벽 4시 해당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가운데 법사위 통과 법안은 하루가 지나 본회의에 주의토록 한 국회법이 준용됐다. 이에 8월 25일(수)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8월 30일(월)로 연기됐고, 8월 30일(월)에 4번의 회동이 결렬되며 본회의가 밀려진 8월 31일(화)에 여야 간 합의를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9월 27일(월) 본회의에서 처리 및 8인 협의체 구성을 합의했다. 하지만 개정안 합의처리 시한이었던 9월 27일(월) 여야 원내지도부 간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9월 28일(화) 추가협상에서도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9월 29일(수)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놓고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으나 결국 타협에 실패하고 대신 국회 특위를 구성해 연말까지 개정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팽팽한 갈등
언론중재법은 민주주의의 근간 중 하나인 언론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인 만큼, 정치권에서 매우 민감한 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에서는 9월 8일(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한 8인 협의체가 결성돼 첫 회의를 열었다. 8인 협의체는 ▲송현주 한림대 교수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당 추천 김필성 변호사 ▲국민의힘 추천 신희석 법률분석관으로 구성돼있다. 이날 논의할 의제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고의·중과실 추정조항 ▲기사열람차단 청구권 ▲정정보도 표시 부분이 선정됐다.
여야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놓고 큰 의견 차이를 보였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의 언론 환경을 우물물에, 인터넷 시대의 언론 환경을 상수도에 비유하며 “과거의 방식으로 오늘날의 언론을 관리해서는 안된다”라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하는 법안이 가짜뉴스를 잡으려다 진짜뉴스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의 피해 구제와 함께 언론의 자유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균형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의된 언론중재법 수정안이 9월 27일(월)에 열릴 예정인 국회 본회의에서 상정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도 여야 간 의견 차이가 발생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존 법안을 수정하지 않고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도 있고 합의안이나 수정안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주혜 국민의힘은 합의된 수정안 제출을 목표로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외에 언론중재법 관련해서 국회 내에서 강경 발언이 오가기도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월 9일(목)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언론중재법을 언론재갈법이라 칭하며 “더불어민주당에게 언론재갈법은 민생법안보다 훨씬 더 중요한 법안”이라며 “가짜뉴스라고 딱지 붙여서 퇴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및 권력비리 의혹 사건들을 철저히 감추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언론재갈법을 기필코 막아낼 것이고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는 7월 14일(수) 공식 성명을 통해 “언론중재법은 한마디로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악법이다”라고 입장을 낸 적이 있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주된 적용 대상이었던 유튜브, SNS등의 1인 미디어를 제외하고 기존 언론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일부 언론에 대한 국민 악감정에 기대서 모든 기자를 적으로 돌리며 추락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은 선의의 언론 피해자보다 언론이 더 많은 무고한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고, 잘못 적용됐을 시 언론사로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라고 우려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놨다. 인권위는 9월 17일(금) 언론중재법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라는 공식 입장을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표명했다. 인권위는 개정안의 문제점으로 ▲허위 및 조작 보도의 개념이 모호한 점 ▲고의 및 중과실의 추정 요건이 모호한 점 ▲뉴스 포털 등 매개 채널에 대한 규제가 과도하다는 점을 들었다.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란이 주목을 받고 있다. 9월 13일(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한국 정부로부터 국회의 언론중재법 논의 동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레네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하 칸 보고관)은 8월 27일(금)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다. 칸 보고관은 “개정안이 그대로 채택될 경우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국제 인권기준에 위배되지 않도록 개정안을 수정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유엔의 서한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답했지만, 칸 보고관이 지적한 개정안 수정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1인 미디어의 운명은?
종이신문이 주류를 이루던 예전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유튜브, SNS 등의 1인 미디어가 활성화돼 표현의 방식이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1인 미디어가 언론중재법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도 주목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기존 언론에 이어 1인 미디어를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혀 1인 미디어에도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우려된다. 8월 20일(금) 교수·연구진 모임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가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개혁 5대 과제가 밝혀졌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송법 개정) ▲허위·조작보도 배액배상제 도입(언론중재법 개정) ▲포털 공정화·개방화(신문법 개정) ▲매체영향력 평가제도 혁신(미디어바우처법 제정) ▲미디어정책·거버넌스 재구축(정보통신망법 개정 등)으로 구성돼있다. 그동안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논리 중 하나로 “가짜뉴스 온상지인 유튜브 규제는 1년째 뭉개고 언론만 규제했다”라는 식의 비판이 이뤄졌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발제 자료에서 “야당, 언론 및 시민단체 등의 언론중재법 비판 단골 메뉴인 1인 미디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부는 8월 27일(금) “1인 미디어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문체위가 아니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이라며 “언론계 요구에 적극 대응해 과방위 안건들도 적극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언급한 과방위의 개혁 과제는 ▲1인 미디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 ▲포털 공정화 등이다.
1인 미디어가 급증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기존 언론인을 포함해 언론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이 저널리즘의 가치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9개의 원칙은 ▲진실을 추구한다 ▲투명하게 보도하고 책임 있게 설명한다 ▲인권을 존중하고 피해를 최소화한다 ▲공정하게 보도한다 ▲독립적으로 보도한다 ▲갈등을 풀고 신뢰를 북돋우는 토론장을 제공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품위 있게 행동하며 이해상충을 경계한다 ▲디지털 기술로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로 이뤄져있다.
1인 미디어도 진실 보도의 주체가 되면서 언론중재법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게 됐다. 언론중재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나쁜 기능이 아닌, 무고한 피해자 발생을 막는 좋은 역할을 해야 한다. 이에 사회 구성원들은 언론중재법의 확대와 적용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데 어떤 기능을 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