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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랑방 여자들
박다연 ㅣ 기사 승인 2022-12-06 09  |  668호 ㅣ 조회수 : 132

사랑방 여자들



 넓은 창과 블라인드 틈 사이로 강한 햇빛이 들어왔다. 기차가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암흑으로 가득 찼던 시야가 오렌지색으로 물들자 감은 눈이 찡그려졌다. 아직 한낮임을 의미하는 저 햇빛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너무 긴 여정이라 생각했다. 민수와 난 보름에 한 번 만나기로 약속했고, 내가 민수에게 가는 날이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고속열차로 두 시간 삼십 분 정도 걸리지만 나는 종종 무궁화호를 타곤 했다. 다섯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의미가 생기는 일은 그게 유일했다.


 다섯 시간 중의 절반은 자리에 누워 잠을 잤다. 평일 낮의 무궁화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의자를 뒤로 끝까지 젖힐 수 있었다. 나머지 반은 카페 칸에서 책을 읽었다. 의자와 테이블이 창밖을 향해있는 통창 자리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계절에 따라 논과 밭, 나무의 색만 바뀔 뿐이었다. 모든 것은 항상 그대로였다.

 무궁화호는 많은 폐역들을 지났다. 처음 들어보는 역도 많았다. 용산에서 출발해 세 시간쯤 지나면 강경과 함열이라는 이름의 기차역을 들렀다. 고속열차는 지나가지 않는 작은 읍의 역이었다. 강경역과 함열역 사이의 풍경은 가장 촌스러웠다. 드넓은 평야와 집 몇 채가 모인 마을이 보이는 전부였다. 하지만 단조로운 지형일수록 작은 변화도 크게 보이는 법이었다. 십 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새로 칠한 지붕의 색과 가지치기한 나무, 추수할 때쯤이면 생기는 마시멜로 같은 것들을 관찰하는 일은 꽤 재미있었다. 나는 온통 그대로인 것들 중에서 그렇지 않은 것을 매번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세상에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며, 또 다른 작은 역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나는 자주 그 이름을 곱씹었다.



 - 어디쯤이야?



 열차가 막 무안역을 지날 때 민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삼십 분 정도 남았다는 답장을 보낸 후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으니 처음 민수를 만나러 목포로 향했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낯선 전라도의 풍경에 그저 설레기만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진 탓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4년을 만났다. 한 달마다 목포행 기차를 타는 일은 이제 당연하게 여겨졌고, 요즘엔 조금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학 시절, 취미라도 만들어보려고 뒤늦게 들어간 테니스 동아리에서 민수를 처음 만났다. 동아리 간부였던 민수는 테니스를 처음 접해본 날 가르쳐주었고, 우린 동갑이라는 이유로 금세 친해졌다. 민수와 친해지고는 동아리에 나가는 일이 더 많아졌다. 실력이 안 되어 참여하지도 못하는 경기가 절반 이상이었지만 나는 꼬박꼬박 나가 경기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하는 민수를 보았다. 민수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난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 단위로 움직이는 몸의 근육들을 관찰했다. 민수의 움직임은 내게 이상하리만큼 아름답게 다가왔고, 테니스를 취미로 삼으려고 들어간 동아리에서 새롭게 얻은 진짜 취미는 민수를 보는 일이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목포의 냄새가 났다. 기름의 쩐내와 바다의 짠내가 섞인 묘한 냄새였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목포역에서 나와 민수를 기다렸다. 곧 민수의 낡은 초록색 차가 눈에 띄었다. 초록색 차는 잠시 헤매다 나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비상등이 깜박였다. 그 리듬에 맞춰 문이 열리고 민수가 내렸다. 그리고 나를 힘껏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



 나는 대답 대신 민수를 더욱 꽉 껴안았다. 몸집이 작은 민수를 꼭 안으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그만그만. 민수가 아프다는 듯 나의 등을 마구 두드려댔다. 나는 민수를 놓아줬다. 민수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민수의 차에 타자마자 방향제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나는 인상을 쓰며 에어컨 통풍구에 걸린 방향제를 가까이 들여다봤다. 중앙에 작게 'AQUA'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바닷가에 살면서 물 냄새가 나는 방향제를 쓰는 게 조금 귀여워 웃음이 났다.



 민수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선물 받은 거야. 웃기지. 아쿠아 향이라니.”



 “응. 웃기다. 근데 향이 너무 진한 거 아니야? 멀미 날 거 같아.”



 “오래된 차라 에어컨 냄새가 너무 심해서.”



 “어? 방금 그거 같았다. 너 기억나? 우리 사귀기 전에 같이 너희 집 간 적 있잖아.”



 “그 반지하 집?”



 “응. 그때 내가 네 집에서 담배 냄새난다고 하니까 네가 뭐라 그랬는지 알아?”



 “곰팡이 냄새보단 낫잖아. 그랬나?”



 우리가 친해지기 시작했을 때, 민수는 나를 집에 초대했다. 그곳에서 민수는 지상을 향해 나 있는 반지하 창문으로 자주 담배를 피웠다. 그럴 때면 좁고 꿉꿉한 방 안이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사귀기 시작한 이후에도 그랬고, 이사를 할 때도 반지하 방만 찾아다녔다. 민수는 남들이 발로 비벼야만 끌 수 있는 담뱃불을 자신은 손으로 끌 수 있다고 말하며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꽁초를 비볐다. 그리고는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꽁초들을 창문 바로 앞에 모아두고, 종량제 봉투를 내놓을 때 그것들을 함께 버리곤 했다.



 “나는 항상 중간이 없었네.”



 “그게 네 매력이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건어물 냄새가 났다. 민수의 집은 목포항 근처의 예술촌에 있었다. 녹색 차를 마을 초입의 대로변에 대고 경사진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려면 계단을 한참 올라야 했다.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 발걸음 소리가 크게 났다. 민수는 조금만 작게 걸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헐떡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지하에만 살던 민수에게 이렇게 높은 곳에 살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민수는 어차피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저 끝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다고, 계단을 오르다 지쳐 그만두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았다고, 그렇게 얘기했다.



 예술촌의 주택들은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그중 민수의 집은 눈에 띄게 큰 두 집 사이에 있었다. 정확히는 숨어있었다. 단독주택이라기보단 사랑채 같은 느낌의 집이었다. 우리는 집을 사랑방이라고 불렀다. 과거엔 사랑방이 남자들의 공간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사랑방에선 여자 둘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주 웃었다.



 몇 번의 쉼을 거쳐 골목의 꼭대기에 가까워졌을 때쯤 노란 대문이 보였다. 숨이 온몸에 차올라 헛구역질을 겨우 참는 나와 달리 민수는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로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민수가 들으라고 일부러 더 숨을 크게 내쉬며 민수의 옆으로 갔다. 골목 사이로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민수는 주변을 둘러보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끼익하는 쇠문 소리가 났다. 아무리 천천히 열어도 소리는 크기만 달라질 뿐 계속해서 났다. 아직 소리를 안 내고 문 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고 민수는 말했다.



 사랑방은 바닷가의 여느 집들처럼 파란 지붕을 가진 작은 단층집이었다. 대문을 열면 좁은 마당이 있었고, 민수는 거기에 속옷을 제외한 옷들을 널어놓았다. 한 달 만에 방문한 민수의 집은 여전했다. 민수가 목포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되었다. 2년 동안 민수는 단 한 번도 가구의 배치를 바꾸지 않았고, 작은 소품마저도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수의 집에서 바뀌는 건 한 달을 주기로 사라지는 나의 흔적과 늘어가는 책, 그리고 시들거나 자라는 식물이 전부였다. 민수는 항상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었다. 함께 청소를 할 때 내가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두면 민수는 알아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그래서 난 이건 어디에 둬야 하고 저건 어디에 둬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게 우리의 청소 방식이었다.



 “이 소파 말이야. 창밖을 보게 이쪽으로 두면 안 돼?”



 “창밖을 뭐 하러 봐. 집에서는 바다도 안 보이는데.”



 “앉아서 햇볕 맞으면 좋잖아.”



 “마당에서 맞으면 되지. 지금도 좋은데 굳이 힘쓰면서 그럴 필요가 뭐 있어. 여기가 제자리야.”



 결국 제자리라는 것도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닌 민수가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현수 언니 몇 시쯤 온대?”



 “저녁쯤 온다고 했으니까 한 일곱 시쯤 오지 않을까?”



 “언니 오랜만에 본다. 오늘은 무슨 욕 하려나.”



 “이제 1번 할 차례야. 그거 안 한 지 좀 됐어.”



 “슬슬 새로운 거 나올 때도 됐는데.”



 민수에게는 한 살 차이 친언니가 있었다. 가끔 현수 언니가 민수를 보러 오는 날과 내가 오는 날이 겹치면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현수 언니는 우리와 만날 때마다 가족 욕을 했다. 욕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였다.



 “나 이제 집에 안 가려고. 갈 때마다 결혼 얘기 나와.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 그리고 요즘 결혼할 남자가 어딨냐. 결혼하려면 외국 가야 돼. 그래도 한남보단 양남이 낫지. 요즘 엄마가 계속 나 선 잡아주려 하는데, 대충 어떤 사람인지 보잖아? 그럼 답이 딱 나온다니까. 하여간 엄마도 참 남자 보는 눈 없어. 그러니까 아빠랑 아직도 그러고 살지.”



 혹은,



 “우리 엄마아빠는 결혼하고 신혼여행 갔을 때부터 우리 이름을 정해놨대. 성별을 모르니까 어떤 성이든 상관없게 현수랑 민수. 근데 이렇게만 들으면 우리 집안 꽤 젠더프리한 집 같지 않냐? 사실은 그냥 지독한 계획충이었던 것뿐인데.”



 아니면,



 “나는 우리 부모님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뭐가 잘못이야. 지들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같이 사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이야. 응? 안 그래? 너네는 복 받은 거야 얘들아.”



 축복은 개뿔. 역시나 최악은 세 번째였다. 1번과 2번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고 민수와 나랑은 크게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3번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답시고 하는 말이었다. 그게 기분이 나쁜 이유는 언니가 하는 집안 욕들이 전부 민수에게 가족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속셈이라는 걸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린 그저 가만히 듣고 맞장구치며 이용당해주었다. 다행히도 3번은 언니가 취했을 때, 아주 가끔만 나오는 레퍼토리였다. 그 레터토리를 예상하는 건 우리의 레퍼토리다.



 민수가 시장에서 사둔 싱싱한 재료들로 저녁 준비를 하는데, 현수 언니가 민어회를 사 들고 나타났다. 자신의 요리를 잠자코 먹기만 하던 언니에게 불만이 쌓여있었는지 민수가 반가움을 누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웬일이래. 뭐 사 온 적 없었잖아.”



 “그냥. 너희 오랜만에 보잖아. 반년만인가? 그리고 여름에 목포 왔으면 민어회는 먹어줘야지.”



 멋쩍게 웃는 현수 언니가 민수와 정말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언뜻 쌍둥이 같기도 했다. 민수가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이후로는 누가 누군지 가끔 헷갈릴 정도였다.



 “진작 좀 그러지. 그래도 국은 마저 끓일게.”



 민수가 이미 손질된 도마 위의 야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민수가 기분이 상한 것 같아서 나는 과장하며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언니, 뭐 마실래요? 맥주 아님 소주?”



 “난 괜찮아. 차 가지고 왔어.”



 현수 언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고 가는 거 아니었어?”



 “오늘은 밥만 먹고 가야 돼.”



 언니 오늘 진짜 이상하다. 현수 언니가 핸드폰을 보는 사이 민수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왜 저래. 민수도 화답했다.



 민수가 하던 요리를 마저 다 하고 나서야 우리는 식탁에 모여 앉을 수 있었다. 평소에 민수 혼자 쓰는 식탁은 셋이 쓰기엔 너무 작았다. 언니와 밥을 먹을 때마다 민수와 난 더 붙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 비좁은 식탁 위에 민어회와 된장찌개, 밥그릇 세 개와 소주잔 두 개, 간장과 초장, 쌈 채소와 쌈장이 올랐다. 더 이상 놓일 자리가 없어 소주병은 바닥에 두었고, 민수가 직접 만든 각종 반찬들은 각자의 밥그릇에 미리 덜었다. 나는 좋아하는 무말랭이를 가득 담았다.



 “밥 반, 무말랭이 반이네.”



 “이거 무말랭이 비빔밥이야?”



 민수는 놀리듯 말했고, 현수 언니는 진심으로 놀란 말투였다. 말투는 달랐지만 똑같이 생긴 두 명이 나를 쳐다보며 비슷한 말을 하자 이상하게 말들이 겹쳐 들렸다. 현수 언니가 평행세계의 민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정말 살아온 세계관만 달랐다. 외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성격, 목소리, 하다못해 취향까지 모든 게 비슷했다. 현수 언니가 여자를 좋아했다면 아마 지금보다 몇십배는 더 친해질 수 있었을 거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민수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다는 뜻의 눈길이었다. 나도 동의했다. 우리는 언니가 언제쯤 집안 욕을 시작할지 그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근황 토크는 쓸데없는 서론일 뿐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계속 우리에게만 질문을 했다. 우리는 언니에게 궁금한 게 없었고, 대화는 결국 우리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만나면 본인 얘기만 늘어놓던 언니였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너네는 어때? 요즘 좀 괜찮아?”



 “갑자기? 언니 오늘 좀 이상하다. 우리야 뭐 맨날 똑같지. 괜찮고 말게 어딨어 우리한테.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만나도 맨날 가던 데만 가는데. 이제 언니 얘기 좀 해봐. 뭐 재밌는 일 없어?”



 민수가 답답했는지 현수 언니에게 질문을 돌리는데 그 순간 언니의 표정에서 미안함이 읽혔다. 잘못 느낀 건가 싶었는데, 언니가 가방에서 꺼낸 물건을 보고 그 의미를 깨달았다. 미색 종이에 파스텔 톤의 꽃과 잎이 그려져 있는 카드였다.



 “너… 결혼해?”



 민수가 입을 연 건 정적이 잠시 이어지고 나서였다. 낯선 목소리가 익숙했다. 나한테 화가 났을 때만 나오던 목소리였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응. 다음 달.”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나는 민수가 화가 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음 달? 이걸 왜 이제 얘기해?



 “저번에 봤을 땐 내가 결혼할 줄 몰랐지. 얘기도 나오기 전이었어. 진짜야.”



 “그동안 전화로 충분히 말해줄 수 있었잖아.”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서.”



 “정말 그게 다야?”



 민수의 날카로운 물음에 언니가 잠시 망설이다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너네한테 주기 미안해서.”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화를 끝으로 항상 하룻밤을 자고 가던 언니는 아홉 시도 안된 시간에 집을 나섰다. 민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 언니를 배웅했다. 언니의 차는 민수의 초록색 차 앞에 있었다. 언니는 끝까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리고는 미안해, 라고 말하며 차 문을 닫았다. 나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따위의 말을 예의상으로라도 할 수가 없었다. 괜찮지 않았다. 민수와 보름에 한 번씩 만나는 날들이 이 년간 이어지면서 우리 관계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방 안에 있던 민수는 어느새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민수는 자주 방안의 침대를 두고 거실에 있는 빨간 소파에서 잠을 잤다. 티브이를 틀어놓은 채로 잠이 드는 일도 많았다. 가끔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빨간 소파는 조그만 민수가 편한 자세로 눕기에 알맞았다. 나는 가만히 소파에 기대앉았다. 민수의 팔이 내 목을 감쌌다. 민수의 냄새가 주변을 뒹굴었다. 민수의 몸에서는 소금의 냄새가 났고, 어느 부분에서는 생선의 비린 냄새가 났다. 나는 민수의 몸에서 비린내를 찾는 걸 좋아했다. 내가 민수의 팔을 아래에서 위로 훑으며 킁킁대자 민수가 움찔했다. 간지럽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그 목소리는 하고 싶다는 뜻이었고, 나까지 간지러워졌다.



 “혹시 언니도 이용당한 거 아닐까? 너희 부모님이 너 만나려고 가짜 결혼식을 추진한 거지. 언니한테 진짜 결혼은 안 해도 되니까 결혼식만 올리라고 하고. 그래도 현수 언니 결혼식엔 네가 갈 테니까.”



 “오. 그럴듯한데?”



 우리는 이제 현수 언니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민수에게는 그게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말도 안 되는 사정들을 늘어놓았고, 민수도 그에 지지 않았다. 그건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종이었다.



 “잠시만… 서현수 아까 술 안 먹었잖아. 임신한 거 아니야?”



 “에이. 설마…”



 현수 언니가 청첩장을 내밀기 전처럼 다시 웃고 떠드는데 민수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민수는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고, 붙어있던 나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핸드폰으로 향했다.



 - 이 말을 까먹었네. 태경이는 결혼식에 안 왔으면 좋겠어



 나도 민수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조금 후에 진동이 다시 울렸다.



 - 정말 미안



 괜찮은 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정적을 깨는 게 나의 몫으로 느껴졌다.



 “어쩐지 청첩장이 하나더라.”



 정말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여전히 안 괜찮았지만 괜찮아 보여야 했다.



 “근데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 너한테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야?”



 민수는 다시 화가 난 말투였다. 내심 민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주길 바랐는데, 괜찮지 않은 일에 혼자 괜찮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까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그 뜻인지는 몰랐지만.”



 민수는 한숨을 쉬더니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도 안 간다고 할게. 너가 못 가는 거면, 나도 안가.”



 “그러지 마. 제발, 부탁이야.”



 “너는 화도 안 나?”



 “화가 왜 안나. 당연히 나지. 근데 네가 나 때문에 안 간다고 하면, 너희 가족들이 나 더 싫어할 거 아니야. 이젠 언니까지도 나 싫어할걸. 너 혼자 가도 괜찮아. 나는 진짜 안 가도 돼.”



 “괜찮다고 좀 말하지 마. 너 빼고 가면 내가 마음이 편할 거 같아?”



 “거기 가면, 가면 뭐 어쩔 건데. 누가 나랑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게. 또 도망치게?”



 “뭐?”



 “너 그냥 너희 언니랑 부모님한테 화난 거잖아. ‘나도 안 갈게’보다 그냥 같이 가면 안 되냐고, 같이 가겠다고 그렇게 한 번 더 얘기해보는 게 먼저 아니야? 진짜로 나를 위한다면. 내가 봤을 때 넌 그냥 너희 부모님 만나기 싫은 거야. 아니, 무서운 거야.”



 “너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해? 너도 똑같잖아. 왜 너는 아닌 척해. 너 속으로 우리 언니 엄청 불편해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뭐? 현수 언니 편하다고? 웃기지 마. 너 다 티나. 결혼식 안 가도 된다는 것도 그래. 너도 우리 가족 만나기 싫은 거잖아. 근데 왜 나한테만 뭐라 해?”



 “나는 안 가도 되지만 너는 아니지. 그리고 나는 적어도 너처럼 도망가진 않아.”



 내가 두 번이나 ‘도망’이라는 단어를 말한 건 분명한 잘못이었다. 그 단어를 언급할 때마다 민수의 언성이 높아졌고, 나도 따라 높아졌다. 민수의 사람들은 다 흩어져 있었다. 민수는 목포에, 현수 언니는 포항에, 그들의 가족은 대전에, 그리고 나는 서울에 있었다. 민수는 대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포항으로, 그리고 지금 여기 목포로, 돌아 돌아 온 것이었다. 민수는 전부 도망이 아닌 추방이라고 했지만, 나는 민수가 추방당할 때마다 나를 떠난 거라 생각했고 그게 너무 미워서 그걸 도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싸우다 지쳐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그대로 집을 나왔다. 민수가 위험하다고 그냥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조차 나를 얽매는 것 같았다. 집에 있기 너무 답답했고, 어느 정도는 반항심이었다. 골목에서 나와 차도를 건너고 조금만 걸으면 바로 바다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사람이 없는 바닷가를 혼자 걸었다. 위험한 행위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걷다가도 자주 뒤를 돌아봤고,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두려움이 앞섰다. 그게 일종의 자해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나중 일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민수는 방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민수가 자주 눕는 빨간 소파 위에 민수처럼 누워보았다. 민수 냄새가 났다. 비린내는 나지 않았지만 진한 소금기가 느껴졌다. 소파 가죽에 혀끝을 살짝 맞대니 짠맛이 났다. 민수와 처음 키스했던 날이 떠올랐다. 민수의 입술 주변에 소금 알맹이가 굴러다녔다. 그 이후에 민수가 포항으로 가고 목포로 왔으니 어쩌면 원래부터 민수는 바다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민수는 그저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민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나를 안아왔다. 어차피 결혼식은 한 달이나 남았고, 싸우고만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뜻이었다. 그다음 날도, 우리는 말없이 빨간 소파 위에서 키스를 하고, 섹스를 했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시아를 만난 건 대리운전 호출을 받고 달려간 여의도의 술집 거리에서였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사람들 틈에서 휘청거리던 여자가 어? 대리 왔다, 하고 나를 보며 얘기했다. 그때 시아를 한눈에 알아봤다. 시아도 나를 알아본 건지 내가 운전석에 앉자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취한 것처럼 보였던 시아는 차에 타자마자 멀쩡해졌다. 그리고 누구보다 뚜렷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태경 맞지? 듀스.”



 듀스는 민수를 처음 만났던 테니스 동아리의 이름이었다. 시아는 동기 중 유일하게 나와 동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었는데, 3년 만에 만난 시아가 내심 반가웠다. 시아도 대놓고 나를 반가워했다. 뭐 하고 지냈어? 따위의 질문들을 늘어놓았고, 나는 핸들을 잡고 앞을 보며 단답식으로 마무리했다.



 “이거 말고 따로 하는 일은 없어?”



 “지금은.”



 “지금은? 전에는 뭐 했는데?”



 “그냥 회사 다녔어.”



 “왜 때려치웠는데?”



 “그냥 다니기 싫어서. 너는 회사 다니고 싶어서 다니냐.”



 “하긴.” 



 쉴 틈 없이 질문을 쏟아내던 시아가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조용해졌다. 학교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아무 얘기도 안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적막이 더 어색한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곧 시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나는 사람은?”



 “그런 게 왜 궁금한데.”



 “아직도 민수랑 사귀어?”



 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곁눈질로 슬쩍 쳐다봤다. 말을 고르느라 답이 늦어지자 시아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야 걱정 마. 나 그런 거에 편견 없다?”



 응. 그렇구나. 대답하며 풉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시아가 기분이 나쁜 듯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동아리에 우리가 사귄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나는 그 소문을 시아가 냈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며칠 전 홍대 골목에서 시아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를 껴안던 민수의 몸이 내내 끓어오르다 잠깐 식었을 때, 돌아보니 시아가 있었다. 동아리의 그 누구에게도 오픈할 생각이 없던 우리보다 놀란 건 오히려 시아였다.



 “근데 걔는 그 골목에 왜 있었던 걸까?”



 소문이 돌고 내가 시아를 의심하자 민수가 말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겠지. 그쪽에 일반 클럽도 많잖아.”



 “그렇다기엔 나랑 눈 마주치고 너무 놀라던데.”



 “그거야 우리가 안고 있었으니까 그랬겠지. 너 설마 걔가 레즈일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혹시 모르지.”



 민수가 웃으며 얘기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잠재적 레즈비언일 거라 생각하는 민수에게는 소문을 누가 냈는지보다 시아가 왜 그 골목에 있었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민수는 소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시아는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눈이 컸고, 그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눈치 없는 말들을 마구 뱉어냈다.



 “근데 너는 진짜 똑같다.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동안이라는 거니까 칭찬이지? 너는 많이 변한 거 같다.”



 시아는 ‘변한 것 같다’는 말을 하기 전에 천천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 시절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해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알아. 난 지금의 내가 좋아.”



 “그 얘기는 학교 다니던 때가 별로였다는 소리로 들린다?”



 시아는 눈치 없는 척을 하는 걸까. 가끔 이렇게 말의 가시를 발라낼 줄 알았다. 몇 년 전 우리가 알던 때도 그랬다. 그런 시아를 민수는 좋아했다. 원래 저런 애들이 진짜 무서운 거야. 민수가 그랬다. 시아는 원하는 답을 얻었는지 질문을 그만두고 자신과 친구들의 얘기를 했다. 그중에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도 있었다. 시아의 집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의 알림음이 울리고 꺼지자 시아의 목소리도 함께 꺼졌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고, 이상하게 어색해졌다. 내가 가보겠다고 하자 시아는 나에게 번호를 달라고 했다. 나는 번호 대신 잘 보지도 않는 SNS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시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얘기했다.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는데. 너네 소문낸 거 나 아니야.”



 나는 그냥 말없이 웃었다. 집으로 가면서 민수에게 우연히 시아를 만났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아침에 왔고, 나는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 답장을 보았다.



 며칠 후, 평소처럼 대리운전을 하는데 민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룸미러로 뒷좌석을 보니 손님이 눈을 감고 뒤척거리고 있었다. 나는 전원 버튼을 한번 눌러 진동을 무음으로 돌렸고, 한 시간이나 지나고서야 다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미안. 운전 중에 통화하면 손님들이 별점 안 좋게 줘서.”



 민수는 대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



 민수의 숨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는 잔뜩 쉰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 와줄 수 있어?”



 나는 무슨 일인지 묻지 않고 그냥 가겠다고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근처에 기차역이 있었고, 나는 기차 예매 창을 열었다. 기차가 뜨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자정이 넘어있었다. 심야버스도 없는 시간이었다.



 “지금 기차랑 버스가 없어. 내가 아침에 최대한 빨리 갈게 민수야. 일단 무슨 일인지 얘기해줄 수 있어?”



 “차로 오면 안 돼?”



 “알잖아. 나 장거리 운전 못하는 거.”



 민수는 다시 한참을 말이 없었다. 목소리 대신 숨소리가 들렸고, 중간중간 코를 크게 들이 마셨다.



 “미안해.”



 “아침에 언제 올 수 있는데?”



 나는 다시 기차 예매 창을 열었다. 가장 빨리 도착하는 차가 무궁화호였다. 주말이었고, 고속열차는 전부 매진이었다. 일곱 시 기차는 목포에 열두 시쯤 도착했다.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다 매진이고 제일 빠른 게 열두 시 도착인 거 같아. 주말이라…”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던 민수의 숨소리가 딱 한 번만 났다. 민수는 한숨만 쉴 뿐, 다시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인데 대체. 너 괜찮은 거야?”



 이번에 민수는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괜찮냐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엉엉 우는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민수가 다 울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민수는 조금 진정이 된 이후에 말을 꺼냈다.



 집에 오는 길에 어떤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 가까이 가보니까 그 앞에 남자가 있었고, 여자는 계속 이렇게 말했어. 너 아까 나한테 뭐 하려 그랬어. 네 좆 나한테 내밀려 그랬지. 이리와 여기 씨씨티비 다 찍혔어 경찰서 가자. 난 빨리 걷기 시작했어. 앞만 보고 걸었어. 조금 멀어지고 뒤를 돌아봤는데 한 명만 보였어. 그게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어.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거든. 내가 계속 보고 있으면 그리고 거기 있는 게 남자면 날 따라올 수도 있잖아. 그래서 다시 빠르게 걸었어. 옆에 경찰서가 있었는데도 모른 척하고 지나쳤어. 그냥 앞만 보고 빨리 걸었어. 더 멀어졌을 때 다시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안 보였어. 그렇게 그냥 집에 왔어. 경찰서가 있었는데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도.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좀만 더 빨랐으면 그 새끼는 지 좆을 나한테 내밀었겠지.”



 민수는 다시 숨이 거칠어졌고, 목소리가 떨렸다. 몇 시간 전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보였다. 지금 내가 민수의 옆에 없다는 게 화가 났다. 그래서였을까. 놀랐겠다. 아무 일 없었을 거야. 다친 데는 없어? 따위의 말 대신 다른 말이 먼저 나왔다.



 “민수야. 우리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내가 목포로 옮길게.”



 “그 얘기가 갑자기 여기서 왜 나와. 그 얘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잖아. 여기서는 제발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 나.”



 “아는데. 그냥 나는 속상해서 그러지.”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뭐가 달랐을 것 같아? 나는… 솔직히 거기서 소리 지르고 있던 게 너였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야. 널 두고 나 혼자 집에 왔을 거라고. 그래도 괜찮아?”



 “아니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 마. 안 괜찮잖아. 안 괜찮은 걸 왜 자꾸 괜찮다고 해?



 “그러는 너는 괜찮아?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그러고 있는 게 좋아? 봐봐 지금도. 내가 너한테 못 가면 네 옆에 아무도 없잖아.”



 민수는 말이 없었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살면 대체 뭘 같이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맨날 연락하고 한 달에 두 번 얼굴 보는 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대체. 우리한테 미래라는 게 있긴 해?”



 이상하게 내가 더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네가 같이 살자는 말 한마디만 해도, 아니 그런 뉘앙스의 말만 꺼내도 짐 다 싸 들고 목포로 갈 수 있어. 근데 너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같이 있었으면 적어도 이렇게 싸울 일은 없었겠지.”



 “너 왜 말을 그렇게 해? 우리가 이렇게 된 게 왜 내 탓인 것처럼 말해?”



 민수와 난 서로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잘못은 아무리 쌓여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저 더 큰 잘못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누구의 것이 더 큰지 겨루는 게 가능했다. 민수는 내내 울고 화내다 지쳐 잠이 들었다. 나는 아침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예매했다.



 무궁화호는 너무 느렸다. 잠이 오지 않았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옆에도 뒤에도 사람이 있었다. 카페칸의 자리도 꽉 차 있었다. 무궁화호의 좌석은 팔걸이도 없이 붙어있었다. 옆 사람과 나 사이에 어떤 경계도 없었다. 뒤척거리는 움직임조차 조심스러웠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천천히 지나는 시골의 풍경이 답답했다. 더 빨리 움직일 수는 없는 걸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강경역을 지나고 함열역을 지났다. 함열역에는 새 단장을 위한 공사가 시작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영영 바뀌지 않을 것만 같던 무궁화호 창밖의 풍경조차 언젠가는 변하는 것이었다. 다섯 시간을 달려 목포역에 도착했을 땐 온몸이 뻐근했다.



 민수의 집까지는 택시를 탔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서였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은 잠시였다. 택시는 민수의 차 옆에 멈추어 섰다. 녹색 차를 보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또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저 위에 희미하게 보이던 노란색이 점점 선명해졌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멈추지 않고 걸었다. 쿵쿵대던 발소리를 비로소 멈추게 되었을 땐 생각보다 멀쩡했다. 멈추지 않으니 덜 힘든 것 같기도 했다. 대문을 여는데 거친 쇳소리가 났다. 굳이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민수는 마당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나에게 싱긋하고 웃어 보였다.



 “한 번도 안 쉬고 올라왔지?”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날 새벽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민수는 조금 나아져 보였다. 네가 오니까 좋다. 그렇게 얘기할 뿐이었다. 나는 오면서 본 함열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저번에 말한 역 있잖아. 무궁화 타야만 갈 수 있는.”



 “강경역이랑 함열역?”



 “이름까지 기억해? 거기 곧 공사한대 함열역.”



 “아쉽겠다.”



 “뭐가?”



 “아쉽지 않아? 네가 자주 지나다니던 역이 바뀐다는 게.”



 “세상에 안 바뀌는 게 어딨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민수를 슬쩍 쳐다보았다.



 “바뀌기 전에 나도 한번 가봐야겠다. 무궁화호 타고.”



 “무궁화 말고, 차 타고 가자. 운전은 내가 할게.”



 “너 장거리 운전 못하잖아.”



 “한번 해보게.”



 그럼 언젠가는 목포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언니 결혼식 가려고. 가서 이성애자들은 어떻게 결혼하는지 보고 올게. 우린 더 끝내주게 하자.”



 “너 나랑 결혼할 거야?”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하고 싶어진다면 네 옆이었으면 좋겠어.”



 비록 가능성의 언어라도 나는 좋았다. 마음이 괜히 쭈뼛대서 말을 돌렸다.



 “덥다. 들어가자.”



 “오늘 해가 너무 좋은데.”



 “너 지금 땀나.”



 나는 팔로 민수의 땀을 닦아주었다. 민수는 그런 날 빤히 보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소파 옮겨볼까?”



 소파를 함께 들어 옮기며 민수에게 말했다. 앞으로 추방당할 낌새가 보이면 소파도 옮겨보고 침대도 옮겨봐. 그러다 사랑방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때가 오면, 그땐 같이 도망가자. 아예 멀리 떠나버리자. 우리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또 다른 사랑방을 찾아서. 가끔 어긋나고 부딪히더라도 다시 제자리를 찾으면 되는 거였다. 그건 민수의 특기니까.



 민수가 결혼식에 무사히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민수를 힘껏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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