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가스라이팅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 중 하나로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현상을 가리킨다.
가스라이팅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거나 속이기 위해 일부러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가해지는 정신적 학대의 한 형태다. 이 단어는 1938년 연극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극에서 남편은 가스등의 빛을 조절해 가스등이 어두워지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며 부인을 정신병자로 몰아세운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부인도 거짓말이 지속되자 자기 자신에게 의구심을 갖게 되고, 점점 무기력과 공허에 빠지게 돼서 결국 남편만을 의지하게 된다. 남편이 부인의 판단력이 비정상적이라고 몰아가고, 이에 부인이 수긍하는 행태에서 본따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이 연극은 이후 영화화됐고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더욱 널리 쓰이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 번져 많은 사람들의 논의를 이끌었다.
가스라이팅이란 용어가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과 SNS의 보급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를 예방하고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고, 정신적 안녕과 대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가스라이팅은 대부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됐거나 ▲기억력이 나빠졌거나 ▲자신감을 잃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조종하고 속이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가해자가 의도한 대로 의식이 흘러가게 만들어서 피해자를 헷갈리게 한다.
가스라이팅이 일어나면, 피해자는 자신의 기억력, 판단력, 현실감, 자아존중감, 사회성 등에 의심을 느낀다. 그래서 피해자는 자신이 가해자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가해자가 권력을 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스라이팅은 정신적인 학대로, 피해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가스라이팅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점진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자신의 행동을 조금씩 바꿔가며 피해자를 조종한다. 피해자를 조종하는 방법에는 ▲피해자 기억 왜곡 ▲피해자 감정 무시 ▲피해자 행동 비난 ▲피해자 겁주기 ▲잘못된 정보 제공 등이 있다.
가스라이팅 과정은 4단계로 나눠지며, 각각은 관계 형성, 기억의 왜곡, 미니마이징, 무시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관계 형성 단계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피해자의 경계심을 풀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간혹 동정심만을 이용해서 피해자를 조종하려는 경우도 있다. 기억의 왜곡 단계에서 가해자는 피해자가 저지른 실수나 오류 등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피해자가 자신을 불신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판단력을 의심하도록 유도해, 자신이 판단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든다.
미니마이징 단계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반발에 대해 작은 규모의 반응으로 대처하며, 피해자가 자신을 비논리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무시 단계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일어난 일을 별것 아닌 일로 취급하면서 자신이 행한 폭력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 심지어 피해자를 비난하고, 그들의 판단력과 감정까지도 의심하게 만든다. 이 단계까지 올 경우, 가해자는 피해자의 감정뿐만 아니라 재산까지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가스라이터(가스라이팅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가장 좋은 극복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 박사는 “고도로 숙련된 심리치료사들조차도 성격 장애를 치료하기란 쉽지 않다”며 “그들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따라서,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을 인식하고 가스라이터와의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이 첫걸음이다.
가족, 연인, 직장 상사나 동료, 친구 관계에서도 가스라이팅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 부모나 배우자일 경우 무조건적인 ‘손절’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에 대해 로빈 스턴 박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가장 친한 친구와 절교하거나 이상적인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며 “실제로 상대방과 헤어질 필요는 없지만, 헤어질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개될 험난한 길을 헤쳐 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