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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문화 전쟁
기사 승인 2021-03-14 21  |  642호 ㅣ 조회수 : 603

동북아 문화 전쟁



  3월이다. 백신 접종은 순조롭다고 하지만 개학을 맞이한 아이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중국어 수업. ‘글로벌 시대, 중학생도 제2외국어를 배우는구나’ 한문 교과를 대신해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우는 중학생이 늘어났다. ‘한자를 배우고 일어나 중국어를 배우면 훨씬 쉬울텐데……’하는 생각을 하던 중 귓가에 들려오는 선생님 말씀, “난 중국어를 전공했고 분명 중국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였지만 요즘은 쉽게 그런 말이 나오지 않네요” 수업을 시작하려던 선생님은 결국 요사이 유행하는 중국에 관한 국민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BTS나 손흥민 선수를 두고 벌어진 설전은 물론 한복도 김치도 모두 모두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기막힌 주장까지 끝을 모르고 달리는 양국 국민의 신경전에 외교당국도 가세할 기세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2019년 여름 중국 남부 복건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단란한 가족 나들이에 아이들이 입은 옷을 보고 한참을 바라본 기억이 난다. 평상복도 체육복도 아닌 얇고 하늘하늘한 나일론으로 만든 묘한 복장을 한 아이들이 재잘대며 달음질친다. 뭘까 뭘까 저 생경한 복장은, 아 맞다. 한 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잠시 후 당나라(唐, 618~907)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떠올렸다. 동행했던 친구의 말로는 요사이 유행하는 한복(漢服)이란다. 우리 한복(韓服)과 거의 발음도 같은 중국옷 한복(漢服)이라니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친구의 설명으로는 "일본도 한국도 있는데 왜 우리는 즐겨 입는 전통 복장이 없는가?" 라는 질문을 하던 차에 한족(漢族, 중국 인구의 97% 이상을 차지하는 다수 민족)의 옷이라는 뜻에서 한복(漢服)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됐고 최근에는 저렴하고 실용적인 이 옷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신해혁명, 민주공화정의 등장 그리고 문화대혁명까지 중국이 걸어온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전통 시대의 유산들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렇다고 전통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홍콩, 타이완, 싱가폴은 물론 서구 곳곳에 흩어진 화교들은 자신을 당인(唐人)이라고 부르며 차이나타운(唐人街)을 형성해 중국의 전통문화를 이어갔고 복식도 그 한 부분을 차지했다. 2001년 APEC에서 각국 정상들이 나눠 입고 기념 사진을 찍었던 상의, 2017년 홍콩의 케리람 행정장관이 취임식에서 입었던 청색 드레스 모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당장(唐裝)이다. 당인, 당장 모두 당나라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당나라의 전통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상상하겠지만 이는 실상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淸, 1636~1912)의 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나라의 지배층 기인(旗人)이 입었다는 의미에서 기포(旗袍), 즉 치파오라고 불렸던 이 옷은 당장이라 불리며 중국 전통 복식의 대명사로 현재까지 그 멋을 이어오고 있다. 즉 당장(唐裝)은 만주인 치파오를 계승했지만 화교에 의해 해외로 알려지면서 화교의 복장이라는 의미로 불렸으니 당나라와는 무관하다. 그럼 7세기 당나라의 의상은 어땠을까?



  조조, 유비, 손권이 각축을 벌였던 삼국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중국은 초원 유목민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초원 문화의 남하는 복식에도 영향을 미쳐 당나라 때 꽃을 피웠으니 이를 통칭 호복(胡服)이라고 한다. 호복은 초원의 유목민이 말을 타기 편리한 형태로 만든 통이 넓은 바지와 소매통이 좁은 상의, 장화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스키타이, 흉노, 고구려의 복식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당나라의 복식은 물론 우리 한복의 기원도 호복에 닿아있다. 호복 계열의 당나라 복식은 물론 청나라 치파오에서 기원하는 화교의 당장(唐裝)까지 무엇을 한족의 전통복식 한복(漢服)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변 문화에 관한 통 큰 포용성이 오늘날 중화(中華)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호복에서 치파오까지 어느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한족의 옷, 한복(漢服) 속에 이를 모두 가둘 필요가 있을까? 최근 중국의 국가주의, 한족 우선주의가 중화를 오히려 후퇴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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