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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쁨을 팝니다
유미환, 전은지 ㅣ 기사 승인 2019-09-22 22  |  621호 ㅣ 조회수 : 1374







  ‘사랑합니다. 고객님~’, 2019년은 고객 맞춤화 서비스 열풍이다. ‘손님이 왕이다.’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사용했던 이 문장은 직원을 을로 만들었다. 점차 고객들은 직접적인 서비스 외에 무형의 감정까지 서비스받기를 바라게 됐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손님이 이른바 ‘진상’을 부려도 울화를 눌러둔 채 미소를 지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를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 부른다.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는 1983년 미국의 사회학자 엘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의 저서 좬관리된 마음(The Managed Heart)좭에서 처음 소개됐다. 혹실드는 고객 만족, 또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행위, 인간의 감정까지 상품화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감정노동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주된 업무 자체가 상품 판매와 고객 상담이기 때문에 고객과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노동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정노동은 크게 표면 행위와 심층 행위로 나뉜다. 표면 행위는 노동자가 기업의 표현규칙*에 일치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을 조정하는 행위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마치 배우가 연기하듯 표정과 말투를 꾸며내는 것이다. 심층 행위는 표면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실제 마음까지도 고객의 감정 상태에 맞춘 채로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부인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심층 행위는 다시 적극적 심층 행위와 소극적 심층 행위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 심층 행위는 기업에서 표현하도록 요구받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느낌을 스스로 조정해 가려고 노력하는 상태다. 소극적 심층 행위는 노동자가 반복적인 상황 노출로 인해 특정 상황에 요구되는 감정을 자동으로 느끼게 된 상태를 말한다. 감정서비스의 양과 질은 기업의 매출액에 영향을 준다. 이런 이유로 기업은 점차 감정노동을 기업 시스템에까지 적용했다. 단순한 고객 응대를 넘어 기업 내부 부서 개편, 친절 서비스 다양화, 전 직원 친절 교육 시행, 인사평가 반영, 유니폼 변화, 고객의 소리함 설치 등 직원들의 감정과 태도를 낱낱이 평가하고 인사에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 감정노동은 언제부터 이슈로 떠올랐을까? 2013년 4월 포스코 그룹의 한 임원이 여객기 안에서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을 통해 감정노동자의 현실이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이후 2014년 12월 5일에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륙 준비 중이던 기내에서 견과류 간식이 매뉴얼대로 제공되지 않았다며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아 승무원과 사무장을 무릎 꿇린 채 난동을 부린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있었다. 또한, 대표적인 감정노동자 중의 하나인 콜센터 직원들은 불만 접수뿐만 아니라 욕설과 성희롱에 시달린다. 이들은 고객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유선상으로만 만나기 때문에 더 무리한 요구나 언어폭력에 시달리기 쉽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감정노동자의 수는 약 740만명, 전체 노동자의 41.8%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작동하고 있는 ‘서열 관계’ 때문에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사실상 한국인 거의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감정노동 직종 및 업무의 공통적인 특징은 ▲고객과의 면대면 만남이 잦은 점 ▲고객으로부터 만족감과 기쁨 등의 특정 감정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 ▲조직 차원에서의 관리 모니터링이 이뤄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표현규칙: 직무 수행 중 보여야 하는 적절한 감정 표현에 대한 기준







  감정노동 관련 이슈가 사회 표면 위로 떠 오르며 감정노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감정노동의 가장 핵심 문제는 노동자의 심리적 직무소진이다. 직무소진은 ▲감정 고갈 ▲고객에 대한 비인격화 ▲자아 성취감 저하이다. 감정 고갈은 고객이 심리적·정서적 부담이 따르는 요구를 할 때 서비스 제공자가 느끼는 것으로, 노동자가 직무 소진을 느끼는 주요인이다. 노동자의 감정이 고갈되면 비인격화와 자아 성취감 저하가 일어날 뿐 아니라 근로자의 이직 욕구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고객과의 접촉 빈도가 높을수록 상호작용 횟수도 증가하며, 이는 노동자의 정서적 고갈을 야기한다. 고객 비인격화는 고객을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업무로 대하는 노동자의 태도다. 이는 고객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 서비스 품질을 저하시키며 조직 전체의 생산성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근로자의 태도는 동료에게 전이된다. 근로자의 자아 성취감 저하는 근로자가 성공적인 성취감을 경험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이는 조직의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근로자의 직무와 관련된 열정을 떨어뜨린다. 또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해 자기 존중감을 감소시킨다. 서비스 직종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근로자가 다양한 고객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 성취감 저하를 느끼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감정노동에 주목해야 할까?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가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함과 동시에 감정노동은 증가했지만, 기존 육체노동과 달리 근로자를 보호할 법안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감정노동자는 안전한 근로 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 지난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고객 응대 근로자에 대한 보호 규정을 신설해 직종에 상관없이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모든 근로자를 보호하도록 규정했다. 법문에는 ‘감정노동’이란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고객 응대 근로자’로 표기한다. 하지만 법제처가 “감정노동이 증가함으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 건강 장애 등을 경험하는 근로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감정노동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자 한다”라고 한 점을 미뤄 봐 신설 항목이 감정노동자 보호 목적으로 추가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산안법 이전의 감정노동 보호 규정은 ▲남녀고용평등법의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 방지’(2007) ▲금융 5법의 ‘고객 응대 직원에 대한 보호 조치 의무’(2016)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의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는 업무상 질병’(2016)이다. 금융 5법은 금융업 근무자 중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직원만 보호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감정노동자 보호 규정이지만, 적용 범위에 한계를 지닌다. 금융 5법과 달리 산안법은 모든 직종의 고객 응대 근로자 중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근로자뿐 아니라 전화 등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간접 대면하는 근로자도 적용 범위에 포함한다. 하지만 개정 산안법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산안법상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정의돼 특수형태 고용직의 경우 산안법 규율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화물차 운전기사, 현장 출동 설치 기사 등이 이에 속한다.



  해외에서도 감정노동 보호에 적극적이다. 유럽과 일본은 이미 노동자의 직무 스트레스에 따른 건강 유지의 책임이 기업에 있음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노동 안전위생법에 따라 1999년부터 사업자가 사업장에서 ‘노동자 마음 건강 유지 증진을 위한 지침서’를 따르도록 한다. 노동자가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받았을 경우 사업자에게 안전 배려 의무를 위반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를 산재로 일부 인정한다.









  청년들이 사회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노동은 바로 아르바이트일 것이다. 많은 청년은 연령(경험)과 전문성이 고도로 요구되지 않는 음식점, 주점·호프, 편의점, 커피전문점, 판매업(로드숍) 등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처음은 언제나 중요하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첫 아르바이트는 일의 보람과 즐거움을 줘야 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보람과 즐거움보다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014년 청년유니온에서는 음식점, 패밀리레스토랑, 주점·호프, 패스트푸드, 편의점, 커피전문점, 베이커리·디저트 카페, 판매업(로드숍)에서 일하는 청년 2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일하면서 감정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79%, 일하면서 기분과 상관없이 항상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85.4%, 일하면서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일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77.3%로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리한 요구 및 신체적·언어적·성적 폭력을 경험한 아르바이트생들도 73.3%로 아르바이트가 쉽고 무난할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고깃집, 횟집, 호텔 서빙, 학교 근로 등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강경민(안전·15) 씨는 고깃집 아르바이트 중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웃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청년 아르바이트의 또 다른 문제는 나이이다. 20살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강 씨는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사사로운 참견을 받아야 했고, 낯선 업무에 대해 종종 신경질적인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다소 강압적인 추가 근무를 부탁받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계속 부탁을 들어주자 상사가 요구하는 정도가 심해져 강 씨는 여러 핑계를 대면서 거절해야 했다. 추가 근무나 다른 동료 대신 근무할 경우 종종 주휴수당을 챙겨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지 않고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강 씨는 “좋은 사장님도 많지만, 사회에 처음 나와 무지한 학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좋은 정보를 많이 공유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김시원(안전·17) 씨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김 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아이스크림 제공 및 판매, 정리와 같은 단순 업무였지만 생각보다 높은 업무 강도에 일하는 내내 근육통에 시달렸다. 김 씨는 아르바이트 경험 중 가게가 혼잡했을 당시 김 씨의 동료가 케이크를 구매한 손님에게 실수로 초 1개를 적게 넣어준 일을 떠올렸다. 그 손님은 가게가 문 닫을 때쯤 술에 취한 상태로 전화해 거친 말로 초 1개가 부족하다며 화를 냈다. 김 씨는 계속해서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한참 동안 전화를 끊지 못한 채 욕을 들어야 했다. 또한 김 씨가 일했던 매장의 사장은 아르바이트생이 근무할 때 모습을 CCTV로 감시했다. 사장이 직원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감시하며 전화로 복장 불량에 대해 지적했고, “손님이 없어도 계속 일하라, 쉬지 마라” 같은 명령을 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마감 아르바이트였던 김 씨는 수당도 받지 못한 채 추가 근무에 시달렸다. 본래 23시 퇴근임에도 불구하고 23시까지 손님을 받아야 했던 김 씨는 손님이 없는 날에도 30분 추가 근무는 기본이고, 손님이 많은 날에는 24시를 한참 넘겨 퇴근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23시까지 손님을 받으면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한다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말에 사장은 “마감 아르바이트는 이런 부분을 감당해야 한다”라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참지 않고 불만을 얘기한 다른 아르바이트생은 해고당했다. 부당함을 느꼈지만 김 씨는 용돈으로만 생활하기가 벅차,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 당시 김 씨는 추가 근무 수당을 받지 못했어도 사장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 씨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왜 이런 부당한 상황에 대응하지 못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장에게 당당히 잘못된 점을 말하고 정당한 요구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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