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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아도 괜찮아
유미환, 전은지, 양지은 ㅣ 기사 승인 2019-12-08 02  |  626호 ㅣ 조회수 : 2025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현 사회는 ‘꾸밈노동’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꾸밈노동은 화장, 패션, 용모 관리 등 불필요한 외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 ‘일하는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꾸미기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해야 하는 노동’을 뜻하지만, 성별에 구애 없이 화장, 패션 등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본지는 꾸밈에 대한 대학생들의 생각과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본 설문조사는 총 530명이 응답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꾸밈에 대한 기준은 성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본인 주변을 참고했을 때 여성들의 꾸밈 정도에 관한 질문에서 ‘많이 꾸미는 편이다’라는 응답이 51.5%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이어, 39.6%의 응답도 가벼운 화장에 해당하는 ‘신경 쓴 편이다’였다. ‘하지 않음’이라는 응답은 전혀 없었다. 한편 본인 주변을 참고했을 때 남성들의 꾸밈에 관한 질문에서는 스킨, 로션, 선크림 정도에 해당하는 ‘기초만 한다’라는 응답이 57.9%, ‘하지 않음’이 37.9%를 차지했다. ‘많이 꾸미는 편이다’라는 항목의 응답은 단 1개에 그쳐 주변 남성과 여성의 꾸밈의 실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외출 준비 시간에 관한 질문에서도 ‘1시간 이상 걸린다’라고 대답한 21.8%의 응답자 중 여성의 비율이 98.2%로 나타났다. 여성이 꾸밈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응답도 성별에 따라 추이가 달랐다. 꾸밈을 안 해 스스로 심리적 압박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서 남성의 82%는 ‘없다’라고 응답했다. ‘있다’라고 응답한 나머지 18%는 30분 이상 꾸밈에 시간을 투자하는 남성이었다. 이들은 어느 정도의 꾸밈을 하냐는 질문에서 3가지 이상 응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결과를 통해 꾸밈을 전혀 하지 않는 남성 보다 꾸밈을 하는 남성이 더 압박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성은 꾸밈을 안 해 스스로 심리적 압박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서 남성과 비교해 훨씬 낮은 비율인 35%가 ‘없다’라고 답했다. 나머지 65%는 ▲주변의 대우 차이 ▲주변의 직·간접적 언행과 눈치 등의 이유로 ▲부끄러움 ▲자신감 저하 ▲남들이 다 쳐다보는 기분 등을 느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실제 꾸밈에 관해 충고나 지적을 받아본 경험에 대해서는 남성 응답자 중 84%, 여성 응답자 중 20%가 ‘없다’라고 답했다.



  여성은 꾸밈을 안 했을 때 “아파 보인다”, “무슨 일 있냐”, “꾸미고 다녀라”라는 지적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화장이 너무 진하다”, “색이 안 어울린다”, “오늘 예쁘다”, “오늘 무슨 날이냐” 등의 화장에 대한 평가나 과도한 관심을 받는다고 답했다. 실제 칭찬을 들은 응답자는 칭찬을 받음으로써 계속해서 꾸밈을 해야 할 것 같은 강압을 느꼈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 남성의 경우 꾸미지 않아도 크게 지적받지 않았지만, 여성은 꾸민다는 선택을 하든 꾸미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든 주변의 시선과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여성’이라는 성별에 따라 지적한 말들도 눈에 띄었다. ▲여자가 왜 안 꾸미고 다니냐 ▲여자가 화장해야지 ▲여자는 화장하는 것이 예의다 ▲여자같이 하고 다녀라 ▲여자라면 머리를 길러라 ▲여자이길 포기한 것이냐 ▲치마 좀 입어라 등의 말을 들었다는 응답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의 통념을 엿볼 수 있다.



  꾸밈을 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에서는 ‘꾸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주변 시선 때문에’라는 응답이 44.7%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또한, 꾸밈이 귀찮았을 때도 평상시처럼 꾸민다는 비중이 전체의 35.8%를 차지했다. 설문을 통해 실제로 꾸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꾸밈이 누군가에게는 비자발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남성보다 여성에게 과도한 꾸밈을 강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장인 여성 또한 꾸밈이 ‘예의’라고 강요받는 사례가 많다.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에만 꾸밈이 또 다른 노동으로 강요돼야 할 이유는 없다.





  꾸밈노동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대표적인 과거의 꾸밈 도구로 ▲전족 ▲코르셋 ▲카렌족의 황동 목걸이 등이 있다. 먼저 전족은 10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1,000년간 중국 여성에게 행해져 온 풍습이다. 어린 소녀나 여성의 발을 인위적으로 묶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중국 전통사회는 발이 얼마나 작은지가 미의 기준이었다. 전족을 하지 않고 큰 발을 가진 여성은 추녀로 여겨졌으며, 결혼도 쉽지 않았다. 중국의 ‘삼촌금련(三寸金蓮)’은 발의 길이가 약 10cm 이하일 때 가장 아름답다는 뜻으로, 전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단어다. 전족은 여성의 바깥출입 통제와 남성의 성적 쾌락 추구의 기능을 했다. 전족으로 인해 꽉 조여진 발로 걷게 되면 불편한 자세로 걷게 된다. 또 이 자세는 엉덩이와 허벅지에 힘이 쏠리게 해 여성의 질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게 만든다. 이런 불안정한 자세로 걷는 여성의 모습에서 남성들은 성적 흥분을 느꼈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걷기조차 힘든 여성의 가련한 모습이 남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또한 기형적으로 발달한 여성의 질 근육은 성관계 시에 남성이 큰 쾌락을 느끼게 했다. 전족은 여성의 발가락 뼈를 부러트리고, 피부조직은 곪아서 허물어지게 했다. 하지만 발이 작아질수록 ‘여성’으로서의 가치는 높아졌다.



  코르셋은 16세기 프랑스에서 미용을 위해 허리를 강제로 조이는 용도로 등장한 기능성 속옷을 말한다. 초기 코르셋은 남성 군인들이 전쟁을 위해 갑옷을 입을 때 허리를 보호하고 역삼각형 몸매를 만들기 위해 교정하고자 고안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가느다란 허리가 인기를 끌고 여성들 사이에 전파됐다. 하지만 과도하게 코르셋을 줄인 탓에 탈장되거나 장기에 무리하게 압박을 줘 내출혈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코르셋이 장기의 위치를 영구적으로 변형시키고, 코르셋으로 인해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카렌족은 필리핀, 미얀마의 소수 민족이다. 이곳의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목에 황동 구리로 된 링을 하나씩 채워 나간다. 그들은 종종 ‘기린 여인’이라고 불리며, 링의 수와 종류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 과거에는 미얀마와 태국의 접견 지역에 사는 카렌족의 남성이 전쟁하러 나가고 여성이 모든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카렌족 여성은 밀림에서 맹수를 만났을 때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팔과 다리 그리고 온몸의 중요 관절 부위에 링을 끼웠다. 이후 링은 미의 기준이 돼 여성들의 관습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목에 채워진 링의 개수가 22개가 되면 비로소 그 과정이 끝나게 된다. 이때 링의 무게는 약 7kg 정도에 달하며, 목의 길이는 약 30cm로 늘어나게 된다. 무거운 황동 링이 늑골을 아래로 처지게 하고, 어깨의 각도가 굽어 여성들의 어깨가 매우 좁아진다. 또 꾸준히 관리해주지 않으면 쇠에 있는 녹이나 병원균으로 인한 질병에 노출된다.



  앞서 소개한 세 가지의 꾸밈 도구는 현재 우리의 미적 기준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도 변했기에 다소 불필요하거나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하다. 또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당연한 미적 기준이었다. 과거의 꾸밈이 현재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현재 우리의 미적 기준이나 꾸밈도 미래에서 본다면 달리 보일지 모른다.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일 때문에 지나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럽에서 한때 큰 유행을 끌었던 코르셋이 오늘날 더 확장돼 여성 억압의 상징이 됐다. ‘코르셋을 조이다’는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전반적인 꾸밈을 아우르는 말로 사용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코르셋, 또는 꾸밈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코르셋을 벗는다(脫)는 의미의 ‘탈코르셋’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탈코르셋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억지로 꾸미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이를 실천에 옮긴다. 이는 ‘여성스러움’이라는 사회적 정의를 거부하고 여성의 자유와 주체성을 찾는 운동이다. 다시 말해, 무조건 화장을 ‘안 하고’, 머리카락을 ‘기르지 않고’, 브래지어를 ‘안 하고’가 아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주체를 자신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속옷 브랜드 비비안의 소비자 조사는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외적 아름다움보다 본인의 편안함을 중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017년 상반기에는 속옷을 구매할 때 1순위로 ‘볼륨을 살려주는’ 속옷을 고려했던 소비자가 응답자의 13%를 차지했지만 2018년 9.7%로 감소했다. 반대로 ‘착용감이 좋은’ 속옷을 1순위로 고려한 소비자는 전체 응답자의 22.7%에서 25%로 증가했다. 더불어 비비안은 2018년 브라렛 등 노와이어 제품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용적 기능을 갖춘 제품보다 편안한 제품을 선호하는 여성이 증가한 것이다.



  여성의 신체적 자유로움에 대한 선호도가 가시적 결과로 드러나며 기업도 이를 마케팅과 사내 제도에 반영하고 있다. 학생 교복 브랜드 스쿨룩스는 걸그룹 아이즈원의 교복 바지를 입은 화보를 공개했다. 여성 모델이 치마 교복 대신 바지 교복을 입고 화보를 찍은 것은 업계 최초다.



  꾸밈노동의 대명사인 승무원의 숨통이 트이려는 조짐도 보인다. 영국 버진항공은 지난 3월부터 객실 승무원이 원한다면 바지를 입거나 민낯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직원 규정을 완화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4월부터 국내 항공업계 중 최초로 객실 승무원의 안경 착용을 허용했다. 이어 같은 해 7월 하이힐 의무 착용 규정도 삭제했다.



  ‘보이는’ 직업으로 꾸밈이 당연시 됐던 방송인들도 더욱 편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있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는 여성 아나운서로서 처음으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임 씨는 “방송국에서는 암묵적으로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라며 “아나운서의 본질은 뉴스를 잘 분석하고 시청자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외적 아름다움처럼 아나운서의 본질이 아닌 것을 조금씩 끊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탈코르셋 운동은 SNS를 타고 더 활발하다. SNS에서 #탈코르셋을 검색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탈코르셋을 인증한 게시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용하던 화장품을 모두 망가뜨리거나 ▲싹둑 잘라낸 긴 머리 ▲편한 숏컷 ▲화장을 지우고 민낯의 편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하며 또 다른 코르셋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인다. 탈코르셋을 하는 일부 여성이 본인 외 다른 여성에게 똑같이 탈코르셋을 할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코르셋을 벗기 위해 다른 코르셋을 입힌다는 의미로 ‘역코르셋’이라며 비판받고 있다. 또한 탈코르셋을 인증하는 방식으로 숏컷 헤어스타일이 대거 등장하며 ‘숏컷=탈코르셋’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숏컷이 편해 숏컷으로 잘랐다가 탈코르셋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라는 사연이 누리꾼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신경과학자 안잔 채터지는 뇌과학적으로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술은 인간이 아름다움과 지식을 추구해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갈망이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 인간 중에서 특정 성별만을 대상으로 할 때 갈망은 본능이란 이름 아래 정당화될 수 있을까? 미의 추구가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타인을 규정하고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미를 사랑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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