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뮬란>, 이 시대 우리가 영화를 대하는 자세
시작부터 끝까지,
논란에 둘러싸인 <뮬란>
제작이 확정된 순간부터 전 세계의 화제를 모았던 영화 <뮬란>이 지난 17일(목)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다. 영화 <뮬란>은 1998년 디즈니에서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해 더욱 화제가 됐다. 원래 중국 민간 문학작품 『목란시(木蘭時)』 의 주인공 뮬란(중국명 ‘무란[Mulan]’을 영어권에서 뮬란으로 발음)은 충효의 상징으로 전통 시대 중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오다가 오늘날 디즈니 판타지물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극 중 뮬란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한 원정군에 참여하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은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하고 전쟁에 참여해 군공을 세운다. 개선한 후 상서랑(尙書郞)이라는 비교적 고위직에 오르지만 모함을 받아 죽음에 이른다. 뮬란은 자신의 운명을 누군가에게 위탁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바쳐 나라와 가족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한걸음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현대적 여성상과 맞물려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주인공 ‘뮬란’ 역을 맡은 배우 유역비가 지난해 8월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당시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됐다. 홍콩 시위는 2019년 3월 31일(일)부터 중국 정부가 주도한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해 홍콩 시민들이 전개한 시위다. 이후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민주화 운동으로 확대되며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유역비는 자신의 SNS에서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라며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라고 하는 등 홍콩 경찰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 논란은 식을 줄 몰랐다. 또한 다른 출연자인 배우 ‘견자단’도 당시 홍콩의 중국 반환 23주년을 기념하는 내용의 글을 SNS에 공유해 더욱 논란이 됐다.
출연자뿐이 아니다. <뮬란>의 제작사인 디즈니가 영화 <뮬란> 엔딩 크레딧에 삽입한 메시지도 쟁점이 됐다. <뮬란>은 디즈니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지난 4일(금)에 가장 먼저 공개됐다. 이때 영화 엔딩 크레딧에 디즈니는 중국 신장 위구르민족 자치구 투르판시 공안 당국을 비롯한 8개 정부 기관에 촬영 장소를 제공한 데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실었다. 하지만 이 신장 위구르 민족 자치구는 중국 내 소수 민족인 위구르민족이 거주하는 중국의 자치구로, 위구르족 반체제 인사를 구금, 교화하는 시설이 운영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강제 노역, 강제 불임시술, 문화유산 파괴 등 인권 유린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영국 매체 BBC는 “수용소 생존자 증언과 유출 문서를 바탕으로 수용소 수감자들이 세뇌당하며 처벌받고 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묵인하는 듯한 디즈니의 행동은 보이콧에 불을 지폈다.
이처럼 개봉 전후에 끊이지 않는 인권 논란과 더불어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아시아 문화에 관한 몰이해와 오리엔탈리즘*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영화에서 뮬란은 남성만이 가질 수 있는 기(氣)를 타고난 유일한 여성이라고 설정한다. 그러나 동양 사상에서 기(氣)는 만물, 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특정 성별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이에게 내재한 것인데, 이를 남성만이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한 디즈니의 해석은 시대착오적이다. 더불어 복장이나 화장, 궁중 예절 등이 그 시대 중국의 풍경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는 관객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도 비판을 받았던 고증 오류와 지나친 오리엔탈리즘이 2020년 실사화된 영화에서도 반복됐다는 것은 동양 문화를 바라보는 디즈니의 감수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뮬란>의 논란,
그 복잡하게 엉킨 실 속에서
영화 <뮬란>은 여러 논란으로 개봉 후 예상과는 반대로 아시아 곳곳에서 SNS의 해시태그 #BoycottMulan을 통해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됐고, 각종 논란거리로 바람 잘 날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논란에 대한 당사자의 입장 및 주장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해 <뮬란>의 주연배우인 유역비의 발언은 곧 <뮬란>에 대한 홍콩과 대만 등의 보이콧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유역비는 지난 2월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사건(홍콩 시위)에 대한 건 매우 복잡한 질문이다”라고 말문을 틔웠다. 이어 그녀는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고 예술인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 문제가 곧 해결되기만을 바랐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해명에 지역의 인권문제 논란은 여전하다.
신장 위구르민족 논란에 대해서 영화를 제작한 디즈니는 “영화 대부분은 뉴질랜드에서 촬영됐으나 일부는 신장 위구르민족 자치구에서 촬영을 진행했다”라며 “사의를 표한 것은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위 논란에 대해 “순전한 날조이며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영국 일간 ‘가디언’의 질의에 대해 “신장에는 이른바 ‘수용소’라는 곳이 없으며, 직업교육훈련센터는 테러리즘 예방을 위해 설립됐다"라고 밝혔다. 중국 대사관은 “1990년대부터 2016년 사이 신장 지역에서는 수천 건의 테러 사건으로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정부가 조처한 이후 지난 3년간 단 한 번의 테러 사건도 없었다”라며 정부가 취한 예방적 조치는 종교집단 근절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교육생들은 다양한 강좌를 수강할 수 있고, 개인적 자유가 완전히 보장돼 있다”라고 밝혔으나 이번 영화 <뮬란>의 개봉으로 인해 신장 위구르민족 지역이 재조명되자 중국 정부는 위 영화에 대한 보도 금지령을 내렸다.
▲영화<뮬란>의 포스터(출처 : 디즈니)
이에 홍콩 민주화 인사 조슈아 웡은 트위터를 통해 “이제 <뮬란> 보면 중국 경찰의 폭행과 인종 박해를 묵인하는 게 될 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위구르민족 탄압에 가담하는 게 될 수도 있다”라고 <뮬란> 보이콧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현대 중국인들은 <뮬란>을 중화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이해하고,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은 디즈니의 영화에도 중화적 색채가 드러나길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는 대중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문화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까지 참여하여 영화제작 곳곳에 중국 정부의 입김을 불어넣었다. 중국 정부의 문화산업에 대한 통제, 국가주의에 매몰된 중국 관객의 태도가 아쉬울 따름이다.
*오리엔탈리즘 :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