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소개 l 공지사항 l PDF서비스 l 호별기사 l 로그인
소설_인터미션이 끝나는 순간
기사 승인 2021-12-05 19  |  653호 ㅣ 조회수 : 51

인터미션이 끝나는 순간



 



 



  _dadalife_000_님이 팔로우를 요청했습니다. 13:40



  시현은 다다라이프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익숙하면서 생경한 이름. 그 애였다. 잠시 잊고 있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버렸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그 애가 주로 짓던 표정. 그리고 차례대로 아이들의 말투, 웃음소리, 단어. 인스타그램 속 그 애는 행복해 보였다. 잠시 무너졌던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남들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교복을 입는다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때.



  친구야, 너 햄버거 몇 개까지 먹어?



  날씬한 몸을 가졌던 그 애가 큰 눈을 또렷하게 뜨며, 시현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며 그렇게 물었을 때, 순식간에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우하하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을 때. 그때의 순간들이 악몽처럼 재현됐다.



  그 애는 급식 시간에 밥을 먹는 시현에게 다가가, 시현을 내려다보며 묘한 표정을 짓곤 했다. 어떤 안쓰러움과 신기함과 경멸의 사이. 그 애의 여러 표정 중 그 순간의 표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땀을 닦을 때 노골적으로 시현을 피하거나 웃을 때의 표정. 시현이 의자에 걸어놓은 겉옷의 둘레를 재며 지었던 표정. 그 애는 시현의 비명이 차마 교실 밖까지는 새어 나가지 않도록 꾸준히 잘게 괴롭혔다. 졸업 사진을 찍는 날 그 애는 시현의 뒤에 서서, 작지만 충분히 들릴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쪽팔려. 쟤랑 같은 반인 거.



  시현은 뒤를 돌아 서 있었음에도 그 애의 표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모든 순간이 여태 생생히 떠오른다는 점에서 깊은 피로가 몰려왔다. 시현은 고민했다. 괜찮아지지 않은 걸까. 그래도 그때보단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래 병원을 찾았던 시간을 떠올렸다. 여러 개의 약과 함께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하나도 토해내지 않는 방식으로, 조금은 나아질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저녁마다 당최 익숙해지지 않은 허기짐을 견디며 살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멀리서 민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정은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시현아!”



  시현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민정을 바라보았다. 민정은 시현의 교생 선생님이던 육 년 전과 늘 비슷하게, 시현을 발견할 때마다 눈꼬리가 접히게 활짝 웃었다.  시현은 복잡한 감정을 잠재우고 손을 흔들었다. 민정은 반갑게 다가와 익숙하게 시현의 팔에 자신의 팔을 걸쳤다.



  오랜만에 만남이었다. 소극적인 성격으로 자란 시현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건 때마다 많은 위로와 조언을 해준 민정이었다. 시현은 민정을 만나자마자 그 애의 팔로우 요청 메시지를 민정에게 보여주었다. 민정은 그 애의 프로필 사진을 클릭해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민정은 늘 그래왔듯 가만히 시현을 안아주었다. 되고 싶은 사람. 민정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정은 여전히 적절한 때에 적당한 위로와 애정을 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대학 생활의 희로애락에 대해, 지나간 남자들의 한심함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깝고 비슷한 삶을 지내게 되었음에도 민정과의 관계에서 시현은 여전히 다소 어리고 미숙한 학생 같았고 그런 취급이 나쁘지 않았다.



  시현과 민정은 오랜만에 그들의 모교에 방문했다. 꽃을 보러 가기엔 어디에도 사람이 많을 것 같으니 추억을 회상할 겸 학교에 가자는 시현의 의견에 민정이 적극적으로 동의한 까닭이었다. 주말이라 운동장은 한산했다. 시현과 민정은 벚나무 아래 벤치에 함께 앉았다. 민정은 오랫동안 말없이 벚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고정한 채로 시현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이렇게 많이 성장했는데, 걔는 그대로구나.”



  시현은 잠시 민정의 말에 담긴 뜻을 고민해보았고, 민정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애는 사과하는 방법도 모르고 필요성도 못 느끼는 거잖아. 여전히.”



  시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답했다.



  “사과 안 받고 싶어요. 그냥 영원히 기억에서 사라지면 좋을 텐데.”



  앞을 바라보며 대화하던 시현이 고개를 돌려 민정을 바라보았을 때, 민정의 눈동자에는 많은 생각이 스쳐 가는 것처럼 보였다. 시현은 사람들의 표정을 잘 기억하는 편이었고, 민정은 가끔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다. 어떤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서려 있는 낯선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현이 무언가를 더 떠올리기 전에, 시현의 시선을 느낀 민정이 재빨리 표정을 지우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따 아르바이트 가야 해서 피곤하겠다.”



  “괜찮아요.”



  “지금 공연 중인 극은 뭐야?”



  “맞다,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우정에 대하여 에요. 그때 쌤이 표 주셔서 혼자 보고 왔던…….”



  시현은 재수 시절 민정의 선물로 보았던 연극 <우정에 대하여>에 대해 생각했다. 우정에 대하여는 학교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 하는 말이 느린 학생과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비행 청소년 학생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청소년 연극 같기도 했지만, 주요한 이야기는 그들이 성인이 된 후 전개되었다. 시현은 재미있게 본 것과 별개로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맞아, 나도 그다음 해 인가? 재연했을 때 동기들이랑 보고 왔잖아. 학교를 그렇게 현실적으로 그린 극은 드물어서 되게 좋았었는데.”



  시현은 내심 의아하다고 생각했지만, 부러 티를 내진 않았다. 민정은 세상에 모든 현상을 시현보다 두 발자국 먼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럼 쌤 나중에 극장 놀러 와요. 오면 공연보고 저 퇴근하면 근처에서 같이 맥주 마시는 거 어때요?”



  “완전 좋지, 나 그 근처에 진짜 괜찮은 펍 알아. 거기 가자.”



  민정은 당장이라도 펍에 도착한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펼쳤다. 어떤 맥주를 마시고 어떤 안주를 먹어야 할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시현은 그런 민정의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시현은 민정이 같은 반 또래 친구였다면 이토록 친해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민정은 늘 일 학기 반장을 도맡아 하는 친구가 많은 아이 같았다. 둘은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운동장의 트랙을 따라 걸었다.



 



  육 년 전, 시현이 고등학교 일학년이었을 때 민정은 국어교육과 사학년 학생이었다. 시현이 나온 고등학교는 대학교의 부설 학교로 매년 백여 명의 사범대 학생들이 교생실습을 나오기로 유명했다. 교생 실습이 있는 오월 한 달 동안 한 반에 대략 대여섯 명 정도의 교생 선생님이 보조 담임이 되었다. 민정은 시현이 속했던 일학년 오반에 배정되었다.



  시현은 민정이 처음 교단에 서던 날을 똑똑히 기억했다. 생활기록부에 적을 장래희망을 써서 제출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여러 고민을 했던 날이었다. 시현을 제외한 대다수의 반 아이들은 진작 적어내고선, 오늘 온다는 교생 선생님들에 대해 떠들었다. 이번에 강동원 닮은 교생선생님이 있다더라, 과목이 체육인데 우리 반에 들어올 수도 있다더라, 같은 얘기를 하느라 교실은 평소보다 더 상기된 분위기였다. 시현은 책상에 엎드려 도통 뭐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회사원이라고 써서 낼까, 대충 써낸 후 꿈이 생기면 후회하지 않을까, 막 고민하던 차였다.



  술렁이던 아이들이 말소리가 멎었고 교단엔 우르르 교생들이 들어왔다. 유명 연예인을 닮았다는 교생은 시현의 반에 배정받았다. 아이들은 환호를 지르며 반겼고, 시현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여섯 명의 교생 중 시현의 눈에 들어온 건 민정이었다. 민정은 막 다린 듯한 빳빳한 베이지색 정장 재킷과 검은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시현은 어깨선에 살짝 못 미치는 민정의 갈색 단발머리가 매력적이고 생각했다. 민정은 부끄러움과 당당함을 적당히 겸비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의 눈빛으로 가지런히 앉아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 아이들의 환호가 가득한 남자 선생님의 소개가 끝나고 민정의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민정입니다. 담당 과목은 국어고요. 여러분을 처음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가워요. 저도 이 학교를 졸업했거든요. 선생님이 아니라 선배로 편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졸업생이란 말에 순간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반을 배정받은 교생들은 무조건 담당 학생과 개인적으로 상담을 해야 했다. 민정에겐 총 다섯 명의 학생이 배정되었고 그 첫 번째 학생이 시현이었다. 오월 초의 날씨는 밖에서 오래 이야기를 해도 될 정도로 좋았다. 민정과 시현은 방과 후, 도서관 앞 벤치에서 만나서 이야기했다.



  시현은 담임 선생님에게 이야기하기엔 어렵게 느껴지고,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하기엔 모두 같은 고민을 나누고 있어 망설여지던 이야기들을 모두 민정에게 쏟아 놓았다. 민정은 그런 시현의 정제되지 않은 고민을 모두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시현은 민정이 가진 편하고 다정한 분위기 덕에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민정에게 의무적으로 주어진 학생 개인 상담 시간을 훌쩍 넘은 후에야 두 사람은 겨우 헤어졌다. 다음날 시현은 장래희망 칸에 교사라고 적었다. 고등학교 선생님, 그나마 국어를 제일 잘하니까 국어 선생님.



  교생 선생들이 떠나는 오월 마지막 날, 시현은 떠나는 민정에게 직접 만든 초콜릿을 선물했다. 시현의 인생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 많은 애정을 나눈 경험은 처음이었다. 시현은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모아 민정의 시간을 붙잡고 싶다고 느꼈다. 당시 시현은 민정이 자신처럼 각자의 고민과 일상을 견뎌내는 사람이기보단, 나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어른 그 자체였다. 민정은 그런 시현의 마음을 알고도 시현에게 계속 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민정의 오랜 꿈은 좋은 교사였고, 시현과의 관계가 그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정은 시현이 초콜릿과 함께 준 편지에 정성스레 답을 했다. 그 이후로 시현은 모의고사나 내신시험이 끝난 주말에는 으레 민정을 만났다. 시현이 사범대학에 가기로 완전히 마음먹은 이후엔, 민정은 가장 좋은 선생이자 멘토였고, 친구였다.



  민정이 고등학교 교사로 처음 출근하는 날, 시현이 삼 년의 수험 생활을 견디는 동안, 시현이 사범대학교 합격증을 받은 날, 두 사람은 모두 함께였다. 민정은 신임교사의 생활에 관해 이야기했고, 시현은 대학 생활에 관해 이야기했다. 민정은 대학생인 시현이 가끔 부러웠고, 시현은 교사가 된 민정이 자주 부러웠다.



  시현은 민정이 없는 삶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민정이 그렇게 교생실습을 오지 않았더라면, 민정의 상담 학생이 시현이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두 사람이 영영 잘 모르는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면. 감정을 숨기는 법만 배웠던 시현에게 처음으로 기분에 대해 말해보라던 민정의 다정한 표정은 시현에게 매번 어떤 의지를 심어주었다. 그런 생각은 어쩌면 삶 그 자체였다. 시현은 그런 민정에게 존경의 마음을 자주 느꼈다. 시현은 무의식적으로 종종 민정의 화법이나 표정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시현은 민정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극장으로 향했다. 하우스 어셔 아르바이트를 하는 출근 첫날이었다. 하우스 어셔 아르바이트는 시현이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민정은 수험 생활을 견디는 시현을 종종 극장에 데리고 갔다. 시현은 공연을 보며 배우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에 담는 걸 좋아했다. 민정이 바빠져 극장에 가지 못할 때도 시현은 종종 혼자 극장을 찾았다. 어떤 감정을 느꼈든, 어떻게 몰입하든 어떤 방해나 시선을 받지 않는 공연장은 시현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였다.



  극장에 들어온 시현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건 연이었다. 연은 시현의 면접을 담당하기도 했던 하우스매니저였다. 연은 무표정으로 시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시현은 연에게 어색하게 눈인사를 했다. 연이 먼저 말을 걸었다.



  “시현 씨 맞으시죠? 곧 같이 일하는 어셔들이 올 거예요. 경력이 꽤 오래된 친구들이니까 자잘한 실무는 그분들께 배우면 되고 저는 전반적인 극장이랑 공연 설명을 짧게 해드릴게요. 아마 한 번에 다 기억하긴 어려운 것들이니까, 일하면서 천천히 배우면 돼요.”



  연은 시현을 극장의 입구로 안내했다. 시현은 입구 안내부터 극장 안에서의 안내까지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종종 잘 알아듣고 있다는 의미로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연은 시현을 처음 본 순간부터 줄곧 웃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표정과 다르게 연의 설명은 다정했다. 시현은 여전히 타인의 표정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지만 연에게선 불편보단 편안의 감정을 많이 느꼈다. 연은 극장의 구조와 주요 편의시설의 위치, 어셔들과 매니저들이 머무르는 공간까지 천천히 돌아보며 설명해주었다. 시현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연은 옷을 갈아입는 시현을 기다리다가 시현이 나오자 리본 타이를 깔끔하게 묶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구두를 신을 땐 쿠션 패드를 덧대면 훨씬 편하다는 이야기도 함께였다.



  “지금은 이 무대에서 창작극을 진행해요. 스케줄 표 보냈는데 봤죠?”



  “네! 우정에 대하여 라는 연극이죠?”



  “맞아요. 일막은 오십 분 인터미션 십오 분 이막은 삼십 분 동안 진행돼요. 전반적인 내용 찾아본 적 있어요?”



  “아, 저 초연 때 봤어요. 아는 극이라 반갑더라고요.”



  “연극 좋아해요?”



  “네! 엄청…….”



  발랄하게 대답한 시현은 잠시 민망했다. 다행히 연이 짧은 순간 미소를 지은 후 바로 화답했다.



  “저도 그래요.”



  시현은 교육생 신분의 첫 출근이었지만, 이 극장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퇴근길, 시현과 연은 같은 방향의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연은 세 정거장 후에 내린다고 했다. 어색한 공기가 맴돌 때, 시현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연극,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음 정확히는 극장 자체를 되게 좋아해요. 어릴 때 엄마가 극장에서 청소 용역 일을 하셨는데, 그래서 갈 곳이 없을 때 엄마 따라 몰래 무대 안에 숨어있고 그러다가, 좋아하게 됐어요.”



  “우와, 극적이네요.”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연이 이어 시현에게 물었다.



  “시현 씨는, 왜 좋아하게 됐는데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연극을 좋아하셔서 몇 번 따라가다가 좋아하게 됐어요. 수험생활을 남들보다 조금 오래 했는데, 중간중간 보는 연극이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아요.”



  “극이 위로가 되는 순간이 많은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극장이라는 공간? 음, 이젠 일하는 공간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게 말하며 연과 시현은 함께 웃었다. 연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좋았다. 공연장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연과 시현은 닮아있었다. 한참 극장 이야기를 하고 얼마 전에 재미있게 봤던 극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두 사람이 같은 동네에 오래 살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안 시현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하계동 사셨으면 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저는 그 과대부고 나왔어요. 역 앞에 있는.”



  그때 연이 아주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음, 저도 잠깐 다니다 전학 갔어요.”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시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더 물어선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때 연이 내릴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연이 시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시현 씨, 인스타그램 해요?”



  “네? 아, 글은 잘 안 올리긴 하는데 계정은 있어요.”



  “별건 아니고, 인스타그램에 공연 후기 종종 올리는데 같이 얘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현이 대답했다.



  “너무 좋아요. 계정 알려주세요.”



  시현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인스타그램 어플에 접속하고 연에게 건네주었다. 연은 자신의 계정을 찾아 다시 시현에게 휴대폰을 전달해주었다. 그걸 끝으로 연이 먼저 내렸다. 시현은 지하철에서 몇 번이고 연과의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처음 본 사람에게 이렇게 쉽게 곁을 내어줘도 되는 걸까. 혹여나 대화 와중에 무례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시현은 잠시 두려웠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멈추고 연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구경했다. 그리고 놀랐다.



  연은 꽤 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 만화의 작가였다.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했고 그림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시현은 집에 돌아와 오십 편 정도의 만화 게시물을 전부 정독했다. 최근 게시물의 대부분은 공연 후기였고, 초반 게시물의 대부분은 학교 폭력을 겪은 경험에 대한 것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사이에 생긴 사소한 불화를 원인으로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폭력을 겪은 고양이가 주인공이었다. 괴롭히는 이들도 모두 고양이로 표현되었다. 시현은 그 만화를 보며 자신에게 모진 말을 건네던 그 애의 표정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시현은 그 애의 팔로우 요청 알림을 클릭했다. 차단 버튼을 눌렀다. 인스타그램 속에서 순식간에 그 애가 사라졌다. 그렇게라도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시현이 일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시현은 교육생 신분을 떼고 정식 어셔가 되었다. 객석 밖의 안내를 주로 하던 시현이 처음으로 객석 내의 안내를 맡은 날이기도 했다. 우정에 대하여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매 회차 거의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공연이었기에 마지막 공연 날은 더욱더 바빴다. 민정이 오기로 한 날이었지만 민정을 찾기엔 너무 바빠 연락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불이 꺼지기 전 민정에게 연락이 왔다.



  [차 막혀서 이제 앉았다ㅠㅠ 시현이 어디 있지? 인터미션 때나 보겠다!]



  시현은 메시지만 겨우 확인하고 다시 휴대폰을 넣었다. 무대 사진을 찍으려는 관객을 제지하고 나니 극장에 모든 조명이 꺼졌다. 시현은 C 구역 옆에, 연은 A 구역 옆에 서 있었다. 민정은 A 구역 중간 좌석쯤에 앉아있었다.



  시현은 문득 민정이 시현의 수험 생활에 주었던 수많은 편지 하나를 떠올렸다.



  내가 연극 보면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인터미션이야. 일막이 너무 재밌었으면 자연스럽게 이막도 기대되잖아. 그 짧은 인터미션 동안 계속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까 고민하게 돼. 그런 시간이 너무 좋아. 상상하게 되는 거, 기대하게 되는 거.



  시현아, 지금 많이 힘들지? 이 순간이 너에게는 인터미션의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일막도 잘해왔고 앞으로 닥칠 이막도 잘할 너의 인생에서 아주 잠깐 멈춘 거야. 더 잘할 이막을 위해서. 그리고 난 확신할 수 있어. 너의 인생에 곧 아주 멋진 이막이 시작될 거야.



  시현은 중간 중간 사진을 찍으려 하거나 소리를 내는 관객들을 작게 제지하며 무대에서 진행되는 연극을 바라보았다. 어셔 일을 하면서 극이 진행되는 무대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우정에 대하여의 일막 마지막 장면은 겨우 친해진 두 인물 사이에 오해가 생겨 멀어지는 장면이었다. 시현은 무의식적으로 초연 때의 공연을 떠올렸다. 그땐 분명히 두 인물이 손을 잡는 장면으로 끝났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현은 기억의 오류라고 생각하면서 멍하니 극을 바라보았다. 두 인물은 잡았던 손을 놓았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대로 암전이 되었고, 커튼이 내려갔다. 일막이 끝났다. 박수 소리가 들리자 시현은 무대를 멍하니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서둘러 일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 때쯤 극장의 모든 불이 켜졌다. 십오 분간의 인터미션이 끝나면 이막이 시작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렸고, 시현을 찾았다. 시현은 민정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민정도 시현을 발견하고 “시현아!”라고 소리쳤다. 극장이 혼잡하여 시선이 많이 쏠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민정의 옆자리 손님에게 분실물에 대해 안내하던 연이 민정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민정도 연을 바라보았다. 연이 시현과 민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두 사람은 그대로 멈춰 섰다. 멀리서 시현은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시현은 연의 표정을 보았다.



  “저기요, 화장실 어딨어요?” 어떤 사람이 시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질문했다. 시현이 그 질문에 대답하고 나서 다시 A 구역을 바라보았을 땐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민정만 남아있었다. 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현은 민정에게 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민정은 일 분이 넘도록 그 자리에서 연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현은 문득, 문득 이제야 연과 민정이 동갑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같은 동네에서, 심지어 같은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걸, 왜 그걸 이제 깨달았지? 시현이 생각에 잠기려던 찰나 시현의 무전기가 울렸다.



  ‘인터미션— 십 분 남았습니다. —인터미션—십 분 남았습니다. 화장실 혼잡해지지 않도록 계속 안내해주세요. 시현씨— 여자화장실 앞으로 와주세요.’



  연은 교육 내내 시현에게 인터미션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인터미션은 컴플레인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때이기도 해요. 일막에서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지적하는 관객분도 계시고, 무언가를 잃어버려 급히 찾는 사람도 있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무대 너머에선 이막을 위해 모든 스태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공연 내내 쉬는 시간이 필요했던 관객들이 용무를 처리하는 순간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가끔 이막 무대가 준비가 덜 되면 안내방송으로 이 삼 분을 더 끌기도 해야 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대응할 수 있어야 해요. 처음 일할 때는 인터미션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 거예요. 관객으로 올 때랑은 다르죠.”



  시현이 정신없이 여자 화장실 안내를 하는 찰나에 인터미션은 끝나가고 있었다. 우정에 대하여의 마지막 인터미션이었다. 내일이면 새로운 공연이 시작되는 극장에서 많은 관객이 이 공연을 보고 있었다.



  시현은 본능적으로 연과 민정이 비슷한 나이구나 예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연이 자신의 모교를 다녔었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민정을 떠올리면서도 민정이 연과 잘 알고 있는 사이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시현은 연의 인스타 만화를 보고 민정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쌤, 쌤 학교 다닐 때 선후배들 사이에 유명했던 학교 폭력 사건 있었어요?]



  민정은 한참 뒤에 대답했다.



  [바빠서 지금 봤어! 글쎄? 기억이 잘 안 난다. 갑자기 왜?]



  그리고 연의 인스타 만화 속 문장들을 곱씹어보았다.



  십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나를 괴롭혔던 고양이 중 한 마리가 교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현은 함께 모교에 방문하던 날 민정이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학교 별관 건물 앞에 덩그러니 있는 벤치에 나는 자주 혼자 앉아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여기였어. 그래서 너랑 상담도 여기서 하자고 한 거야. 점심시간마다 친한 친구들이랑 여기서 시간 보냈어.



  그러면 나를 싫어하는 고양이들이 와서 수다를 떨었다.



  학교 건물이랑 멀어서 선생님들도 안 마주치고, 운동장이랑도 꽤 멀어서 여자애들끼리 비밀 얘기하기 완전 좋았지.



  다른 고양이들은 내가 없는 것처럼 내 옆에서 내 욕을 했다.



  아 다시 고등학생 하고 싶다. 그때 재미있었는데. 교생 나왔을 때도 나는 교실에 앉아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더라.



  학교는 늘 슬픈 기억이었다.



  시현의 무전기에서 다시 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터미션— 오 분 남았습니다. —인터미션—오 분 남았습니다. 관객 분들에게 안내해주세요.’



  화장실의 줄은 여전히 혼잡했다. 여기저기서 어셔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미션 오 분 남았습니다! 인터미션 오 분 남았습니다!”



  관객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줄을 기다리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은 다시 극장으로 들어갔다. 극장 앞에선 재입장 표를 확인하는 어셔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시현은 화장실에서 막 나온 민정을 마주쳤다.



  선생님은 사람을 괴롭힌 적이 있나요? 아니, 매니저님과 같은 학교에 다녔나요? 선생님, 동창 중에 사범대를 간 사람이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던 거, 제가 잘못 기억하는 거 아니죠?



  시현은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어, 시현아 바쁘지,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 공연 끝나고 보자. 나 먼저 들어갈게!”



  그 말을 끝으로 뒤를 도는 민정을 시현이 불러 세웠다.



  “쌤 연 매니저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시현은 민정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건 그 애가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힐 때, 그 주변에 있던 그 애의 친구들이 지었던 표정이었다.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들께 예쁨도 받고 자주 반장을 도맡아 하던, 그래서 언제나 친절한 표정을 보이던 그런 아이들도 시현에게 그런 표정을 자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시현의 무전기가 울렸다.



  ‘인터미션— 일 분 남았습니다. 입장 안내 부탁드려요.’



  민정이 무어라 대답했지만 옆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관객들의 소리에 묻혀 시현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시현은 여전히 민정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시현아, 내가 나중에 다 설명할게.”



  그때 다시 시현의 무전기가 울렸다. 무대 뒤를 담당하는 다른 매니저의 목소리였다.



  ‘긴급. 무대에서 이슈 발생. 이막 아직 못 올라가요. 오 분 정도 시간 걸린다고 합니다. 하… 안내 부탁드려요.’



  그리고 이어 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슈 발생. 오 분 지체 안내방송 지금 나갑니다. 어셔분들 계속 안내해주세요.’



  시현은 갑자기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현은 민정의 표정을 보지 않고 붙잡은 팔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혹시 누군가를 괴롭힌 적 있어요?”



  민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 지는 선생님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주변은 아주 시끄러웠다. 관객들이 하나둘 걱정 어린 불만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민정이 이마를 짚으면서, 한숨을 쉬면서, 기다리지 않았던 순간이 도래했음을 잘 아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는 아주 어렸고, 나는 계속 사과를 하고 싶어 했어.”



  ‘무대 스텝님 무대 상황 말씀해주세요.’



  시현은 민정의 손을 놓고 민정의 표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민정은 울 것 같았다. 울어야만 자신이 괜찮을 것 같을 때의 표정이었다. 아무 곳에서나 울 수 있는, 쉽게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랑스럽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주 짓곤 하는.



  ‘하……이거 회복 안 될 것 같다는데요? 중요한 소품이라 못 빼요.’



  ‘비상. 일단 어셔 분들 전부 중앙 출입구로 집합해주세요.’



  시현이 생각을 하는 사이 멀리서 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현 씨, 빨리.”



  시현은 연을 따라 중앙 출입구 쪽을 향했고, 민정은 뒤를 돌아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니저들은 바삐 뛰어다니고 있었고, 관객들은 이막이 언제 시작하냐며 어셔들을 붙잡았다. 겨우 어셔들을 모은 연이 아주 잠깐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무대 이슈가 너무 커서, 이막이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대요.”



  시현은 묻고 싶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 저희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시현은 이제 더 이상 민정에게 물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터미션이 끝나가는 순간이었고, 이막이 시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왜 공연이 시작하지 않냐는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셔들은 흩어져 대응했다.



  시현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늘의 공연이 끝나고 나면 혼자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손을 맞잡는 결말의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었고, 민정과 연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이제는 이름조차 생경하던 그 애와 그 애 친구들의 실루엣이 문득 떠올랐다. 그 애들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시현을 향해 지었던 경멸의 표정이나 말투 같은 것은 여전히 시현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었다. 시현은 그들을 영원히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시현은 이대로 이막이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극장에서 이막이 시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사 댓글 0개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쓰기 I 통합정보시스템,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으로 로그인 하여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확인
욕설,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01811]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 최초발행일 1963.11.25 I 발행인: 김종호 I 편집장: 김선웅
Copyright (c) 2016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