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방(佛巖山房)
기자 승인 2026.04.12 16 712호



▲ 김희남 초빙 교수(전 SBS 보도본부 국장)





 옛 선조들은 책과 벗하며 지내는 공간을 산방(山房)이라고 불렀다. 산기슭 작은 거처를 의미한다.



 벼슬살이에서 물러나 세상을 관조하며 생각을 다듬는 곳이기도 했고, 아직 벼슬을 갖지 않은 사대부들은 조용히 정진하며 세상을 도모하는 곳이기도 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수양하며 사고와 관점을 확장하는 공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계의 ‘생존 투쟁’(찰스 다윈, 『종의 기원』)은 때로 무분별한 경쟁주의를 낳기도 한다. 그래서 산방은 날 선 대립과 갈등이 도사리는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 스스로 돌아보며 세계관을 세우는 공간이었다. 현실은 넉넉하지 않아도 바른 마음으로 도를 지키고 세우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논어』는 중국 춘추시대 사상가인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인(仁)은 논어를 관통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하루는 제자 안연이 물었다. “인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이렇다. 나를 이기고 예절 바르게 생활하면 그게 바로 어질게 살아가는 태도가 된다. 한때 대기업 신입 사원 연수 프로그램이나 중·고등학교 방학 캠프에 유행처럼 등장했던 극기 훈련은 이런 해석에서 비롯됐다.



 과연 그럴까. 공자가 말한 극기는 단지 나를 이긴다는 현상적 해석에 머물지 않는다. 진정한 극기는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집착과 아집을 벗어내는 일이다.



 복례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예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공자의 함의는 단지 개인의 예절 바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예절 즉 공공선의 실현이다.



 다시 말해 극기는 자기 수행을, 복례는 사회적 실천을 의미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아름다운 질서를 사회적 실천으로 보는 것이다.



 개인 중심적인 사고에 머물지 말고 공동체로 관심을 넓혀야 진정한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6조 관청 가운데 예조가 예의범절뿐만 아니라 지금의 보건복지부 정책인 사회 복리를 주요 업무로 삼았다는 사실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회적 동물로서 개인 간 예의범절은 더없이 중요한 덕목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동체의 관심사로 세계관을 넓혀 보자. 삶은 더욱 가치 있고 풍요로울 것이다.



 공자는 이를 위해 전제 조건을 내세운다. 바로 학문의 필요성이다. 어질되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은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착한데 멍청해.’ 이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코리아의 기원이 된 고려(高麗)는 높고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다. 위대한 땅이라는 의미로 나라 이름을 이렇게 정했을 텐데, 산 높고 물 맑은(山高水麗) 곳이라는 뜻에서 기원한다는 설도 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지구상 보기 드물게 산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



 학교에 오기 전에 오랫동안 방송기자로 살면서 해외 취재할 기회가 많았다. 해외로 나가 볼수록 우리가 산속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우리나라로 여행 온 외국인은 역설적으로 굴곡지고 경사진 도로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산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굳이 깊은 산을 찾아들지 않아도 가까운 데서 자연을 벗하며 스스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우리 우리대학은 서울에서 유일한 국립종합대학교이다. 과학기술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실용의 창학 정신이 116년 장구한 시간을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 연암의 이용후생,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인 것이다.



 자연은 또 어떤가. 불암산이라는 큰 산을 울타리 삼고, 15만 평 드넓은 캠퍼스에 맑은 계곡을 품고 있다. 또 가까이 중랑천을 끼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도 배산임수의 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여기야말로 ‘드높고 아름다운 땅’이 아닌가.



 산을 끼고 자리 잡은 대학교는 많아도 계곡까지 품은 곳은 거의 없다. 새봄마다 전국 각지에서 인재들이 모여들어 배움의 열기를 더한다. 최근에는 외국인 학생도 크게 늘어 문화 다양성과 지적 호기심을 나누는 배움의 전당이 되고 있다.



 봄날의 캠퍼스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인생의 봄날에 선 젊은이들이 대자연을 벗하며 정진하고 세계관을 키우는 곳, 우리대학은 ‘불암산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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