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화) 윤석열 대통령(이하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밤 11시 30분경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며 포고령을 발표했다. 야당을 비롯한 주요 정치 인사들은 잘못된 처사라며 이튿날 새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및 군병력은 국회로 진입하려는 국회의원을 막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결의안 가결 약 3시간 뒤인 4시 30분경 계엄 해제를 선포했다. 이후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함으로써 윤 대통령은 직무 정지 상태에 처했다. 헌법재판소 법관 임명 공방으로 인해 한덕수 국무총리도 직무가 정지돼 최상목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권한대행 및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중운위 “비상계엄 정당화될 수 없어”
사태 직후 정치·대학·언론 등 각계각층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우리대학 내에서도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성명문이 잇따라 발표됐다. 지난 12월 4일(수) 우리대학 재학생 및 민주동문회 일동은 정문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자신을 우리대학 3학년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참여자는 시국선언 발언 중 “비상계엄 선포와 해체요구안 가결, 그리고 계엄 해제까지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던 밤이었다”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등한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외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발언했다. 30여 분간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본지의 취재기자와 함께 기성 언론사도 참석해 기자회견을 보도했다.
교내 학생 자치 단체인 제40대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도 지난 6일(금) 규탄문을 발표했다. 중운위는 규탄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행동은 민족자주(民族自主)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전 학우를 넘어, 전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민주적인 행위로써 정당화될 수 없다’며 비상계엄을 규탄했다. 이어 다른 대학에 비해 비교적 늦게 성명을 낸 것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전 학우의 의견을 대표하는 만큼, 추후 본교에 발생할 정치적, 운동권적인 문제를 고려해 현 상황에 대한 의견 표명을 신중히 고심해 왔다’며 이번 성명문 발표에 신중을 가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에 위치한 일반대학 중 성명·규탄문이 확인된 대학은 20여 개이다. 각 대학은 ▲12월 4일(6개 대학) ▲5일(8개 대학) ▲6일(4개 대학) ▲6일 이후(2개 대학)에 성명문을 발표했다.
교직원도 목소리를 냈다. 우리대학 135명의 교강사․교직원 일동은 성명문을 통해 윤 대통령을 ‘철없는 대통령’, ‘철면피’ 등으로 강도 높게 표현하며 윤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요구했다. 총 세 페이지의 성명문 중 한 페이지에 이번 성명에 동참한 135명의 이름을 써넣어 성명문의 주체를 확실히 기재했다.
퇴진 시위,
다양한 목소리 내는
역할 하기도
▲제 1학생회관 앞 게시판에 붙은 (오른쪽부터) 우리대학 민주동문회 시국선언문, 한국대학원리 연구회 성명서
소예진(문예․21) 씨는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강한 당혹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계엄령은 전시 상황에서 주로 선포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처음에는 전시 상황에 돌입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선포문을 읽고 나서는 당황스러웠다. 계엄령을 선포한 이유가 북한의 도발 행위가 없었음에도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등이었기 때문이다”며 계엄 선포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계엄 상황이 일단락되자 많은 단체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소예진 씨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측의 범시민대행진 집회에는 12월 31일까지 4회 모두 참여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집회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집회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한자리에 모였지만, 실제로는 그 주제가 탄핵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발언이 많았다. 서울 집회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약자에게 연대하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고 말했다. 이어 집회에서 느꼈던 점에 대해 “정치와 개인의 삶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며 “주최 측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하지 말자’는 문구를 내걸며 참여자들의 발언을 존중하고 있었다. 개인의 삶은 정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대학에는 어떤 영향 있었나
이번 사태로 인해 정치․사회․경제 등 다양한 분야가 심각한 타격을 받은 가운데,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불안정한 국내 정세 속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위험을 감수하고 체류하기엔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박윤아 국제교류처 외국인입학팀장 주무관은 “최근 환율 상승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부담은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번 사태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우리대학의 2024년 외국인 유학생은 국제대학 신설에 따른 정원 확대의 영향으로 ▲학위과정생(학부, 대학원) 657명 ▲교환학생 141명 ▲한국어과정생 480명으로 총 1,278명이다. 이는 지난해의 669명에 비해 약 90%가량 증가한 인원이다. 우리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입학 전형 지원자 수도 전년도 대비 증가했다.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년도 학위과정생 입시에서는 총 350명이 지원한 반면, 2025학년도 입시에서는 약 20% 증가한 421명이 지원했다.
정상 등교 여부에 대한 혼란도 있었다. 교내 커뮤니티(에브리타임)에서는 ‘계엄 상황인데 내일 등교해도 되나요?’, ‘새벽에 이뤄진 계엄 탓에 상황을 파악하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우리대학에서 학과 공연을 준비 중이던 소예진씨는 당시 겪은 혼란을 생생히 회상했다. “교내 어의소극장에서 공연 준비를 하던 중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했다. 갑자기 일이 중단됐고 다들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뉴스 기사를 읽어봤다.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당장 오늘 새벽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밤을 새우자는 의견도 나왔다”며 당시의 혼란했던 상황을 전했다.
“대학생의 정치 참여 늘었으면…”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인 세대인 86세대로 이루어진 운동권은 과거 독재 정부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의 고전이 대두되고 연세대 사태로 인해 운동권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게 되면서 대학 내 운동권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현재는 각 대학의 민주동문회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대학의 전신인 서울산업대학교는 과거 80년대에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곳 중 하나였다. 1991년 교육부는 ‘산업대학 개혁안’을 발표했다. 당시 서울산업대투쟁위원회는 ‘노동형제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산업대 개혁안은 노동자에게 환상’이라며 교육부의 개혁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개혁안에 반발한 서울산업대생 1천여 명은 학교에서 3km가량 떨어진 1호선 석계역까지 시위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대학생의 정치 참여 의식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소예진 씨는 “학생 운동이 활발했던 80,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학생들이 정치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 주저하는 경향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 민주화에 학생 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학생들이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라며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작은 의견이라도 표명하려는 학생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들의 의견을 조금씩이라도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 이번 변화의 긍정적인 면이다. 앞으로도 이 관심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소예진 씨는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가 단지 정치적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존재 의미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학은 취업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한다. 대학생의 정치적 참여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주체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앞으로의 학생 운동이 좀 더 적극적이고 영향력 있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나연 기자 jsdgtj@seoultech.ac.kr
김종현 기자 24100076@seoultech.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