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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열정도 있다
장수연 ㅣ 기사 승인 2024-03-18 16  |  686호 ㅣ 조회수 : 115

 장수연(산공·19)



 마지막 학기를 맞이하며 나의 모교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그리고 신문사와의 이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되돌아보니 나의 대학생활은 참으로 많은 감정들이 오가며 희로애락이 가득 찬 날들이었다. 당시에는 내 안에 선명하게 각인됐던 기억들도 이제는 희미해졌고, 힘들었던 순간보단 좋았던 순간들만 계속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신문사를 또 한 번 이어가게 됐다.



 대학에 입학하며 내가 배운 것은 상실이었다. 학업도, 인간관계도 모두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결과만이 날 찾아왔다. 많은 것들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기에 무력했고,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성취감보단 상실감을 뼈저리게 알아버린 나이, 더 이상 행복이나 열정 같은 것은 나와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신문사 말고는 무언가 꾸준히 한 것이 없었다. 미래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부러운 것은 그들의 성취가 아닌 그들의 열정이었다.



 그런 나에게 신문사는 약간은 숨기고 싶은 존재였다.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신문사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내가 우스워 보일까 봐였다. ‘장학금과 매달 나오는 취재활동비가 좋아서’라는 변명으로 신문사에 대한 애정은 숨겼다. 3학점만 남은 초과 학기, 더 이상 받을 장학금도 없기에 당연하듯 신문사를 나갈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신문사를 이어왔던 원동력은 장학금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획을 다시 철회하고 또 다시 신문사에 남기로 결정했다. 아직 쓰고 싶은 기사도, 하고 싶은 취재도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왜 신문사를 떠날 수 없을까. 부족한 글 실력에 꾸역꾸역 기사를 써내려가는 것은 정말 어렵다. 최종본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 종일 같은 글만 봐야 하는 조판도 너무나 고된 과정이다. 취재는 또 어떤가. 매번 거절을 감수하며 낯선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일은 소심한 나에게 스트레스의 근원이다. 이런 노력 끝에 만들어진 교내 학보를 보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각 건물의 배포대에 쌓여있는 신문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심지어 교내 배포대가 어디 있는지, 신문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문사를 3년씩이나 이어갔다. 취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빨리 기사에 실을 생각에 신이 났다. 완성된 글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봤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발행되는 12면의 종이 신문은 너무나도 뿌듯했다. 여전히 허점은 많지만, 그 부족한 신문이 뿌듯해서 몇 번이고 들여다보곤 했다.



 이유는 없다. 그저 순간순간 잘하고 싶었다. 나는 나도 모른 채 신문사에 열정을 쏟고 있었고, 그토록 바래왔던 존재가 신문사였음을 알지 못했다. 언론인을 꿈꾸지 않는 내게 신문사에 열정을 쏟아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이유 없는 열정은 애써 외면해 왔다. 나조차도 모른 체했던 그 마음을 이제 와 깨달으며 글을 쓴다.



 아마 종이신문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고, 기자들도 더 이상 레이아웃과 분량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학보사를 포함한 언론들이 구독자 부족에 허덕이면서 신문을 끝내 발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수의 신문 구독자를 위해서도 있겠지만, 결국 나와 같은 인간들 때문이 크다고 생각한다. 신문 속 가지런히 정렬되어 들어간 우리의 기사들을 직접 손으로 넘기고 만질 수 있다는 것이 그토록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더 나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MT에 가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이야기하고 고민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은 수정 사항들을 찾기 위해 온종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신문에 싣는 이유는, 나와 같이 신문사와 같은 열정을 외면하는 이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이 그럴싸한 이유나 목적 없이 무언가에 치열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에 겁내지 말자. 남들에겐 보잘것없을지라도 내가 애정한다면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잘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있다. 무언가에 진심인 여러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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