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용하 기자(컴공·25)
돌아보면 학생회라는 선택, 그리고 학생회장이라는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결국 사람 때문이었다. 이름을 외워주고, 어색한 자리에서 먼저 말을 걸어주고, 내가 헤맬 때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어주던 선배들. 그들과 함께 웃고, 버티고, 배우며 나는 학생회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 자리를 잇는다. 더 웃고, 더 버티고, 더 배우면서.
학생회실에 앉아 우리 학생회 인스타그램 계정을 뒤적이고 있었다. 게시물들을 한참 내려보았지만, 생각보다 오래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이 중심이지만, 그 이전의 흔적은 페이스북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어렵지 않게 옛 학생회 페이스북 계정을 찾아냈다.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자 9년 전, 제33대 학생회의 기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속 장소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같은 학생회실, 같은 책상, 비슷한 표정들. 어쩌면 그보다 더 이전부터 이 공간은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장면들을 바라보는 순간, 시간이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위로 수많은 선배들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타임랩스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들은 모두 잊힌 것이다. 지금 이 학교에 남아 있는 누구도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대학교를 9년 동안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도 언젠가는 같은 방식으로 스쳐 지나갈 것이다. 지금은 함께 웃고 이름을 부르는 이 사람들도 몇 년 뒤면 서로를 또렷이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학생회장이라는 직함도, 수많은 회의와 행사도 결국은 시간 속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곧 잊히기 때문에, 더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그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학생회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누군가가 시작했고, 누군가가 맡았고, 다시 누군가에게 넘겨지는 자리다. 나는 그 흐름 위에 잠시 올라탄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잠시’ 동안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학생회실에 앉아 오래된 기록을 들여다보다 보니 사람들이 왜 인생의 덧없음을 탄식하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애써 쌓아 올린 일들, 그 안에서의 노력과 감정들, 그리고 그때의 이름과 얼굴까지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덧없음은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대부분의 일들이 따르는 방식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맡고, 지나가고, 다시 다른 누군가가 이어받는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사라지고, 자리는 그대로 남아 같은 흐름을 반복한다.
이렇게 보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 시간을 실제로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기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더 가까운 문제가 된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붙잡아 두기보다,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존재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덧없음을 피하려 하기보다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시간을 만들어 갈 것인지를 더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지를 더 고민하려 한다.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부딪히고,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언젠가 나 역시 그 수많은 선배들처럼 이름 없이 사라지겠지만,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생회라는 자리는 원래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잇는다는 것은 결국 흘러가는 과정 속에 잠시 머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라질 것을 걱정하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놓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