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아영(문화예술학과 졸업생·22)
“봄바람 휘날리면~ 흩날리는 벚꽃잎이~”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봄을 실감한다. 벚꽃이 만개한 붕어방에서 중간고사를 앞둔 학우들은 잠시 걸음을 늦추며 그 풍경 속에서 숨을 고른다. 꽃구경을 나온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함께 스며드는 이 길은, 매년 반복되는 봄의 장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 익숙한 풍경이 앞으로도 계속 같은 모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봄꽃이 피어나는 순서를 일컫는 ‘춘서(春序)’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봄꽃은 오랜 시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차례대로 피어왔다. 1990년대까지 서울에서는 4월 초중순에 벚꽃이 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기온 상승의 영향으로 이 오랜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벚꽃이 3월 말에 개화하는 일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니게 됐다.
실제로 올해 서울의 벚꽃은 지난달 29일에 공식 개화했다. 기상청이 1922년부터 100년 넘게 관측해 온 기록에 따르면, 3월 개화 사례는 올해를 포함해 단 5번에 불과하다. 그중 4번이 2020년대에 집중돼 있다. 개화 시기가 빨라졌다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온 변동 폭마저 커지면서 개화 시기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벚꽃은 특히 2~3월 기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2월 한파가 길어지면 개화가 늦어지고 반대로 3월 기온이 급격히 오르면 예상보다 훨씬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한 개화 시기 탓에 전국 곳곳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벚꽃 축제인 경남 창원시의 ‘진해군항제’는 2010년대만 해도 4월 1일부터 고정적으로 열렸으나, 최근 3년간은 3월 말로 축제 시작일을 앞당겼다. 한편, 충북 충주시의 ‘충주호 벚꽃축제’는 개화 시기에 맞추느라 지난해보다 무려 20일이나 늦춰 개최하기도 했다. 충북 제천시의 ‘청풍호 벚꽃축제’와 보은군의 ‘벚꽃길 축제’는 아예 축제 기간 자체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엇나가는 기후를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2024년 전국 곳곳에서는 꽃이 피지 않은 채 축제가 열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중 하나인 ‘영랑호 벚꽃축제’를 담당한 속초시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사과문을 SNS에 올리며 벚꽃이 필 때 다시 2차 축제를 개최한다고 공지했다. 이제 꽃 축제는 언제 열릴지를 넘어 제때 꽃이 필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기후 위기는 우리대학의 캠퍼스 풍경도 바꿔놓을 수 있다. 기상청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 21세기 후반에는 벚꽃 개화 시기가 지금보다 한 달 가까이 앞당겨져 2월에 꽃이 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대로라면 미래의 후배들은 더 이상 학기 중 캠퍼스에서 벚꽃을 만끽하며 추억을 쌓는 풍경을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 필자가 누렸던 붕어방의 벚꽃이 ‘학기 중 봄날의 낭만’이 아닌 ‘겨울방학의 끝자락’으로 소리 없이 밀려나게 되는 셈이다.
기후변화센터의 ‘2025년 대학생 인식 조사(497명 참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기후 위기를 체감하면서도 실천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응답은 24%에 그쳤다. 인식과 실천 사이의 깊은 간극은 솔직한 현실이다.
영국 국립해양학센터의 조엘 히어쉬 박사는 “기온 상승 추이를 되돌리는 일은 거대한 유조선의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뱃머리가 돌아가는 표가 거의 나지 않지만, 방향을 틀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결과는 점차 거대하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을지라도 지금의 선택들이 결국 방향을 만든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붕어방의 봄을 당연하게 여기기엔 이미 유조선의 방향은 위험한 쪽으로 많이 틀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변화들이 모여 조타 키를 돌린다면 훗날의 봄에도 붕어방에는 여전히 노래 가사처럼 눈부신 꽃비가 내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