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드 코로나의 첫 단추, 백신 패스
백신 패스 도입 논의
지난 10월 7일(목)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접종 완료율 ▲전 국민 기준 70% ▲성인 기준 80% ▲고위험군인 고령층의 90% 달성이 10월 25일(월) 이후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백신 접종 후 항체가 생기는 기간을 고려하면 11월 9일(화)에는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라며 처음으로 구체적인 단계적 일상회복 가능 시점을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한국식 ‘위드 코로나’인 ‘단계적 일상회복’의 한 방안으로 백신 패스를 검토 중이다.
백신 패스는 백신 접종 사실을 확인하는 출입 허가증으로, 백신 접종 완료자가 공공시설이나 다중이용시설 출입 시 방역 조치로 제한을 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정부가 백신 패스 제도 도입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는 크게 2가지다.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려 위·중증률과 치명률이 높은 미접종자 유행 규모를 줄이면서, 지역사회 일상회복과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 복구 및 경기 회복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정부는 백신 패스가 영구적인 제도가 아니며 단계적 일상회복을 위한 이행 기간에 도입하는 제도라는 입장이다. 백신 접종의 이득이 성인만큼 크지 않고 이보다 큰 위험성으로 그동안 접종대상이 아니었던 18세 미만의 아동과 청소년 등은 ‘백신패스’의 예외로 두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백신 패스 찬반논란
정부가 한국형 위드 코로나 시행을 위한 발판 마련에 나섰지만,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가는 길목에서 백신 패스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선 백신 패스가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백신 접종 여부는 개인 질환, 알레르기 반응 등 불가피한 사정에 따른 경우부터 부작용 등을 고려한 개인 선택의 문제인데, 정부가 다중이용시설의 자유로운 출입 등을 조건으로 백신 패스를 앞세우는 것은 실질적인 차별이라는 것이다. 지난 9월 29일(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백신 패스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10월 10일(일) 오전 0시 기준 6만 8,267명이 동의했으며, 청원인은 “개인 질환, 체질, 알레르기, 여러 부작용으로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못 한 분들도 있는데 백신을 무조건 강제할 수 있나”라며 백신 패스에 대해 부당하다는 의견을 호소했다. 지난달부터 10일(일) 오전 0시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백신 패스 반대 청원은 총 7건 이다.
한편, 백신 패스 도입 관련 여론 조사에서는 찬성 여론이 다소 우세하게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10월 1일(금)부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백신 패스 도입에 대한 입장을 조사해 10월 4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66.0%가 찬성했다. 반면 28.0%는 “미접종자에 대한 차별이라 불필요하다”라고 답했다. 이 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면 백신을 적극적으로 접종해야 하므로 접종 독려를 위해 백신 패스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대체로 자영업자들도 백신 패스에 긍정적인 편이다. 노화봉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정책연구센터장은 지난 10월 1일(금)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주최 공개 토론회에서 “소상공인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접종 완료자에 대해 시간·인원 제한 등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라며 “일단 사회적 대응 방안으로 백신 패스제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백신 패스는 우리보다 먼저 위드 코로나 전환에 나선 유럽 주요국과 미국에서도 시행 중이다. 독일은 8월 23일(월)부터 ▲실내행사 ▲병원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 이용 시 ‘3G 룰’을 적용했다. 독일의 ‘3G(Geimpft, Genesen, Getestet)’는 ▲예방접종 완료자 ▲코로나-19 확진 후 완치자 ▲검사 결과 음성 확인자의 앞글자를 딴 정책으로, 이 중 하나에 해당해야 다중이용시설의 이용이 가능하다. 프랑스는 ▲지역 간 이동 ▲극장 ▲경기장 입장 시 백신 패스를 제시해야 하는 ‘보건 패스(Pass Sanitaire)’를 실시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백신 접종 상태나 음성 판정 이력,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된 사실을 보여주는 증명서인 ‘그린 패스(Green Pass)’ 제시를 모든 근로 사업장에 의무화하기로 했다. 미국 뉴욕시는 지난 8월에 현재 전 세계가 도입하고 있는 형태의 백신 패스를 가장 먼저 시행했다.
어느 가치가 우선인가
여러 국가에서 백신 패스를 도입하고 있지만 몇몇 국가에선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서구권 중에서도 엄격한 규제를 내놓은 이탈리아에서는 로마를 비롯한 북부 밀라노 등여러 지역에서 ‘그린 패스’ 제도를 반대하는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에서는 다중이용시설 이용 시 접종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4주 연속 열리기도 했으며, 독일은 7월 백신 패스 도입이 공론화되면서 “백신 접종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라며 기본권 침해라는 정치권의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시민과 정치권의 반발에 의해 백신 패스를 철회 및 보류한 국가도 있다. 일찌감치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영국은 백신 패스 의무 인증을 시행하려 했으나 시민과 정치권 반발에 밀려 계획을 철회했고, 스페인에서는 각 지방 고등법원에 의해 사생활 침해라는 판결을 받고 도입을 보류한 상태다.
국내에 백신 패스를 도입하는 것의 찬성과 반대 중 어떤 것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백신 접종 여부 하나만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맞는지에 관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 또한 이 문제는 모두의 기본권과 절대다수의 일상 회복 중 선택의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 어떤 정책이든 국민 100%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가치관과 살아온 환경 등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백신 패스 자체가 차별적 요소를 띄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의 반발은 있을 수밖에 없다. 최대한 논의 공감대를 넓혀 한국형 위드 코로나를 도입할 때, 어느 가치를 우선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중요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