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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상
소설 부문 최우수
기사 승인 2020-12-07 01  |  639호 ㅣ 조회수 : 369



Test Drive

허현정(문예창작학과·17)



그 애가 맨 뒷자리에서, 진짜로 외투가 하나도 없냐고, 코미디네 이거. 하고 외쳤을 때, 경이는 교실에 일종의 규칙 같은 게 생긴 것 같았다고 했다. 누구라도 전경 쟤를 감싸고돈다면 똑같이 조롱당하고 괴롭힘 당할 거라는 규칙. 그때 경이는 맨 뒷자리의 그 애들보다 바로 옆에 있던 짝이 더 무서웠다고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일정하게 흑심이 깎여 나가는 소리. 문제집이 넘어가는 소리. 그게 더 무서웠다고 했다.



그 애가, 아니 그 새끼가, 이래도 견딜 만 하냐? 하고 물었다고 했다. 눈이 쌓였던 그 날에. 이상하지. 이 섬에는 눈이 잘 내리지 않는데. 내리더라도 비처럼 흩날리다 녹곤 하는데 경의 방학식 날에는 이상하게도 눈이 쌓였다. 목소리 큰 새끼는 눈덩이를 꾹꾹 뭉쳐서 고등학교 내내 외투 하나 없이 다니던 경이의 왼편 어깨에 날렸다고 했다. 과녁을 맞히듯 퍽 소리 나게. 전경은 그때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외투 하나 못 살만큼 가난한 게 싫어서, 이렇게나 비참한데 꾸역꾸역 살아지기는 한다는 게 싫어서, 어쩌다 살게 되었는지 따지다 보니 결국 죽지 못하는 자기가 제일 저주스러워서. 그래서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경이는 겨울에 나에게로 왔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에 씹던 껌을 붙여 왔다. 난 경이 머리를 잘랐음 해서 물었다. 잘라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뗄 수도 있는데. 경은 그냥 떼 달라고 했다. 난 다시 물었다. 잘라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난 다른 전문 미용사들보다 손님을 꼬드기는 게 서툰 편이었고 경은 웃으면서 그냥 떼 달라고 했다. 세상에 아무 상처도 줄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력한 모습 때문에, 난 더 이상 경이에게 무언가를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빗에 무스를 발라 머리카락을 살살 빗어 내려가자 껌이 떨어졌다. 2년 동안이나 국비지원 미용학원을 다녔지만 거기서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다. 오히려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되었다. 무스 때문에 머리칼에 떡이 졌고 난 괜히 경의 머리카락이 만져보고 싶어서 샴푸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경은 얌전히 머리를 맡겼다. 눈이 작고 가느다랬고 콧구멍도 작았다. 입술이 작아서 처음에는 경이 뭐라고 말하는지 몰랐다. 그 애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머리 자르면, 짧아진 머리에 다시 붙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계속 자르다 보면 진짜… 까까머리가 될 것 같아서요.”

난 묵묵히 그 애의 머리칼을 만졌다. 아주 길어서, 동화 속에 나오던 머리 긴 공주가 생각났다.

“라푼젤 알아요?”

“네?”

“그 공주 같아요. 머리카락이 길어서.”



그 애는 가만히 누워서 웃기만 했다. 내가 자기한테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면서 나에게 작은 머리를 모두 맡긴 채였다. 따뜻한 물로 경의 머리카락을 헹구면서 이야기했다. 라푼젤이요, 걔가 보물 같던 자기 머리를 자르고 나서야 계모한테서 탈출했잖아요. 그러니까 까까머리 돼도… 괜찮을 거예요. 머리를 다 감기고 나서는 따뜻한 바람으로 그 애의 머리카락을 말려 주었다. 그땐 맨 뒷자리 아이들이 경의 뒷통수에 껌을 붙였다는 걸 몰랐다.



두 번째로 찾아왔을 때 경은 내 바람대로 머리를 잘라야 했다. 의자에 앉은 경의 뒤통수가 누군가 할퀴기라도 한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위질을 시작했다. 사각사각. 덤덤해 보이던 경은 머리칼이 잘려나가기 시작하자 숨소리 하나 없이 울기 시작했다. 난 소리 없이 우는 사람을 처음 봐서 경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조용히 우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니까, 나 빼고는 아무도 조용히 우는 줄 몰랐다. 전경. 난 교복에 달린 명찰을 보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경이. 경이씨.



“화 풀릴 때까지 내 머리 잘라도 돼요.”



그땐 경이라는 사람이 내게 상처를 줬으면 했다. 이 세상엔 아무런 상처도, 조그만 생채기 하나조차 낼 수 없다고 해도, 한명의 세상에만큼은 흔적을 남길 수 있단 걸 알아줬음 했다. 그리고 망쳐놓은 날 보고 알았으면 했다. 제가 마냥 착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제 마음속에도 남들과 같은 사탄이 있다는 것을.



도리질을 하던 경은 막상 내가 손에 가위를 쥐어주자 서슴없이 내 머리카락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위질을 하는 내내 울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고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에도 작은 입으로 꺽꺽대며 울었다. 내 머리칼이 목덜미에 닿을 정도가 되어서야 울음을 그친 경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우리 오늘 같이 있을까요. 난 그걸로 괜찮다는 말을 대신하고, 엉망이 된 머리를 다듬는 사이 경은 눈물자국을 지웠다.



우린 그날 퇴근하는 조선소 사람들에 섞여들어 오토바이를 탔다. 경은 드디어 이 도시의 일부가 된 것 같다고 소리 질렀다. 우리는 그날 이 도시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모든 도로를 달렸다. 짧아진 내 머리카락은 더 이상 헬멧 아래로 삐져나오지 않았지만 속도를 높일수록 헬멧 아래 경의 머리카락은 더욱 세차게 나부꼈다. 사실 학교에서 어떤 애들이 날 괴롭혀요. 경이 내 귀에 대고 말했고 난 그날부터 전경을 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는 관성처럼 미용실로 그리고 학교로 돌아갔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계속 자라듯 맨 뒷자리 아이들의 괴롭힘도 계속되었다. 경이는 교과서를 두 권이나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교실 쓰레기통에서 찾았다고도 말해주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건 어때, 나처럼. 그렇게 물었을 때 처음으로 경이의 부모님 이야기를 들었다. 두 분 모두 중졸이어서 경이만큼은 가방끈으로 서러운 일이 없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원이라는 이야기였다. 경이는 가방끈 때문에 서러웠던 일은 한 번도 없어도 돈이 없어서 서러운 적은 많았다고 했다.



“외투만 있으면 안 괴롭힐 거야. 내가 가난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우리는 D백화점에도 가보았다. D백화점은 이 섬에 있는 유일한 백화점이었다. 이 도시에선 어딜 가든 섬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고 그건 내가 이 도시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경이는 모자가 달린 검은색 외투 앞에서 멈춰 섰다. 자길 괴롭히는 애들 중 하나가 입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모은 만큼 두 번만 더 모으면 저걸 살 수 있어. 경이는 주머니 속에서 지폐 몇 장을 세게 쥐었다.



경이는 외투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그래 봤자 삼 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집에 있는 외투는, 그러니까 중학교 때 산 외투는 지금은 너무 작아져서 입을 수가 없다고 했다. 경이는 꼬박 몇 달을 모아 그 돈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검게 빛나는 걸 갖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걸 가진다고 해서 그 애들과 같아질 수는 없을 거란 사실까지도 잘 알았다. 간절히 원하고 힘들여 산 것은 경이를 더 절망하게 만들 것 같았다. 난 경이에게 그걸 사 주었다. 경이가 좋아했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



검게 빛나는 오토바이가 가지고 싶었던 적이 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저마다 오토바이를 끌었다. 그걸 타고 조선소로 출근했고 해가 지기 전에 퇴근했다. 버스를 타고 조선소를 지나가면 검은색 오토바이들이 반 정거장 정도나 되는 거리를 빼곡히 채우는 것을 보았다. 그 오토바이가 가지고 싶었다. 그 많은 오토바이 중 하나를 훔쳐서라도 가지고 싶었다.



오빠는 오토바이를 몰고 막노동을 하러 다녔다. 나도 오토바이를 몰고 싶어. 그렇게 말하자 오빠는 나를 그 뒷자리에 태워주었다. 오빠의 등 말고는 그다지 본 것이 없었다.



오빠는 고등학교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다리를 만들었다. 팔 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다리이기 때문에 막노동 할 사람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다리는 이 썩어빠진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했다. 이미 육지로 나다닐 수 있는 다리가 있기야 하지만 부산 같은 대도시와 연결되면 훨씬 좋을 거라고 했다.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섬이 싫었기 때문에 그 다리가 생긴다면 부산으로 떠나버릴 수 있다는 점 하나는 좋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 잘난, 팔 킬로미터나 되는 대교를 달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오빠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 다리를 짓는 공사판으로 출근해 돈을 벌었다. 나도 돈을 벌어서 오토바이가 사고 싶었지만 그 공사가 시작되었을 즈음 난 고작 갓 나온 미용 자격증 하나밖에 없는 말라깽이 여자애였다. 나 같은 여자애를 받아줄 만한 공사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난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행청소년인 것도 아니었으므로 묵묵히 다른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머리카락이 더 많이, 더 자주 잘려나갈수록 나는 더욱 오토바이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꼬박 여섯 달을 모아 오토바이를 샀다. 이 섬의 굵다란 도로들을 새까맣게 덮는 사람들의 것처럼 검게 빛나는 오토바이였다.



이 도시 사람들은, 물론 섬사람이기 때문이란 게 한 몫 하겠지만 대체로 보수적이어서 오토바이 타는 여자를 아주 못 견뎌했다. 헬멧 아래로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오토바이를 모는 건 싸구려 자동차를 모는 것과 비슷했다. 곳곳에서 다른 차들이 끼어들었고 툭하면 위협하는 경적소리가 돌아왔다. 그러니까 경이가 내 머리를 짧게 잘라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잘 된 일이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경이가 내 허리께를 안으면 우린 어쩐지 불량 연인 같은 냄새를 풍길 수 있었다. 경이는 교복을 입고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불량해 보였다.



우리는 자주 오토바이를 탔고 가끔은 나의 작은 자취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가서 살겠다고 하니 오빠가 얻어준 집이었다. 경이가 가져온 디브이디를 시디롬에 꽂자 느긋한 서부 영화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 춤을 추었다. 남자는 웃으며 여자에게 입을 맞추다 여자가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자 가차 없이 그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옷을 벗기려 했다. 그때 총 소리가 났다. 여자의 친구가 남자에게 총을 쏘았다. 남자는 죽었다. 둘은 차를 몰고 도망쳤다.



맨 뒷자리 애들이 이걸 보고 있었어. 경이가 말했다. 도서관 컴퓨터 모니터 앞에 모여서 이걸 보고 있더라. 탕 소리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있다 그 애들이 투덜대면서 나갔어. 그게 뭔지 궁금해서 이 영활 빌렸다. 경이는 그 뒤로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 사이 영화 속 두 여자는 끝도 없어 보이는 도로를 쉬지도 않고 달려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런 걸 보고 웃을 수 있었던 맨 뒷자리 애들을, 얼굴도 모르고서도 저주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둘은 차를 몰고 도망쳤다. 경찰에 자수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 차는 절벽을 향해 질주하다 허공으로 날았다. 끝도 없이 날아갈 것 같다. 경이가 말했다. 그러게, 영영 날아갈 것만 같다.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그 둘이 결국엔 아래로 떨어졌을 거란 사실을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린 그 뒤로 오토바이를 탈 때마다 도망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경이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도망치는 게 맞기는 했다. 우리는 이 섬의 사람들이 출퇴근하는 커다란 도로 대신 해변가를 달렸다. 가장자리로, 조금 더 가장자리로 향할 때마다 바다가 가까워졌다. 영화 속에서는 절벽이 있어 델마와 루이스는 영원히 날아갔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닷가를, 바닷가나 빙빙 돌면서 먼 곳으로 돌을 던졌다. 가장자리를 따라가다 오빠가 짓고 있다는 그 다리 근처를 지나기도 했다. 이제 난 조그만 여자애였을 때보다 나이도 들었고 오토바이도 가지고 있었지만 나 같은 애를 써줄만한 공사장은 여전히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출퇴근하는 수많은 오토바이들 속에 끼어 있어도 나와 경이만이 여전히 미용실로 향했다. 저 다리를 다 지으면 우리 꼭 부산엘 가 보자. 거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이야기했다.



더 이상 눈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바닷바람은 여전히 찼고 경이는 검은색 외투를 입고 섬 특유의 울퉁불퉁한 땅을 밟으면서 학교로 갔다. 경이가 다니는 J고등학교는 근방에서 입학 커트라인이 가장 낮은 곳이었다.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인문계에는 들어가야 했던 아이들이 J고로 몰렸다. 학교 담을 넘어서 담배도 피우고 가끔은 술도 마시는, 더 가끔은 오토바이도 모는 애들이었다. 그 애들은 어느 반엘 가나 맨 뒷자리에 모여 있었다.



경이가 외투를 입고 교실로 들어가자 맨 뒷자리 애들은 하고 있던 이야기를 멈췄다고 했다. 그리고 눈동자를 굴려 경이가 자리로 가는 걸 죽 쳐다봤다고 했다. 그 애들이 입을 다물어서 온 교실이 조용했다. 쟤 혹시 원조 하나? 고작 그 말이 침묵을 깼다. 똑같은 외투를 입고 있던 애가 경이에게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옷 샀네.”

“응.”

“산거야?”

“응?”

“네 돈으로 산거냐고.”



몇몇 아이들이 킥킥대기 시작하자 경이는 망설였다. 그래도 대답했다.



“아니, 선물 받은 거다.”

“대주고?”



맨 뒷자리 애들은 또 겨우 이런 것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애들을 빼고는 아무도 웃지 않아서 교실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 애는 아이들을 웃긴 것으로 만족했는지 경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뒷자리로 돌아갔다. 어깨를 누르는 그 무게가 어째 눈덩이에 맞았던 그것과 비슷해서 경이는 방학식 날이 떠올랐다고 했다. 제 가난이 세상의 눈에 띄어버린 날, 그리고는 세상이 저를 외면해도 괜찮다고 선을 그어버리던 날. 그 외면에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가난한 자기를 탓했던 날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경이는 입을 열었다고 했다.



“아는 언니가 사 준거다.”



그건 경이의 마음속에 있던 사탄이 말한 것이었다. 평소의 경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말에 맨 뒷자리 아이들은 벙쪘다고 했다. 경이는 그 애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그렇게 말했다는 걸 꽤 자랑스러워했고 그 애들이 제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는 것에 퍽 통쾌해했다. 나는 경이에게 말해주었다. 최고라고. 그리고 말했다. 다음에는 네가 오토바이를 몰아 봐. 우린 그날도 오토바이로 주변을 돌아다니던 참이었고 경이는 좋다고 대답했다. 경이가 머리칼을 날리며 도로를 가르는 게 보고 싶었다. 경이야말로 그런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맨 뒷자리 아이들은 몇 마디 말로 경이를 향한 괴롭힘을 그만둘 만큼 유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곧 얼굴도 모르고 저주하던 그 애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 종종 오토바이로 경이를 데리러 오는 나를 봤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맨 뒷자리 애들이 원조교제에 대해 떠드는 것을 몇 마디 들었을 것이고, 몇 가지 말도 안 되는 추측이 돌고 돌아 다시 그 애들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맨 뒷자리 아이들이 하교하던 경이를 따라온 것일 테다. 내가 누군지 보고야 말려고.



그 애들은 나에게 인사하는 경이를 불러 세웠다. 야, 전경. 네가 말하는 언니가 저 사람이가? 그 애들은 특종이라도 잡은 것처럼 즐거워했다. 그 애들은 경이를 둘러싸고 대답할 새도 없이 경이에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원조 아니라매. 대 준거 아니라매.”



그리고 미친년아, 누구 놀리나? 똑같은 패딩 따라 사게. 외투 옷깃을 붙잡은 손에 경이는 맥없이 흔들렸다. 경이는 고개를 숙인 채 그 애들의 신발 끝을 쳐다봤다. 그 애들은 계속해서 쏘아댔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 머리가 짧은데 누가 아는 언니야. 대줬지? 그 애들이 그렇게 말하기에 나는 헬멧을 벗었다. 야, 개새끼야! 그 말이 그냥 나왔다. 난 경이의 옷깃을 붙잡았던 손을 떼어냈다.



“내가 사 준건데 무슨 상관인데?”

“얘한테 그딴 걸 왜 사줘? 돈 없어서 수학여행도 못 간 년한테.”



꺼지라고, 그렇게 말하고 경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등을 돌렸을 때 그 애들이 뒤에서 외쳤다.



“그거냐? 호모년들?”



양아치 새끼들. 난 그렇게 읊조리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그 애들이 웃었다. 양아치 새끼들! 나는 크게 한 번 더 그 단어를 외쳤다. 그네들이 무어라 외치는 소리를 뒤로한 채 우리는 아주 먼 바닷가까지 달렸다. 근처에 있는 바닷가는 모조리 이 섬의 가장자리였다. 나는 정말로 이 도시가 싫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도시가 나를, 경이를 먼저 미워했는데. 그래서 우리는 오토바이도 사고 검은 외투도 샀는데, 이 도시는 도저히 우리가 낄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경이를 데리고 가장자리로 도망쳤다.



경이는 머리를 자르러 왔던 그날처럼 울지 않은 척 했다. 숨을 헐떡이지도 않고 조용히. 그 애의 작은 어깨를 안아주자 경이는 조금씩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더 크게 울어. 세상이 네가 울고 있단 걸 알 수 있을 만큼. 경이가 어깨를 들썩였고 내 눈에는 바닷가가 보였다. 우리는 또 여기에 오고 말았다. 나도 못 가봤어. 수학여행. 그 말로 경이를 위로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경이랑 나는, 그걸 수학여행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자취방에서 그날 하루 밤을 같이 보냈다. 수학여행에 가면 뭘 해? 내가 물었고 경이는, 어른들 몰래 술 마시고. 비밀 이야기 하고.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경이의 말대로 우선 술을 사러 갔다. 일행이 아닌 척을 하며 편의점에 들어가 술과 이것저것들을 담았다. 계산을 하고 가게 밖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주인을 골탕 먹였다는 기분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바보들, 머저리들. 우리는 그런 이름으로 누군가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냥 이 섬의 모든 사람들을 비웃으며 구석진 골목으로 숨었다. 그 자리에서 맥주 한 캔씩을 마셨다. 경이는 대체 이런 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거냐며 퉁퉁거렸다. 담배를 태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경이는 수학여행에 가서 담배를 태우는 애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난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경이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줄 알기로 했다.



우린 자취방에 들어가 남은 비행을 계속했다. 착실하게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니는 왜 고등학교엘 안 갔어? 그때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거든.



엄마는 죽음마저도 뻔하고 싱겁고 조용했던 사람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두었던 것, 그 때문에 낮에는 식당 일을, 밤에는 청소 일을 했던 것. 아빠가 사표를 던지고 나온 그 조선소를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한 새벽에, 갑자기 심장의 혈관이 막혔던 것. 그래서 아무도 없던 도로에서 두 시간이나 누워 있었던 것. 그 모든 것들이 싱거웠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세상이 조용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나는 자퇴할 수 있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빠는 막노동꾼으로 조선소에 돌아갔다. 사장님이라고 불리고 싶어 했지만 어이, 라든지 거기라고 불렸다. 그 남자의 얼굴이 싫었다. 꿈을 포기할 거라면 엄마가 죽기 전에나 포기하지. 진즉 포기했다면 엄마는 살았을 지도 모르는데. 당신 같은 남자의 꿈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리다 죽지 않고 평범하게 살다가 죽었을 지도 모르는데.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그는 손을 들었다. 그걸로 날 때리지는 않았다. 그 날 이후 오빠는 내게 이 월세 방을 얻어줬다. 잘 된 일이지. 나는 그 정도로 그 모든 이야기를 정리했다.



“슬픈 이야기를 해도 안 우네, 언니는.”



경이는 내가 그런 표정을 할 땐 차라리 울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언니는 나한테 머리카락을 내줬잖아. 그래서 나는 울 수 있었잖아. 방금 전에도, 실컷 울라고 그래서 실컷 울 수 있었잖아. 경이는 날 안아주었다. 나는 술에 취해 중얼거렸다. 가끔은 아주 못된 사람이 되고 싶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다른 사람에게 아주 큰 흉터로 남을 만큼. 경이가 양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그리고 말했다. 나한테는 그래도 돼. 라고.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았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처음인 입맞춤이 되었고 아주 큰 흉터가 되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바람 때문에, 몸부림 때문에 창문이 자주 흔들렸고 바닥이 너무 차서 서로의 몸에 들러붙었다. 맥박이 뛸 때마다 경이가 예뻤다. 맨 뒷자리 애들이 할퀴고 간 경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자 그의 등허리에 맺혀있던 땀이 고여 흘렀다. 우리의 숨과 함께 고여 흘렀다.



서로에게 이렇게나 큰 흉터가 될 수 있는 우리가, 어째서 세상에는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는 걸까. 세상은 왜 우리를 따돌리는 걸까. 우리는 왜 그런 세상에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할 만큼 착해 빠진 걸까. 내 안에도 분명 사탄이 있을 텐데, 경이 안에도 있을 텐데.



경이를 안으면서 나는 다짐했다. 세상을 용서하지 않기로, 미워하기로. 더 이상 이 도시의 일부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기로.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따돌리기로 결심했다.



“언젠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타자.”

“너만? 아니면 우리 둘 다?”

“우리 둘 다. 진짜 멋지겠다.”



경이는 아닌가, 유치한가. 그렇게 덧붙였다. 삼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면 같다고 했다. 꼭 스쿠터에 색색깔 풍선을 달아놓고, 남자 주인공에게 달려가는 신부가 생각나잖아. 난 유치하지 않다고 말했다. 왜냐면 너도 신부고 나도 신부이니까. 우리는 그게 농담이라도 된다는 양 깔깔대며 웃었지만 사실 그건 우스워서 웃는 것에 가까웠다. 흰 드레스를 입고 오토바이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평범한 냄새 같은 건 풍기지 못할 테니까. 경이가 말한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그래서 우스웠다. 우리는 이 도시가 되지 못할 거야. 우린 새까만 물결 속에서 눈에 띄게 거슬리는 흰 거스러미가 될 거야. 그리고 사람들의 신경을 벅벅 긁을 거야. 나는 우스워서 웃었지만 경이는 정말로 그러고 싶어서 웃었다. 그런 경이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이 정도였다.



“정말 멋질 거야.”



정말 멋질 거야, 못돼 처먹은 우리들의 모습은. 경아, 네가 말한 대로 우리 넘실거리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며 달리자. 썅년들. 우린 썅년들이 될 거야. 불량 연인들보다 더 불량해 보일 걸. 너를 괴롭히던 양아치들은 잽도 안 되게 말야. 쌔카맣게 그을린 노가다꾼들이 땀 흘려 지은 다리의 가랑이를 찢으면서 달리자. 우리, 달려서 꼭 그 너머로 가자. 그리고 거기서 살자.



우리의 머리카락이 자라듯 이 섬과 부산을 연결해줄 거라던 그 다리도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오빠는 백수가 되었다. 백수 된 거 축하해. 그렇게 문자를 보냈지만 오빠는 답이 없었다. 시내에는, 그러니까 시청 앞에는 다리의 완공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기념식에는 이 섬과 부산의 시장과, 무슨 무슨 건설사 사장들이 모일 것이라고 했다. 만약 리본을 자르게 된다면 그들이 아니라 그동안 햇볕에 살을 그을린 막노동꾼들이 잘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이 한 줄로 서려면 다리의 끝과 끝으로 길게 늘어서야 하겠지만. 나는 조소를 날리면서 그 현수막 앞을 지나쳤다.



오토바이로 집에 도착했을 때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담배를 태우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엔 겁에 질린 경이도 서 있었다. 나는 헬멧을 벗고 오빠에게 걸어갔다. 인사말 대신 뺨 위로 매가 날아왔다. 아팠다. 오빠는 독사같이 눈을 부라리며, 미친년, 하고 말했다. 난 얻어맞은 뺨에 손을 얹고 오빠를 노려봤다. 오빠는 담배를 건물 벽에 지져 껐다.



“고등학생 여자애를 꼬셨나?”

“왜. 뭐. 내가 뭘 잘못했는데?”

“꼬셔서 오토바이에 태웠나? 그러고 사람들 다 보라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녔나? 우리는 호모년들이에요, 광고하면서?”



넌 가. 난 경이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빠는 어딜 가냐고 했다. 움찔거리던 경이는 내가 가라고 소리치자 뛰어서 골목으로 사라졌다. 교복 치마가 지느러미처럼 사라졌다. 그걸 보고 있자 오빠가 내 머리채를 잡았다. 시퍼런 눈을 맞추면서 말했다. 남자가 되고 싶나? 남자가 되려고 이렇게 머리카락도 자른 거냐고. 아니야 씨발! 오빠의 손은 우악스러웠고 난 그걸 떼어내려고 악썼다. 오빠는, 너 같은 년은, 남자 맛을 봐야 정신을 차려. 하면서 내 머리통을 던질 듯이 팽개쳤다.



오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산을 들어 몇 없는 살림을 부수기 시작했다. 더러운 년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행거와, 서랍과, 신발장과 반찬 통들을, 벌레 잡듯 주저 없이 때렸다. 한겨울에 땀을 흘릴 만큼. 오빠는 이불을 가위로 다 찢어놓고 나서야 속이 시원한 듯 숨을 몰아쉬었다. 우산은 이미 뼈대를 내보이며 터진 이불 위를 뒹굴고 있었다.



오늘 당장 집으로 들어와. 오빠는 그렇게 통보하고 집을 나갔다. 그 집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경이가 유일하게 우리일 수 있었던 곳이, 썅년일 수 있었던 곳이 난도질당한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빠처럼 난 집을 나섰다.



할 수만 있다면 좀 전의 나를 죽이고 싶었다. 오빠를 동정하며 현수막 아래를 지나가던 나에게 주제도 모르는 년, 하고 말하며 상처 주고 싶었다. 오빠 역시 이 도시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도 모르고 감히 그를 동정하던 나를 죽이고 싶었다. 누가 누굴 동정하느냐고, 똑똑히 말해주면서.



집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어서 난 며칠 후면 개통된다는 그 다리로 향했다. 해가 져서 조선소 사람들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고 난 그들의 반대 차선으로 달리며 그들을 저주했다. 단 한 번도 나를 저희들과 같은 곳에서 달리도록 허락해주지 않은 그들을 저주했다. 그들을 저주하는 동시에 나를 저주했다. 말라깽이 여자애로 태어난 것을 저주했고 그런 주제에 경이를 좋아하게 된 것을 저주했다. 세상에 흠집 하나조차도 결코 낼 수 없을 거란 패배감. 그걸 느낄 때마다 나는 세상 대신 만만한 나를 저주했다.



경아. 나는 도로변에 멈춰 서 경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경이는 망설이다가, 괜찮아? 하고 물었다. 나올래? 경이는 지금 바로 나가겠다고 했다. 드라이브 해줘. 응? 운전 연습이라고 치고. 응. 경이는 그것도 그러겠다고 했다. 경이는 흰색 목도리를 하고 왔다. 흰 원피스, 그런 게 집에 없어서 흰 목도리를 매고 왔다고 했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다리 근처로는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고 경이는 거기서 운전대를 잡았다. 겁도 없이 오토바이를 잘도 몰았다. 나를 뒤에 태운 경이는 다리의 입구로 향했다. 거기엔 큰 표지판이 있었다. 이륜자동차 통행금지라고 쓰인, 아주 높고 큰 표지판이.



우리 그냥 가면 안 될까. 가서, 새로운 도시에서, 거기서 같이 살면 안 될까. 나는 경이의 등에 고개를 묻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걸 들었는지는 몰라도 경이는 다시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운전 연습이니까, 하고 말하면서 속도를 높였다. 경이의 흰색 목도리가 날렸다. 깃발처럼 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 그걸 낚아채서 꼭 쥐고, 경이의 허리를 안았다.



새로운 곳에 도착한다면 우리 그저 우리로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썅년이나 더러운 년들 말고 그냥 우리. 더 이상 패배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눈을 뭉쳐 던지고 뺨을 때리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먹을 날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럼 좋겠다. 경아, 너랑 살면 좋겠다.



나도 그래. 경이가 분명 그렇게 대답했을 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워졌다. 경찰은 하이빔을 켜고 오토바이를 멈추라고 소리쳤다. 경이는 멈추지 않았지만 경찰차는 점점 빠르게 다가왔다. 번쩍거리는 하이빔과 경광등 불빛에 눈이 부실 때 즈음 양 팔로 꽉 안고 있던 경이가 허리를, 온 몸을 덜덜 떠는 걸 느꼈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경이가 급하게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경이는 속도를 조금씩 줄이다 클러치를 세게 쥐었다. 우리는 곧 타이어가 찢어질듯 한 소음과 함께 오토바이 아래로 굴렀다. 오토바이는 쓰러져 있었고 모로 누운 내 시야로 천천히 굴러오는 경찰차 바퀴가 들어왔다. 손목에 감았던 목도리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그냥 눈이 많이 부셨다. 텅. 경이는 헬멧을 벗어던졌나.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자 경찰이 다가와 내 어깨를 꽉 누르고 헬멧을 벗겼다. 여자 분이셨네요? 경찰은 그렇게 말했다.



여자애들 둘이서 위험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타세요! 경찰이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말했다. 우리는 나란히 경찰차 뒷자리에 올라탔다. 경이와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다른 경찰차들이 우리가 탄 차를 앞질러 가는 동안 나는 세상이 항상 나를 앞질러 간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번에도 세상은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고 거기에 나는 없었다. 어두운 바다와 조선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경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처럼 눈치 챘을까. 세상은 언제나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린다는 그런 생각을, 따돌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경찰서에 도착해서 경이의 얼굴을 봤다. 많이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대신 목도리는 누더기처럼 찢어져 있었다. 아스팔트에 갈려서 길게 찢어진 구멍 주위로 묻은 검댕이 꼭 핏자국 같았다. 세상에 패배하는 것이 우리의 잘못은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린 영영 이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영 우리를 탓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썅년이라고 부르면서 영영 탓할 것이라고.



경이에 대한 기억은 그때에 머물러 있다. 경이가 잘라준 머리는 가슴께까지 길었다. 경이의 머리도 길었다면 처음 만났을 그 때만큼 자라 있겠지. 아마 대학에 갔을 것이다 경이는. 가방끈으로 서럽지 않았음 좋겠다던 부모님의 말대로.



그 날, 운전 연습을 하던 날 경이의 부모님을 만났고 경이는 날 애인이라 소개하고 싶어 했다. 그러지 못하게 한 건 나였다. 뺨을 맞던 순간, 물고기처럼 경이가 사라지던 순간을 그 애에게 주고 싶지 않았고 그랬던 난 이참에 맨 뒷자리 아이들을 탓하자고 했다. 그 애들의 괴롭힘 때문에 죽고 싶었다고. 아무도 없는 도로를 달리다 그냥 콱 죽어버리려고 했다고. 나는 때마침 죽고 싶어 했던, 오토바이를 빌려준 사람 하나일 뿐이고.



우리는 결국 경찰 앞에서 입을 꽉 다물었다. 벌금이 나왔고 경찰은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경이는 자꾸 엄마 아빠가 나에 대해 묻는다고 했다. 어떻게 알게 된 미친년이냐고. 뭘 하는 여자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꼬드겨서 오토바이에 태우느냐고.



경이가 이 도시의 민낯을 보지 않았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단순한 나의 이기심이었을까. 사실은 맨 뒷자리 애들뿐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우릴 따돌린다는 걸 경이는 알지 못했음 했다. 그냥 같이, 콱 죽으려고 한 거예요. 난 그렇게 나를 변명하기 위해 경이네 학교로 갔다. 경이의 담임을 만났다. 맨 뒷자리 애들이 경이의 어깨로 눈을 던지던 것, 머리를 잘라버린 것, 교과서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것을 모두 말해도 선생은 미동이 없었다. 조심하도록 교육시키겠습니다. 그런데 경이와 어떻게 되십니까. 선생이 물었고 경이 애인이요, 그 대답은 하지 못했다.



난 여전히 그 오토바이를 타고 이 섬을 들쑤시고 다닌다. 이 도시에서 바다가 보이는 모든 도로를 달리며 모든 가장자리를 뱅뱅, 돌아다닌다. 그 날, 그 다리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면 우린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날아갈 수 있었을까. 그게 나았을까.



여전히 해가 질 시간이면 조선소 앞 큰 길을 따라 까만 오토바이들 무리가 도시를 덮는다. 가슴께까지 머리를 기른 내 앞으로 서슴없이 그네들이 끼어들고, 나는 가만 멈춘다. 정지한 오토바이에서는 낮은 엔진 소리가 난다.



조금만 기다리면 신호가 바뀐다는 걸 안다. 계속해서 이 섬을 들쑤시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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