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획일화된 세상, 의대 블랙홀
김도현 기자 승인 2023.07.03 09 677호

 지난 5월 23일(화) MBC 시사 프로그램 에서 초등학생부터 의대를 준비하는 현실을 다뤘다. 지난달 21일 종로학원이 초·중등 학부모 각각 676명, 719명 등 1,395명을 표본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88.2%가 자녀가 이과로 진학하길 선호하며, 그중 의료 계열이 전공 선호도 1위로 꼽혔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지방 의대가 지역 출신 고교생을 뽑는 지역인재 전형이 확대되며 대치동 등 일부 지역에서만 유행하던 ‘초등 의대반’이 지방까지 번진 상황”이라며 “의대 정원 증가는 이런 흐름을 가속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들이 의대를 선호하는 이유는 적성이 아닌 돈과 안정성 때문이었다. 한창 꿈을 꾸고 적성과 특기를 찾아야 하는 연령대임에도 그들의 목표는 하나로 수렴되고 있으며 그 나이 또한 내려가고 있다.




초등 의대 준비반?

 어린 나이부터 의료계를 준비한다는 뉴스가 많아졌다. 한 유튜브 채널의 길거리 수학 챌린지 콘텐츠에서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이 고등학교 수학 문제의 정답을 맞힌 일도 있었다. ‘사교육의 메카’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 의대반’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원비는 주 1회 월 50만 원 안팎이며 학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입학시험도 거쳐야 하며 2020년만 해도 2~3명 소수로만 운영해 온 초등 의대 준비반의 정원이 13명까지 늘어났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학원들은 입학 고사를 통해 ‘초등 의대반’을 뽑는데 경쟁률 10대1이 넘는 예도 있으며 입학 고사를 위해 과외까지 받는다.



 최근 ‘초등 의대반’의 유행은 지방 읍 단위까지 확산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 양원을 넘어 충남 홍성군의 한 읍에 있는 곳까지 ‘초등 의대반’이 개설됐다. 의료계 진학을 목표로 한 학부모의 요청이 반영돼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분야별로 적성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고 10대들이 다양한 직업군을 접하고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얻는 게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의학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절대다수일까? 이러한 문제는 10대에게 한정돼 있지 않았다.



▲의대반을 다니고 있는 초등학생에게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MBC 시사 프로그램 인터뷰 재구성)


서울대도 휴학,

전부 의대로


 올해 입시 철을 지나면서 의대 쏠림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크게 대두되고 있다. 2022년도 서울대학교의 자퇴생은 238명, 4대 과학기술원(KAIST, GIST, DGIST, UNIST)과 포스텍 자퇴생은 지난 5년간 1,105명이며, 올해 서울대학교 신입생의 약 6.2% 정도인 225명이 휴학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의료계 입시를 위해 다시 수능을 준비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자연 계열 우수 학생을 전부 한 점으로 빨아드리고 있다 해서 이른바 ‘의대 블랙홀’이란 단어도 나왔다. ‘의대 블랙홀’이 심각해진 원인을 연대 세브란스병원과 한림대의료원 전문의 이상 10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복수 응답)한 결과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을 걱정 안 해도 되기 때문(70.2%) ▲사회적 인식과 대우 때문(63.4%) ▲돈과 명예(42.3%) ▲천직이라는 사명감 때문(29.8%) 등이 의료계에 몰려드는 이유로 꼽았다.



 의대 정시 합격생 가운데 3수 이상 비율이 40%가 넘기에 이젠 ‘고시 낭인’이 아닌 ‘의대 낭인’이란 단어가 생겨야 할 판이다. 전문가들은 ‘의대 블랙홀’의 대책은 의사가 가진 지위를 낮추기보다는 과학자의 처우를 개선해 주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하는 방안으로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의대 합격선 고공행진,

자연 계열은 글쎄…


 과학 인재의 처우 개선으로 위와 같은 현상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지만 합격선의 추세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종로학원이 대입 정보 포털 ‘어디가’에 공개된 2020∼2022학년 SKY와 전국 31개 의대 정시 합격생의 수능 성적 백분위 평균 합격선(상위 70% 컷)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의대 평균 합격선은 2022학년 97.9점으로 2020∼2021학년도 97.4점에 비해 0.5점 상승했다. 반면 SKY 자연 계열의 평균 합격선은 ▲2020학년 95.0점 ▲2021학년 94.6점 ▲2022학년 94.4점으로 매년 하락했다.



 SKY 자연 계열과 의대와의 평균 합격선 격차를 살펴보면 ▲2020학년 2.5점 ▲2021학년 2.7점 ▲2022학년 3.5점으로 3년간 계속해서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 자연계와 의대와의 평균 합격선 격차도 2022학년 2.6점으로, ▲2021학년 2.0점 ▲2020학년 2.2점에 비해 더욱 커졌다. 종로학원은 SKY 합격선이 낮아지고 있는 원인으로 학령인구 감소, 의대 쏠림 등을 원인이라 밝히며, 입시전문가들은 “학령인구는 감소했는데 주요 대학의 입학 정원은 줄지 않았고 첨단학과 등 일부 학과에서는 증원하고 있어 합격선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점수 격차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의사만이 길이 아니다,

교육 개편 절실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 후 30년간 부작용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의대 선호 현상이 심화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유명 대기업의 연구원들을 구조 조정하며 월급쟁이의 직업 안정성이 심각하게 흔들린 탓이다. 최근에도 50대 초중반이 되면 기업 임원이어도 직장에서 눈치를 주거나 권고사직하는 것을 보면 ‘평생 직업’의 전문직 선호가 강해지는 것이 ‘의대 쏠림’ 문제로 표출된 것이다. 다양한 꿈을 가질 수 있는 인재들이 전부 의대로 쏠리는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되는 현실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김홍석 교수(이하 김 교수)는 “수능을 미국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SAT)처럼 자격고사화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며 “지금은 아무리 수능의 출제 방향 등을 개편해도 결국 남보다 잘 보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초·중·고 교육 과정에 창업·직업 창출 교육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에게 재능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거리를 창조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중·고교생들이 동아리나 클럽 등 다양한 학교 밖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재능과 관심사를 스스로 찾도록 해야 한다”며 “교사의 역할도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적극적인 코칭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자율전공학부와 비슷하게 대학에서 첫 2년 동안은 전공을 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전공 미지정(undeclared major)’ 상태로 입학해 기초적인 과목을 기반으로 다양한 수업을 선택해 듣고 경험한 뒤 3학년 때 전공을 택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우물을 파는 건 대학교 3학년 때부터 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자신의 관심, 열정, 특기와 무관하게 고소득, 대세, 간판을 생각하고 전공을 고르면 결국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없을 것이다”며 “그렇게 되면 일하는 본인도 불행해지지만, 그 사람을 믿고 함께 일하는 주위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의대 쏠림 현상은 결과적으로 ‘불행한 개인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한국의 입시제도를 지켜봐 온 김 교수는 “많은 부모가 군중심리에 사로잡혀 사교육에 사로잡혀 있다”며 “정부 또한 ‘대중의 비판’이란 두려움에 묻혀 수능 개편보다 더 나은 새로운 시도를 못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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