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율 (ICT·24)
필자는 거친 회색 갱지 위를 다채로운 이야기로 색칠해 나가는 일을 한다. 나만의 이야기 위로 사진을 붙이고 취재원의 온기와 정을 담으며 한 장의 기사라는 작품을 완성해 신문이라는 전시장에 전시한다. 하지만 그 작품의 색은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다.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 신문은 그저 검은 글자와 흑백 그림이 들어간 칙칙한 회색 갱지일 뿐이다. 어떤 이야기가 담기든 간에 읽히지 않는다면 그 안에 담긴 다채로운 작품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필자는 항상 초대장을 건네본다. 수없이 지우고 고쳐가며 고이 접어낸 그 초대장은 기사의 시작점에 자리를 잡고 독자의 시선과 흥미를 끌며 무심히 지나치려던 회색 신문지 앞에 잠시 발을 멈추게 만든다. 한참을 공들여 만든 전시인 만큼 많은 사람이 오게 만들고자 초대장을 꾸미는데도 한껏 힘을 쓰며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때로는 취재 현장에서 들었던 짧은 한마디가, 때로는 수 시간 동안 끙끙 싸매며 고민하다 떠오른 비유 하나가 초대장으로 탈바꿈하곤 한다. 저번 기사에서도 그랬다. 한국 위스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기획 기사 “한 잔에 담긴 향과 시간, 한국 위스키 이야기”에서 필자는 이렇게 초대장을 보냈다.
▲ 기원 위스키 증류소 내 위치한 증류기
“한국의 밤은 소주와 함께 시작되고 맥주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두 술은 북적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워가며 한국의 술자리를 이끌어 나갔지만, 위스키는 그사이 어디에도 끼지 못하던 값비싸고 낯선 술이었다”
이 초대장은 독자들을 잠시 신문 앞에 멈춰 세우며 낯선 술에 관한 관심을 끌게 했다. 한국 술자리의 주역인 소주와 맥주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던 위스키는 초대장으로 독자들에게 소개됐고 흥미를 느낀 독자들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글을 읽어 나갔을 것이다. 필자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기사를 쓰는 데 큰 노력을 들였다.
필자는 단순한 정보만을 나열하는 기사가 아닌 사람들의 인생과 정이 담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간을 찾아 걷고, 향을 맡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자는 타자기 앞에서 일어나 녹음기와 사진기를 챙기고 생생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현장으로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저번 기사를 쓰기 위해 발걸음이 다다랐던 곳은 남양주에 위치해 한국의 위스키를 만들어내고 있던 “기원 위스키 증류소”였다.
남양주시의 산자락을 따라 난 구불구불한 길 끝에 자리한 작은 위스키 증류소, 그곳에서 필자는 위스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와 한국 땅에서 만들어진 위스키가 어떤 맛과 향을 지니는지 묻고, 듣고, 기록하며 맛봤다. 증류소를 뒤덮었던 술의 향기와 위스키가 잠들어있던 오크통, 증류소에 인생을 담은 사람들의 이야기 모두가 모여 회색 신문지를 채울 물감이 됐다. 필자는 그 물감들을 재료로 삼으며 칙칙하던 회색 신문지를 한국 위스키를 담은 다채로운 작품으로써 탈바꿈시키며 독자들에게 전했다.
필자는 앞으로도 거칠고 칙칙한 회색 갱지 위에 또 다른 초대장을 올릴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와 더 깊고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을 작품으로 만들어 신문이라는 전시장에 전시해 나갈 것이다. 누군가의 발길을 멈추게 할 단 한 줄을 위해 한참 고민하고, 읽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필자는 한 장의 신문지를 색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