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 숨 쉴 뿐인 삶 - 서나연(문창·23)
요즘 부쩍 고민이 많은 나날을 보냈다. 명확한 목적을 두고 삶을 살아가면 그 목적 자체에만 삶이 매몰되기 쉽다고 생각해서 삶의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삶의 목표가 있다면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행복’이란 단어를 삶의 방향으로 삼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덧없는 감정인지 체감하게 됐다. 행복은 왔다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반면에 고통은 아무리 작아도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그 흔적은 꽤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이 찰나의 행복을 얻기 위해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할까. 행복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어느 순간, 삶 자체에 대한 회의로 번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무함과 무기력함이 문득문득 마음을 적셨고,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때 우연히 한 앨범을 만났다. 쏜애플의 정규 2집, <이상기후>. 이 앨범은 ‘생존’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생존’이란 어떤 의미도, 가치도 잣대도 들이밀 수 없는, ‘그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앨범의 작곡자 윤성현은 이렇게 말했다.
“힘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단지 숨 쉴 뿐인 삶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정말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삶이란 것은 결과론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정밖에 없는 것이고, 길을 찾고 싶었지만 길이라는 건 그냥 내가 걸어가는 과정들일 뿐. 수없이 많은 과정이 앞으로 쌓여있다는 것에 질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기에 결국 살아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단지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삶이 기대가 되고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 분명 이 말은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행복해야만 삶의 의미가 있다고 믿고 달려왔던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증명하지 않아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위로였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 제목은 ‘시퍼런 봄’이다. 푸를 청(靑), 봄 춘(春), 다시 말해 ‘청춘’.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청춘은 따뜻하기보단 종종 아프고 외로운 계절이다. 불확실하고 아프고 외로운, 그렇지만 어딘가에 미약하게 숨 쉬는 희망도 함께 있는 그런 시간. 그래서 그 봄은 푸르기보다 시퍼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이 곡의 가사 중 “몸부림치며 기어가”라는 구절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를 비춘다. 올곧게 서서 걷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과 무릎에 상처를 내며 기어가는 시간. 우리는 그렇게 ‘기어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앞을 더듬는다. 하지만 그 낮은 시선에서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바닥에서 피어난 풀꽃, 기어가는 작은 생명들, 그리고 올려다보는 푸른 하늘. 기어가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올곧게 서서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더 단단한 발걸음으로,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넘어지더라도, 손에 생긴 굳은살 덕분에 예전만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완전히 일어나진 못했다. 여전히 몸부림치며 기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꼭 부끄럽거나 비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더 단단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조금은 생겼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기어가는 시간 속에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부디 그 시기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던 날에도, 우리는 숨을 쉬며 살아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