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사(史)에 전환점이라 할 만한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6월 28일(목)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합헌”이라며 “대체복무제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뒤이어 지난 1일(목)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오승환 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2004년 광주지방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적이 있지만, 대법원에서의 무죄 판결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받을 일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종교적, 개인적인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이번 판결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2016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72%의 시민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대법원의 판결 하루 뒤인 지난 2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판결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남자에게 부과된 국방의무를 개인적 이유로 거부할 수 있게 해 법원 스스로 법질서를 무너뜨린 것”이라며 개인적인 신념이 국방의 의무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개신교 교파가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부분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이기 때문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함한 주류 기독교 종파는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간주한다. 2013년부터 약 5년간의 입영 및 집총거부자 2,756명 중 약 2,739명이 여호와의 증인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1872년 미국의 성서학자 찰스 테이즈 러셀이 창립한 기독교계열 신흥종교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총을 잡는 행위인 집총 행위가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그들이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배제한 대체복무를 주장하는 이유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말 자체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한몫한다. 지난 1일(목) 대법원의 판결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약 300건 이상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청원은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양심이 없나”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양심’을 오해해서 발생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양심(良心)은 선한 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선한 마음을 가지고 병역을 거부한 것이면, 군대를 간 사람은 선하지 않은 것이냐”란 비판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영미권의 ‘conscientious objection(양심적 거부)’를 번역한 말이다. 우리나라는 conscientious를 ‘양심적’이라고 번역했지만, 엄밀하게는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가깝다. 대체복무제를 주장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나 ‘소신에 다른 병역거부자’로 용어를 바꾸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앞서 말했듯이, 헌재는 지난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에 합치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와 동시에, 2019년 말까지 대체복무제 마련을 입법부에 명령했다. 대체복무제란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 군 복무를 하는 대신 사회복지 요원 또는 사회 공익요원, 재난구호 요원 등으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헌재의 결정 이후로 우리나라에도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려는 후속 논의가 활발하다. 자유한국당은 대체복무의 강도 및 기간에서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지난 8월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체복무 기간을 44개월로 하고, 지뢰 제거 지원·보훈병원·재난 구호업무 등에 복무하도록 하는 제정법안 발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사회복지나 공익 관련 업무(치매노인 돌봄, 보건·의료, 재난 복구·구호)로 대체복무제를 주장하는 등 자유한국당과의 온도 차를 보였다. 박주민 의원은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의 1.5배로 하고 사회복지, 공익 관련 업무에 복무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박 의원은 “외국 여러 인권기구의 권고와 입법례를 바탕으로 현역의 1.5배가 적당하다고 본다”며 “사회복지나 공익 관련 업무가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4일(수)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확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체복무 기간은 36개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정시설에서 합숙 근무하는 형태가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국방부는 “36개월은 대체복무제를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방지할 충분한 기간이며, 현역병과 다른 병역의무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대체복무 심사위원회는 국방부 소속으로 두되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시민단체는 국방부의 결정에 징벌적 성격이 짙다고 주장한다. 지난 5일(월) 참여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53개 단체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현역 육군의 2배에 달하는 대체 복무 기간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길고, 사실상 병역거부자들에게 또 다른 처벌”이라고 밝혔다. 국제 인권 기준에 맞춰 현역 육군의 최대 1.5배 이내로 기간을 정하고 시민안전 영역에서 복무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대체복무 사례는 어떨까? 징병제인 59개국 중 20여 개의 국가가 대체복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OECD 회원국에서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 중 대체복무제도가 있는 나라는 스위스, 덴마크 등 9개국이다. 대체복무제를 시행해도 이들은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친다. 대체복무가 병역 기피의 수단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대체복무 심사는 군이 아닌 외부 기관이 맡고 있다. 이는 사회적, 공익적인 서비스(▲사회복지 ▲간호·간병 보조 ▲행정기관 근무)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대체복무의 기간은 평균적으로 현역보다 1.1~2배 정도 길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국가다. 대만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과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다. 최근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지만, 우리나라와 유사한 군사적 환경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만은 종교적 이유로 대체복무하는 것을 허용한다. 다만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할 수 있는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관찰과 대면 심문을 통과해야 대체복무가 가능하다.
독일은 과거 우리나라처럼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1967년 서독이 대체복무를 채택했을 때 군이 아닌 외부기관이 대체복무제를 집행했다. 대체복무자는 현역과 같은 9개월이었으며 출퇴근할 수 있었다. 서독은 대체복무제를 채택한 지 10년만에 대체복무자 수가 6,000명에서 70,000명으로 늘었다. 대체복무자들이 10배 이상 늘었지만, 독일 정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체복무자가 공공복지분야에 종사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독일은 대체복무가 복지를 확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보여줬다. 한편, 2011년 독일은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했다.
윤성민 기자
dbstjdals0409@seoultech.ac.kr
주윤채 기자
qeen0406@seoultech.ac.kr
유미환 수습기자
sally9804@seoultech.ac.kr
이건희 수습기자
18110169@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