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있지만, 할 말이 없어 어색하게 휴대폰만 보고 있는 모습은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동기나 선후배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지만 우리는 휴대폰 속 상황에만 집중한다. 이런 상황 속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과 쏟아지는 콘텐츠로 인해 우리는 디지털 피로를 호소하기도 한다. 이처럼 비대면이 익숙해지는 흐름 속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해 놀이를 즐기는 ‘보드게임’이 20대에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 대학생들의 놀이공간이 된 보드게임카페 (출처=이넷뉴스)
“어색함을 깨기 위해…”, 대학생이 보드게임을 찾는 이유
대학생들은 매번 똑같은 만남의 어색함을 깨고 싶을 때 보드게임 카페를 찾는다. 보드게임은 함께 어울려 즐기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소통의 시간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을 자주 즐기는 우리대학 박 씨는 “어색한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보드게임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며 “잘 모르던 선배와 게임하기 전에는 불편할까 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스스럼없이 친해졌다”고 말했다.
이어서 박 씨는 “대화를 나누며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면서 상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평소 조용한 동기의 신난 모습이나 엉뚱한 행동을 보면 친해지기 어려운 친구들과도 금세 친해질 수 있다”고 말하며 보드게임의 장점을 설명했다.
▲ 커플끼리 하기 좋은 게임 <스카이팀>
▲ 친구들과 즐기기 좋은 <스플렌더>
보드게임, 마주 보며 얻을 수 있는 즐거움
대학생들은 또 어떤 점에서 보드게임의 매력을 느끼는 걸까? 우리대학 보드게임 동아리 ‘보드카’의 前 회장 김태영 씨(신소재·20) 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씨는 대학생들이 보드게임을 찾는 이유로 ‘대면 소통’을 꼽았다. 김 씨는 “지금 대학생들은 코로나를 겪어온 세대라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더 익숙해 있다. 하지만 보드게임은 직접 얼굴을 보며 상대의 표정과 행동,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답하며 보드게임만의 매력을 설명했다.
또 김 씨는 “보드게임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며 “‘배우기는 쉽지만 마스터하기는 어려운(Easy to learn, Hard to master)’ 점이 보드게임의 큰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연인, 친구, 어색한 사이… 관계별 추천 보드게임
보드게임 카페를 방문하면 많은 종류의 보드게임이 있다. 다양한 보드게임을 해본 ‘보드카’ 전 회장 김 씨에게 상황에 맞는 보드게임을 물었다.
먼저, 커플끼리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으로는 <코드네임 듀엣>과 <스카이팀>을 추천했다. <코드네임 듀엣>은 협력과 추리를 통해 서로 소통하며 요원 카드를 찾는 게임이다. <스카이팀>은 한 명은 기장, 다른 한 명은 부기장을 맡아 함께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과정을 즐기는 보드게임이다. 김 씨는 “두 게임 모두 생소한 장르의 협동 게임으로, 소통이 핵심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집중하기 좋아 연인 사이에 추천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친한 친구끼리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으로는 <카탄>과 <스플렌더>를 추천했다. <카탄>은 자원을 얻어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며 점수를 얻는 전략 보드게임이다. 김 씨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전략이 어느 정도 필요해 친한 사람과 즐기기에 좋다”며 추가로 “중간에 서로 자원을 거래하는 룰이 있어 게임을 하던 중에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다. 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색한 사이에서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어색한 사이를 깨줄 게임에는 <텔레스테이션>과 <딕싯>이 있다. <텔레스테이션>은 여러 명이 하는 파티 게임으로 승부를 가르기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다음 사람이 맞히는 과정을 연달아 거치며 원래 단어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게임이다. 딕싯은 각자 돌아가면서 이야기꾼이 되며 플레이어들의 생각을 읽는 게임이다. 복잡하지 않고 이미지를 이용해 소통하는 게임으로 어색한 사람과의 아이스 브레이킹에 특화된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사교의 도구로 활용되는 보드게임
대학생들에게 보드게임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이 되고 있다. 화면 속 메신저로는 채울 수 없었던 교감의 갈증을 얼굴을 마주하는 보드게임으로 해소하고 있다.
서로의 표정과 행동에 온전히 집중하며 함께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시간. 이런 순간들은 디지털 문화에 지친 우리에게 잠시 잊고 있던 ‘함께’의 즐거움을 일깨워준다. 이번 주말,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소중한 사람들과 보드게임 판 앞에 둘러앉아 보는 것은 어떨까.
이준석 기자
hng458@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