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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서울시 오사카동, 온통 일본어... 여긴 어디죠
서나연 ㅣ 기사 승인 2024-04-01 17  |  687호 ㅣ 조회수 : 119

 대학생 임씨는 방학을 맞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친구들과 만나왔던 번화가에 갔더니 일본어로 표기된 간판들이 우후죽순으로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점은 가게의 메뉴판도 한글로 적혀있지 않아 주문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였다. 임씨는 “최근 생겨난 음식점들은 일본 느낌을 내는 가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가게들이 거리마다 몰려있으니,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일본풍 선술집, SNS 저격당하다



 최근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개인 SNS에 일본풍 주점을 “매국노”라고 겨냥해 쓴 글이 온라인상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해당 가게의 점주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의 반응들도 두 가지로 갈렸는데, “가격도 엔화로 적은 가게들이 요즘 많이 보인다”, “일본식 간판이 너무 많아 보기 안 좋다”며 안산 선수를 동조하는 여론이 있는 반면, “일본풍으로 가게를 꾸민 것이 어째 매국노냐”며 안산 선수의 SNS 게시물에 불편함을 보이는 여론도 존재했다. 이 사건은 지난 3월 19일(화) 안산 선수가 개인 SNS에 사과문을 올리며 일단락됐다.



지역 핫플에 늘어선 일본어 간판



 일본풍 가게가 논란이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서울의 한 번화가에 자리 잡은 일본풍 술집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표어인 ‘내선일체’와 비슷한 간판을 걸어 사람들 사이 논란된 적이 있다. 이 술집 입구에 있는 대형 간판에는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한 채 달리는 모습의 그림이 있고 가게 이름은 한글이지만 일부러 가타카나처럼 보이도록 해놨다. 이는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유명 관광 명소인 ‘글리코상’과 유사하게끔 노린 패러디 간판이지만, 일부는 “내선일체 포스터 같아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선일체는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지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조선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 낸 식민통치 구호다.



 또한 대구의 한 일식당에서 음식 가격을 엔화로 표기한 일로도 논란이 있었다. 그 식당의 메뉴판을 보면 음식 가격이 모두 일본의 엔화로 표기돼있는데, 상단에는 “엔화로 표기된 가격은 ‘0’을 붙여 원화로 계산해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100엔은 1,000원’이라는 예시가 적혀 있다. 해당 가게의 메뉴판을 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뭐하는 거지”, “‘0’을 하나 더 붙여서 계산하라니 놀고 있다”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반면 “요즘 유행하는 감성이니 그러려니 한다”, “불법도 아닌데 어떠냐” 등의 의견도 있었다.



 실제로 최근 젊은층이 많이 찾는 곳에는 일본풍 가게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런 가게들은 일본어로만 된 간판과 더불어 내부 인테리어도 모두 일본풍으로 꾸며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뿐 아니라 최근 SNS에서 인기 있는 식당과 카페를 중심으로 메뉴를 외국어로 적어놓거나 가격을 외화로 표시한 메뉴판도 종종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도 서울 번화가의 식당과 카페 등에서 메뉴 가격을 달러나 유로화로 표시해 일부 소비자들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워져가는 한국



 마케팅 측면으로 보면 이런 외국어 표기 간판은 독창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특정 고객을 배제하는 문화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간판을 보고도 가게에서 어떤 음식을 파는지 알 수 없으니 일부 시민의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위축감을 불러일으킨다”며 “특정 고객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겠지만, 일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관리돼야 한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일본풍 가게들의 특징은 일본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니다. 간판에서 한국어를 완전히 지우고 인테리어는 일본 현지 느낌을 최대한 살릴려고 한다. 심지어 일본 가게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대나무 조경부터 가게에서 일본 노래만 흘러나온다거나 일본의 광고 포스터로 벽면을 도배하는 점포들도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층이 가장 많이 찾는 수도권 상권에 일본풍 가게가 우후죽순 들어서며 한국 고유의 문화가 점차 희미해져 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풍과 같은 외국풍 인테리어의 유행은 젊은층을 제외하고는 접근성을 떨어트려 노인층 소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지역 정체성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 엇갈리다



 일본풍과 같은 외국풍 인테리어 가게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다양한 언어 표기로 각자만의 개성을 표출하는 가게들이 늘어 이색적이고 흥미롭다는 반응과 굳이 외국어에 거부감을 표출할 필요는 없다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다. 반면, 아무 생각 없이 외국 문화를 추종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는 반응도 있다.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으며, 병기 없이 외래어로만 된 간판을 쓰는 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대학 학우들은 어떨까?



 최근 유행하는 일본풍 인테리어에 대한 우리대학 학우들의 인식을 조사하고자 지난 3월 20일(수)부터 3월 24일(일)까지 우리대학 학우 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 중 88.9%가 최근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일본풍 가게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일본풍 가게의 유행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엔 ▲잘 모르겠다 41.7% ▲안 좋다고 생각한다 30.6% ▲좋다고 생각한다 27.8%의 응답이 도출되며 의견이 나뉘었다.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유로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간접적으로나마 외국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테리어에 진심인 가게 같아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유로는 ‘국제적인 문제가 있는 와중에 일본풍 가게가 유행하는 건 그들의 문화를 선망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전부 일본어로 적혀 있으니 혼란이 든다’, ‘예쁜 한글 간판이 많아지면 좋겠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일본풍 가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반으로 나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처벌은 미미? 빗겨가는 가게들



 외국어 간판 관련 법 규정이 없지는 않다. 현행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12조 2항에 따르면 광고물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해야 한다.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어로만, 혹은 영어로만 가게 전면을 채운 가게는 적다. 일부 시민들은 안전신문고 앱 또는 구청에 간판 관련 민원을 넣기도 하지만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는 위반 처벌 조항이 없어 단속은 미미하다. 옥외광고물법이 신고 대상을 ‘면적이 5㎡ 이상이거나 건물 4층 이상 층에 표시하는 것’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즉, 면적이 5㎡ 미만이거나 건물 4층이 아닌 층의 간판은 지방자치단체의 시정요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중구청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 바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보다 행정 지도해 한글 병기를 권고했다”며 “점주들이 지도를 잘 따라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메뉴판의 상황도 비슷하다. 현행법상 메뉴판 표기를 제재할 근거는 없다. 옥외광고물법상 한글 표기가 없으면 최대 5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메뉴판은 옥외 광고물 대상이 아니라 별다른 규제 조항이 없다. 실제로 국내 거주 외국인 비율이 늘며 을지로뿐 아니라 이태원, 이촌, 동대문, 대림동 등에서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에 태국어, 베트남어 간판까지 늘었다. 하지만 위반 시 뚜렷한 처벌 조항이 있지 않고, 단속도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잇따르자 지난해 8월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카페와 음식점 등 대중 이용 시설에서 한글 안내판이나 메뉴판을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어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소비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지난 2019년 불매운동을 겪으며 소비자들은 개인의 소비활동을 정치적인 활동과 연결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 논란이 되는 일본풍 가게의 유행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소비를 규제하기보다는 각자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소비활동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서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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