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소개 l 공지사항 l PDF서비스 l 호별기사 l 로그인
기획
에너지 위기 시대, 전기요금 속 숨겨진 이야기
김서진 ㅣ 기사 승인 2024-08-23 13  |  693호 ㅣ 조회수 : 77
에어컨 없는 유럽



최근 파리올림픽 선수촌에 에어컨이 설치돼있지 않았던 사실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 사실은 프랑스인들에게 놀랍지 않다. 프랑스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2020년 기준 17%로 매우 적은 비율이다. 심지어 지하철과 호텔에서도 에어컨이 설치돼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에어컨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은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독일, 영국 등 대부분 유럽 국가들의 에어컨 보급률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이처럼 유럽 국가의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 친환경 정책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전기요금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2022년 유럽은 극심한 폭염과 엔데믹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소비가 전년 대비 감소했다. 전기요금이 급격하게 인상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유럽 국가의 전기요금은 최근 몇 년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로 연료비가 급등해 급격하게 인상됐다.







전기요금 정상화의 과제



특히 우리나라는 천연가스를 100% 수입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천연가스 수입 가격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크게 인상되지 않았다. 실제로 프랑스의 전기요금은 우리나라의 2배이며, 독일, 영국과는 3~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또한 OECD 국가 전체의 평균을 100이라고 할 때,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54, 산업용 전기요금은 66 정도로 매우 낮은 전기요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연료비 인상에도 불구하고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기가 단순히 시장 논리로 공급되는 것이 아닌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즉 공기업에서 책임지고 운영하며 전기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료비가 급등하기 시작하자 한전은 국민부담 완화를 위해 비용을 적기 반영하지 않고 이연하거나 분할했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 한전은 전기를 구매한 가격에 비해 판매가격이 낮아 적자가 계속해서 누적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즉 공기업이라는 특성과 현재의 전기요금 체계로 인해 연료비 인상을 전기요금에 적기에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작년 한전의 총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섰고 2021년 이후 누적 적자만 42조원을 기록했다. 이후 전기요금 인상으로 지난 3분기 흑자로 전환한 이후에는 4분기째 흑자를 달성하고 있지만 현재 한전은 이자 비용으로만 연간 4.5조원, 즉 하루에 약 120억원 수준을 지불하고 있다. 따라서 200조원대 부채와 40조원대 누적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요금 정상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입장이다. 



전기요금이 결정되기까지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용도별 요금제로 주택용, 일반용, 산업용, 교육용, 농사용 등으로 나눠 차등 요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용도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산업경쟁력 제고, 에너지 절약 등 각종 정부 정책을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기본적인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 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돼있다. 여기서 연료비조정요금은 전기발전에 필요한 석탄, 천연가스 등의 가격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결정되는 비용으로 연료비 변동분을 의미한다. 2021년부터 시작된 원가 연계형 요금 체계는 통제가 어려운 연료비의 가격 변동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조절함으로써 가격신호를 제공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제도를 통해 해당 분기 직전 3개월간 연료비 변동 상황을 고려해 kWh당 최대 ±5원 범위에서 연료비 조정요금이 결정된다. 







공정한 전기요금을 위해



하지만 이러한 절차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이뤄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현재 우리대학 에너지정책학과에 재직 중인 정연제 교수(이하 정 교수)를 인터뷰했다. 학교로 오기 전 정 교수는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에서 약 9년 동안 근무했다. 주로 전기요금과 관련된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했으며 그 외 전력시장 전반에 걸친 다수의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과정에 대해 정 교수는 “전기요금 결정 과정은 전기사업법에 그 절차가 명시돼 있다. 우선 한전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조정 혹은 개편안을 의결하고 산업부 전기위원회에 약관 개정(안) 인가 신청서를 제출한다. 산업부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와 협의해야 하므로 이러한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산업부 장관이 최종 인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실제로는 이렇게 되고 있지 않다. 한전이 전기요금 변경안을 제출하기 이전에 산업부와 협의가 안 된 상태라면 반려된다. 2011년 한전이 독자적으로 요금인상안을 신청했다가 반려된 사례가 있고 난 이후 한전은 정부와 사전 협의가 되지 않으면 요금조정을 신청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특히 전기요금 체계가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 정부와 정치권이 개입함에 따라 비합리적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기재부는 물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니 전기요금의 원칙은 고려하지 않는다. 일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전의 적자가 심해졌지만, 물가상승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전기요금은 아주 조금만 인상한 사실이 있다. 정치권의 경우는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지지율 영향 등을 고려한다.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절에 이런 현상을 많이 관찰할 수 있다”며 전기요금 조정은 원가주의, 공정보수주의, 공평의 원칙(전기요금 산정기준)에 따라 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인상이 선거철을 앞두고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외에도 정 교수는 “각종 이익단체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보니, 특정 계층만을 위한 할인제도를 요구하기도 한다. 교육용, 농사용 전기요금이 대표적인 경우다. 비단 전기요금뿐만 아니라 전력산업 전반을 규제하는 독립 규제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요금은 최저, 소비량은 최고 수준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하지만 반대로 전력 소비량은 꽤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량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로 미국, 독일 등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도 1인당 전력 소비량이 높은 편에 속한다. 

정 교수는 “전기요금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 전기 또한 일반 상품과 똑같이 사용한 만큼 요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국가가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전기요금이 조금만 올라도 저항이 상당히 크다”며 “전기요금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부과하는 것은 사업자가 전력 생산과정의 비용을 다 회수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가격신호 제공을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다. 결국은 이를 통해 결국은 자원의 합리적인 배분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신호전달의 기능을 한다. 비용이 오르면 수요는 감소하고 비용이 내려가면 수요는 증가한다. 또한 비싸게 팔릴 때는 생산량을 늘리고 가격이 낮게 측정되면 생산량을 줄여 초과 공급, 초과 수요를 막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격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전기요금은 가격신호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아무리 교육하고 홍보해도 관심이 없거나 실제로 이를 행하는 사람은 적다. ‘전력피크시간대 전기 사용줄이기, 사용시간 외에 TV, 컴퓨터, 충전기 등의 플러그는 뽑기’ 등 이런 방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가격신호에 의한 반응이다. 즉 원가가 상승했을 때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못하면 전기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사용을 효율적으로 유도하는 등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앞으로의 전기요금은



현재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논의는 원가를 적기에 반영하지 못했던 ‘할인된’ 가격의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전기요금이 실질적인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고 낮게 유지된 상황은 결과적으로 에너지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에너지 공급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고, 이와 동시에 전력 요금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 교수는 “지금 전기요금을 제대로 올리지 않는다면, 미래에 지금의 청년들이 해당 비용을 다 부담해야 한다. 현재 세대가 싸게 사용한 대가를 왜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하는가. 전기요금 부담이 얼마 안 된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이 직접 전기요금을 부담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며 청년들이 전기요금 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비용을 적기 반영하지 못하는 전기요금은 결국 세대 간 부담을 전가하게 되므로 더욱더 청년 세대들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기요금은 세금이 아니라 상품에 대한 비용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김서진 기자

tjwlsp@seoultech.ac.kr

기사 댓글 0개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쓰기 I 통합정보시스템,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으로 로그인 하여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확인
욕설,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01811]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 최초발행일 1963.11.25 I 발행인: 김동환 I 편집장: 김민수
Copyright (c) 2016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