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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비밀인데…”, 오프 더 레코드와 엠바고
심재민 ㅣ 기사 승인 2022-08-12 11  |  661호 ㅣ 조회수 : 672

  “이건 비밀인데…”, 오프 더 레코드와 엠바고





  지난 5월 22일(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기념해 도쿄 소재의 한 호텔에서 백악관 고위 인사들과 기자들이 작은 연회를 가졌다. 외신 기자들에게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가까운 자리에서 안면을 트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다만 이 연회는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하에 진행됐다. 연회에서 오간 이야기를 언론이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기자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오프 더 레코드라니, 보도해서는 안 될 내용이면 왜 기자에게 내용을 발설하고 오프 더 레코드를 약속하는 걸까?



  취재원과 언론인 사이에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취재가 이뤄지기 어렵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기자들은 더욱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취재원은 언론에 보도될 부담 없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실제로 특정 정보를 보도하지 않더라도 이를 통해 전후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상호간의 신뢰를 형성하고 오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오프 더 레코드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오프 더 레코드 약속을 파기하고 보도하면 어떻게 될까?



  1995년 故 서석재 前 총무처 장관(이하 서 前 장관)은 “오프 더 레코드야”라는 발언과 함께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 노태우의 4,000억 비자금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당시 그 자리를 함께했던 기자들 중에는 소속 언론사에 보고 자체를 하지 않은 기자들도 있었고, 보고는 했으나 오프 더 레코드이므로 기사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기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를 보도하지 않았으나, 조선일보의 편집국 차원에서 기사화를 지시해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전두환, 노태우 前 대통령의 구속으로까지 이어졌다. 여타 언론사들은 땅을 치며 후회했을 일이다. 당연히 오프 더 레코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는데, 결과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조선일보의 단독 특종이 됐으니 말이다.



  다만 이 사건은 서 前 장관이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오프 더 레코드를 지시했으므로 취재원과 취재진 사이의 약속이 성립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당시 서 前 장관 또한 기사화를 염두에 두고 일부러 이러한 발언을 흘렸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정치인들을 비롯한 고급 정보원들이 향후 책임 회피를 목적으로 오프 더 레코드를 남발하는 경우도 있고, “오프 더 레코드로 하면 얘기해 줄게”라며 실제로는 보도가 되기를 바라는 내용을 은근슬쩍 흘리는 관행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 국내에 정당한 오프 더 레코드 약속을 파기한 사례는 없지만, 취재원의 정당한 엠바고(보도 유예) 요청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내보낸 사례는 있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우리나라 선박이 납치된 적이 있는데, 국방부는 인명 구조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출입기자단에 엠바고를 요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상태였다.



  그런데 국방부에 출입 기자를 두고 있지 않아 따로 엠바고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는 부산일보에서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가 국방부 요청에 따라 기사를 삭제했고, 추후 국방부는 각급 중앙 행정 기관 등에 부산일보에 대한 제재 조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실제로 일부 기관에서 부산일보에 보도자료 제공 중지 등의 조치를 취했고, 부산일보는 이러한 제재 조치에 반발해 국가를 상대로 1억 1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랍자의 안전과 국가 안보가 좌우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엠바고를 존중할 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이 판결의 주 요지였다.



  이 판결에 대해 일반적으로 언론이 엠바고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를 규정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일보가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아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됐다.



  ‘오프 더 레코드’나 ‘엠바고’ 발언 하나에도 기자는 신경쓸 일이 무척 많아진다. 하루이틀이면 유통기한이 지나 관심이 시들해지는 기사도 데스크에 오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노고를 거친다. 오늘도 취재와 보도의 일선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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