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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와 미래의 민주주의
기사 승인 2025-01-08 13  |  699호 ㅣ 조회수 : 30
권용선

인문사회교양학부 강사


 2024년 1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었던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그날 밤 우리는 뜬 눈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모욕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 사람의 왜곡된 통치 욕망과 그에 부역한 자들이 만들어낸 위헌적 사태가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나라의 법질서를 한 순간에 어지럽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의 놀란 마음과 함께 나라 경제도 얼어붙었다. 주식이 폭락했고, 환율이 급등했고, K-브랜드의 가치가 곤두박질쳤다. 시민들의 ‘계엄 트라우마’와 함께 한 달 넘게 비일상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그날 밤 이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 안의 민주주의’를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다 . 12월 3일 밤, 모든 것을 팽개치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을 기억한다. 군용트럭을 막아서던 청년의 뒷모습을, 의사당 담장 밖에서 경찰들과 대치하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의원들이 계엄을 해제시키는 동안 회의장 밖에서 무장군인들과 싸우던 사람들의 절박함을 기억한다. 그리고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도심 곳곳에서 빛나던 응원봉의 불빛과 구호들을, 훼손당하고 모욕당한 민주주의가 회복하기를 기원하는 절실한 말들을 기억한다.



  ‘응원봉’은 이제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게 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 그것은 단지 아이돌 팬덤 문화에 익숙한 세대의 시위 문화, 대중가요와 발랄한 춤과 깃발에 적힌 유머러스한 구호들 이상이다. 응원봉을 처음 들고 나온 것은 청년 여성들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의 상징이 되었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남태령 대첩’에 있다. 모든 직군들 중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고 모든 의제들 중에서 가장 나중에 다뤄지던 농민들의 싸움에 응원봉 시위대가 결합했을 때, 그동안 한 번도 서울에 입성하지 못했던 트랙터가 남태령을 넘어 한남동까지 진출했을 때, 민주주의를 바라보던 우리의 고정관념은 깨졌다. 응원봉을 들고 남태령 고개에 몰려든 젊은 여성들과 시민들은 어쩌면 난생처음 풍찬노숙을 하며 농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농민 활동가의 말에 따르면, 그날 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3분 말하기 위해 3시간을 기다려’ 무대에 올라가 발언을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했고, 누군가는 입시제도의 부조리를 고발했으며, 누군가는 안전하지 못한 여성의 삶을, 또 다른 누군가는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불평등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고 탄핵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의 언어가 겨울밤의 추위를 녹이며 불타올랐다. 여기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은 없었다. 아무도 ‘나중에’를 외치지 않았다.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 각자의 삶과 생각들이 모여서 절실하게 공동의 삶을 구성해 가는 것. 이전에 없던 것들을 상상하고 실험하며 계속 만들어가는 것. 약자들과 연대하고, 소수자의 삶에 공감하고, 내가 가진 것을 기쁘게 나누며 서로 공존하는 것.



 이제 나이 든 세대는 응원봉을 든 젊은 세대로부터 새로운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 비장하지 않게 유연하고 발랄하게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며 될 때까지 지치지 않고 기다리며 끝까지 싸우는 세대가 세상의 중심이 되도록 길을 터주어야 한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이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미시적으로 정치적이며, 섬세하게 윤리적이다. 이들에게서 미래의 민주주의와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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