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도훈(컴공·24)
장래희망, 목표, 이상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꿈’이라는 단어, 이 단어를 참 아낀다.
괜히 신비하지만 동시에 닿을 듯 말 듯한 그 기시감, 한 번도 이루어본 적 없지만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불확실하지만 특정할 수 있는 원동력.
꿈은 내게 그러한 것이다.
과학자, 외교관, 소방관, 수 없이도 많이 바뀌어왔던 나의 그것들은 현재로서는 잠시 멈춤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듯하다.
이는 21살이라는 미약하게나마 영글은 상태에 접어들어서, 또는 길진 않지만 그럼에도 납득할 수 있는 시간의 힘에 때 묻은 탓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중요치는 않고 어찌 됐든 현재 꿈을 꾸고 있고 존재하니, 그것으로 더할 나위 없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괜히 사석에서 사람들의 꿈을 묻곤 한다. 별다른 의도는 없고, 그저 궁금해서 그렇다. 그래도 꿈이 없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거의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사람들에게 꿈의 존재는 달가운 것에 가까울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꿈은 무엇이라 단언컨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잠에 들 때마다 간혹 경험할 수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칭하는 것이 아니라면,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말하는 그 ‘꿈’은 각자의 뜻에 가까운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이번 글을 써 내려간다.
무언가에 진심일 수 있다면, 당신은 꿈을 꿀 수 있다. 외압, 타의나 주변의 것이 아닌 온전히 스스로의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것. 그러한 것들에서 나는 꿈이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진심이라는 것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없을 수 있다. 그저 주어진 일상을 완연히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한 인간은 스스로의 삶에 진심일 수 있다. 그러니 구태여 꿈을 가지려 할 필요는 없겠다. 지금의 삶이 누군가에겐 꿈일 수도 있고, 아직 별것 아닌 그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뿐일 수도 있다.
쉬이 알 수 있듯, 우리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에는 정답이 없다.
물론 어디에서나, 언제나 그렇듯 대다수가 옳다 생각하는 기준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니,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나는 꿈이 많다. 지금까지는 이루어야 할 35개의 꿈이 있고 그 모든 것들에 그토록 진심일 수 있다. 꿈을 꾸기 위해서가 아닌, 이루기 위해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룸을 위한 이룸에 의해 이룸의 과정만으로 점철된 그런 삶만을 살고 있진 않다. 어디까지나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하지만 나만의 선이자 기준은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자취를 그리고 있는다.
그래서 앞으로 몇 년간은 글쓰기와 관련한 나의 꿈에 가장 많은 나의 진심을 쏟을 생각이다. 흔히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으라 하지만 글쓰기를 할 때 마냥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하지만 근 2년간 한 번의 멈춤 없이 꾸준히 해온 활동이며 이루고 싶은 역치가 생겨버려, 가장 큰 꿈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많은 갈등과 풍파를 겪기도 한다.
여러분의 꿈을 향한 그 모든 나날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혹여나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괜찮다. 본인이 상수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변수로 작용하여 또 다른 상수에 다가설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니 미리 두렵지 말고, 우려하지 말자.
본인이 생각하기에 쓰레기 같은 시간을 보냈어도 괜찮다. 인지했으니, 감당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자극점이 되어줄 수도 있는 노릇이니.
하루하루 열심히 살지만 불안해도 괜찮다. 불안은 결국 해가 뜨면 달이 지듯, 완벽에 다가설 때 동반되는 무시할 수 없는 자연이다.
이렇게 또 수없이 많은 빈틈이 있는 글이지만, 그 나름의 빈틈이 또 이 글을 완성에 가깝게 한다. 그렇게 차차 내 꿈에 가까워지는 것이니 괜찮다.
어느덧 입에 붙지 않던 2025년도 뒤돌아봐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여러분들이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란다.